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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4. 2020

셋째언니 시어머님 장례식장에서

도곡리 패밀리




어찌될지 모르니 오늘 인사…..하자.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내가 죽거든 애 엄마랑 애들은  두고 너만 다녀가라.
죽은 다음에 누가 안다고, 격식 차릴 필요없다.
이렇게 살아서 봤으니까 괜찮다.




지난 여름, 호주로 이민간 언니네가 두달간 일정을 비우고 시어머님 간병차 한국에 왔다.

다시 호주로 입국하던 날, 언니네 시어머님은 형부에게 위와같이 당부했다.

그 시어머님이, 오늘, 돌아가셨다.

일 마치고 서둘러 들른 장례식장. 생전 곱던 모습 그대로, 영정 사진 속 셋째언니의 시어머님께 인사를 드렸다.



 호주에 있는 언니 대신 제가 왔습니다.



언니 시어머님 옆 다른 분향실엔 어쩐 일인지 상주도, 조문객도 없이 덩그러니 사진속 아저씨가 홀로 자기 빈소를 지킨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외로운 마지막, 이 아닐 수 없다.


공항에서 바로 택시를 타고 도착한 형부를 만났다.

청바지에 셔츠 차림이다. 어머니 영정 사진을 앞에 두고 죄인처럼 고개숙인 형부를 보며 눈물이 쏟아진다.

‘울지마 내 아들’ 이라고 생전의 어머님 목소리로 말씀하실 것만 같은데 사진 속 어머니는 감정의 동요없이 고요하다.


상주띠를 달고 검은정장으로 갈아입고 나온 형부는 이모님, 아버님 친구, 친지분께 차례로 인사를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형부의 트렁크를 구석에 옮겨 놓았다. 어머니 부고를 듣고, 허망하게, 짐을쌌을 언니와 형부 마음이 어떠했을까. 형부에게서 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당장의 생활비가 늘 모자란 탓에, 황망히 혼자 어머니 빈소를 찾아 갈 쓸쓸한 형부의 뒷모습을 지켜봐야만했을 우리 언니 마음이 어땠을까.


보통의 고부간의 갈등같은게 언니랑 시어머니 사이엔 없었다. 사회생활같은 것에 익숙하지 못한 외골수 아들 성격을 아는 터라, 그런 아들과 가정을 꾸리고 토끼같은 자식을 낳고 사는 언니를, 어머님은 친딸처럼 아껴주었다. 언니도, 그걸 모를리 없었고, 보통의 며느리 이상으로 어머니를 살뜰하게 챙겼다. 호주에서 나와, 어머님 암수술 후, 두달간을 간병하다 돌아가기도 했다.



이모 우리 언제 또 한국 올 수 있을까?
누가 죽거나 아프면 또 올 수 있겠지?



지난 번에 할머니를 보러 한국에 왔다가 호주로 떠나기 전날 밤, 한국에서 살고 싶다며 조카가 했던 말이다.


웬 아주머니가 크게 곡소리를 내며 운다.

그럴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아는 이모님과 고모님들이 나서서 곡소리 내는 조문객 아주머니를 데리고 나온다.


곡소리.

곡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혼이 난적이 있다.



저 집 딸들은 곡소리 한번을 안내네.


십여년전, 아버지 장례식 장 뒤에서 수군거리던 동네 아주머니들. 그땐 큰일을 치르느라 잠자코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울분 같은게 남았다. 뒷말하는 그네들에게 지금이라도 따지고 싶었다. 지금 여기서 제일 슬픈게 누구일지, 크게 소리내어 울지 않으면 슬픈게 아닌건지…

당시 우리에겐 곡소리를 내며 우는게, 어려웠다.


군복을 입은 청년이 들어선다. 철원에서 온 아들이라며, 아들 자랑하기 바쁜 어떤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좀전까지 언제 울었냐는 듯. 우리 형부도 어머님의 저렇게 귀한 아들일텐데.

형부는 이제 돌아와도 반겨줄 엄마가 없어졌다.

저 군인은 휴가를 내며 나오는 길이 기뻤을 수도 있겠지. 누군가의 장례식을 통해 아이러니하게 또 오랜만의 반가운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니까.


시어머님의 자매들은 전부 다 미인이다.

상조회사 아주머니들은 내일아침 부족할 밥과 국, 편육 걱정에 벌써부터 마음이 분주하다.


형부는 울다, 먹다, 졸다, 또 운다.

언니가 없는 빈자리, 엄마가 떠난 빈소에서의 형부. 저 남자의 뒷모습에 나도 자꾸만 목이 메인다.

엄마를 잃은 모두는 너무나 애달프다.



_2014.11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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