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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2. 2020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여러개!

도곡리 오자매




매주 나를 기다리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 나의 큰언니이자 나의 절친, 로빈슨이다. 최근 언니네 부부는 사네, 안사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침샘종양 수술이후, 유방에 있는 혹의 성질과 크기를 추적검사하는 언니가 스트레스로 병을 얻을세라 애써 별일아닌듯 언니 부부의 이야기를 웃어 넘기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가족의 특징중 하나가 어떤 슬픔이 와도 위트로 대처하고자 하는 것. 어느 토요일 밤 동네 뒷길을 한적하게 산책하다 언니에게 그랬다. "언니 만약 이혼할꺼면 꼭 말해줘" 앞서걷던 언니가 왜그러냐고 물었다. "나 반려자 안 찾게. 언니랑 아랫집 윗집 살려고. 꼭 말해줘. 나 반려자 찾는거 정말 힘들고 지치거든"

언니는 웃었다. 나는 그게 좋아서 자꾸만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게 되는 것 같다. 



오십견

갱년기로 한동안 걱정케하더니 요즘은 오십견으로 어깨통증을 호소해온다. 생전 안 가본 한의원도 가고 체형교정 마사지도 가고. 남들 다 공짜로 드는 나이를 값비싼 돈 들이며 애도 먹어가며 먹고 있는 중이다.

누가 맏이 아니랄까봐 늘 먼저 맞아준다.

아빠 회초리에서부터 갱년기, 오십견까지.

내가 그 나이에 당도해야만 비로소 체감할 수 있는

무게들. 그때가 오면 또 예의 그 다정한 잘난체를 하며 그때 그때 피할 방도를 알려주겠지. 한번도 ‘라떼는 말이야’ , 하며 권위주의적이지 않았지만, 매번 새로운 미션을 갖다주며 도전해보라고 채근하는 피곤한 스타일.


명나라 홍자성의 어록 채근담 같은거

일본 유명 여배우 키키키린이 남길 말, 같은 거

스테디셀러 빨강머리앤이 우리에게 하는 말,

곰돌이 푸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 뭐 대략 그런 느낌으로다가 어느 게으른 늘락지의 변명, 같은 거 한 권 써주고 싶다. 사후에? 아니 그녀 생전에.


그사람이 없어지면 어쩌지, 라는 생각만으로 눈물이 왈칵 난다. 내 생전엔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우리 언니들 장례식.


언니의 낙선 (2018년 지방선거)

결국 533표 차이로 낙선했다.
새옹지마, 라는 말은 모든 상황을 정리해준다.
당선되면 된 대로
안되면 안 된 대로
괜찮다.

오늘은 아빠 15주기 기일이다.
비록 낙마했지만 아빠에게 당당히 알려주고 싶은 건

이 과정을 통해 우리 5자매는 <사람>들을 얻었다는 것.

유유상종, 근묵자흑이라고 했다.
향기 나는 사람 곁에는 향기 나는 사람이 모여드는 법.

오늘, 우리가 슬퍼해야 할 이유는 없다.
언니는 언니에게 남겨진 일들을 이루어가기로 했다.

그러니, 다 괜찮다.

좋은 경험이다.


언니의 이상한 취미

새벽녘에 언니가 흰머리를 뽑아줬다. ‘막내 대두도 흰머리가 다 나네’ 하면서. 언니는 예전부터 서캐랑 이 잡아주는 거, 여드름이 점으로 변하기 전에 짜내야한다면서 남의 여드름짜는 걸 좋아했다. 이상한 취미다. 이제는 흰머리를 솎아 주며 좋아한다(;;)


다이어트는 또 내일로 기약하고, 언니가 좋아하는 곱창과 카레우동을 먹었다. 언니랑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건, 꿈에서라도 상상하고 싶지 않다.


강릉여행

계획보다 즉흥적인 걸 선호하는 두 사람이 떠난 첫 도보여행. 우리는 분명 호텔을 예약했건만 도착해보니 거긴 그저 모텔이었고 (당시엔 잘 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조식을 추가했지만 아침에 우리를 기다린 건 비린내나는 프렌치토스트였다. 이 조식의 역할은 점심까지 밥 생각없게 하기. 호텔 조식이라 불리기엔 과한 이름을 가졌다.

그간 혼자서 무수히 많은 여행을 계획없이 다녔지만, 동행하는 이가 있으니 무계획이 어쩐지 좀 미안했다. 야반도주하듯 챙긴 짐도 그렇고.


여행에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계획과 어긋나서 좋을 때도 있고 계획없이 가서 난감할 때도 있고, 그렇다.

 

어느 여름날의 가드닝

어린이날 기념으로, 집마당에서 돌도 고르고 나무도 잘랐다. 빨강머리 앤이 입었을 법한 원피스와 모자를 쓰고

도곡리에 나타난 그녀의 패션을 향해 엄마는 일침을 가했다 (차마 그 내용은 쓸 수가 없...;;)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난 그날의 로빈슨 룩,

그러니까 엄마로 하여금 혹평을 받은 로빈슨의 샤랄라 원피스와 모자를 사랑한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고 언니는 콧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심바. 탄이. 레오. 개 세마리도 평화로웠던 (without 그녀의 사춘기 아들 딸),

오래두고 기억날 것 같은

어느 여름날의 가드닝 혹은 헤프닝!


갱년기란 무엇인가

며칠전 믿었던 상대로부터 마상을 입었다.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다소 애정이 식은 눈빛.

그녀에게도 갱년기가 시작됐을까?

갱년기란 무엇인가. 호르몬이란 무엇이며 또 애착이란 무엇인가.

일찍이 애정이 없는 곳에 섭섭함과 실망이 자리를 내어줄 리 만무한 법.

나의 질척거림은 나의 칭얼거림은 어쩌면 너무도 애정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정도 병이라건만.

적당히…뭐든지 적당히가 좋다. 그게 어려운 일이지만.


천식 

원래 <천식>을 앓던 언니가 지난주부터 감기까지 겹쳐 갑자기 숨을 잘 못쉬겠다고 누워있다.

그걸 지켜보는 엄마 마음도 천갈래 만갈래 속이 상해있는데

유독 한사람..형부만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여전히 속을 썩이고 있단다. 속 터질 노릇이다.

이번주에는 열일을 제치고 언니를 보러 가고픈데 월드비전 모임과 지인 결혼식 등 예정된 일들이 있으니 진퇴양난이다. 서둘러 마치고 내려가는 방안을 마련해보든 자료만 넘기고 회의에 빠지든, 방법을 모색해봐야겠다.

언니가 아프다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언니가 아프면 일도, 드라마 쓰는 것도 다 때려칠꺼다.

언니가 건강하지 못한데 내가 행복할 수 있겠는가.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언니는 건강해야 한다. 


아프지마 언니. 함께 바다를 가자면 갈 것이고, 공연을 예매해달라면 툴툴거리지않고 예매할테니

아프지만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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