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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4. 2020

평소답지 않다는 것은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도곡리 오자매


평소답지 않다,

는 것이 얼마나 가슴철렁한 일인지 평소답지 않은 일을 마주해본 사람들은 안다.

감기가 오래지속되고 호흡이 곤란해서 가봤더니 폐암말기였다는 아빠의 병명과, 갑자기 찾아온 엄마의 뇌경색을 겪으면서 나는 평소답지 않은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겪어봤다.

그에 비하면, 큰일은 아니지만, 평소답지 않은 불안한 기운을 담은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오늘 아침에. 

미저리의 전화였다.


미저리는 미저리라는 별명과도 너무나 잘 어울리게 스토커 기질이 다분하다. 굉장히 사소한 이유로 하루에 수십번도 넘게 전활 걸어오는데, 일할 땐 굉장히 짜증스럽고, 연애라도 할라치면 특히 더 귀찮다. 일거수 일투족을 관여하고, 체크한다. 내나이 이미 마흔인데! 몰 굳이 그렇게까지!!! 밤 열시가 넘었는데 인스타에 낯선동네에서 피드를 올린다거나 집이 아닌 곳에 있음이 감지되면 바로 전화를 해서 잔소리 하는 건 기본이다.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밖에서 그러고 있느냐고.


그런데, 절대로, 절대로 평일 아침에는 전화를 걸어오는 법이 없다. 주말에는 밥먹으러 오라는 전화를 종종 걸어오기도 하지만 월화수목금 평일 아침에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없다. 아니, 아예없다.


오늘 나는 중요한 두건의 고객사 미팅이 있었다. 

고객사 미팅을 위해, 오랜만에 정장 찾아 입고, 에코백 대신 미팅용 가방도 챙기고, 평소 신는 운동화대신 구두로 갈아신고... 이제 집을 나서려는데 전화한통이 걸려왔다.


미저리다. (미저리가 왜?)

아니나다를까 큰일이 있을때 나오는 예의 그 떨리는 목소리다.



어떡해.... 내 인스타가 해킹당해서 다 날라갔어.
11만 팔로워도 사라졌고. 1400개 넘는 글들이 안보여.
집으로 와줘. 지금.



이 아침, 이게 무슨 일일까 대체.

내가 간다고 해킹당해서 삭제된 계정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나, 나는,  가야만 한다.

미저리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 미저리 생업인데.

해커 이 XX들. 미저리는 2단계 인증 보안이니, 뭐니 하는 것을 모른다.

분명 해외에서 접근시도가 있고, 자기가 요청하지 않은 정보를 입력하라고 하는데, 왜 그걸 곧이곧대로 입력하느냐말이다. 왜.


파워인스타 들에겐, 그들을 상대로, 당신이 특별한 무언가를 get 했으니, 정보를 입력하라는 피싱메일이 자주온다.


우리도 서너번 속아넘어갔다. 아마도 그런 피싱 유도 메일에 답을 하면서 벌어진 일 같다. 일단 점심약속은 양해를 구하고 취소했고, 미저리에게로 와서 인스타그램 헬프게시판에 상황을 보냈다. 자동회신은 오는데, 내 질문에 대한 회신이 아직없다. 이 느린 것들. 여기 사람들은 목이 바짝바짝 타는구만.

이 와중에 나는 왜 배가고픈가.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도 나지만, 미저리는 밥해줄 생각도 안한다.

하기사, 지금, 밥이 문젠가.


아아아아아아아


블로그 글에는 계정을 실수로 삭제했지만 복구했다는 희망찬 글도 있고,

해킹신고 후 10분만에 혹은 2주만에 계정을 살렸다는 은혜로운 글도 있는데,

인스타그램 정책규정에는 타인이 비번을 도용해 삭제한 계정은 다시 복구가 어렵다는 그지 깽깽이 같은 글도 있다.


이렇게 긴급한 상황이지만,

인스타그램은 고객센터가 없다. 전화번호가 없다.


그런데 왜 해킹계정 신고 메일이, 터키어로 자동회신이 오는걸까?

믿을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


일단은, 고객사 미팅부터 가자(나 없이 케이혼자 어려울테니). 다행히 사람 죽고 사는 문제 아니니까. 그분의 인도하심이 있을 줄 믿는다. 먼저 당하고, 이 일을 널리 알려서 다른 피해 줄이기를, 그런 쓰임받게 되기를.


일단 심장뛴다는 우리 미저리, 포기할꺼 포기하라고 맘 접고 기다리라고 토닥토닥하러 가야지.

그전에 배고파 쓰러지겠다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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