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북리뷰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로 첫문장을 시작하는 컬럼을 쓰려다 이내 지웠다. 혹시라도 꿈이 없거나, 지금 부지런히 꿈을 찾고 있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글을 쓸때는 자기 평소 성격이 나오는 법이다(투머치 배려;;). 어쨌거나 내게는 꿈이 있다. 책방을 하는 것. 단지 책만 사고 파는 공간이 아니라 책방을 찾는 ‘사람’에게 특별한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선물 같은 책방을 여는 게 오래된 꿈이다.
컨셉 1. 금사빠인 주인장 취향에 따라 매달 달라지는 <덕후를 위한 이달의 전시>
#에곤쉴레 특별전 #킹덤시즌3 맞이 주지훈 필모그래피 훑기 #군 제대후 지디가 나아가야할 방향 (음악이 아니라 패션;;) #콜바넴을 필두로 하는 퀴어 성장소설 #김준수의 뮤지컬로 재조명하는 국내 뮤지컬이야기 등등등 장르와 인물에 대한 자료는 어마무시하게 준비되어 있다. 뿌듯하다. 다년간의 덕질을 한 결과다.
컨셉 2. 필독도서 같은 소리만 안 했어도, 라는 컨셉의 아이들을 위한 <독서모임>
본인들은 책을 단 한 줄도 읽지 않으면서 자녀에게는 유튜브 대신 독서를 강요하고 싶은 부모를 꽤 여럿봤다. 부모가 책을 읽어야 아이도 자연스레 책 읽는 습관이 생길텐데. 여하튼 그런 부모들을 위한 서비스다. 아이들에게도 필독도서보다는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재미있는 책 위주로, 책에 대한 거부감을 최대한 줄여가며 책 소개를 해주는 책방주인이 되고싶다.
컨셉 3.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해서 글에 대한 평가 따위는 하지 않는 <내맘대로 글쓰기 강좌>
사회 초년생때 잡지사 기자로 2년간 일한 적이 있을 때, 글을 쓰는게 정말 두려웠다. 편집장의 고함을 들어야했고, 글을 잘못 썼다는 이유로 모멸감을 느껴야했던 시절이었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취미를 잃지 않게, 두려움없는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글쓰기 강좌를 서점에서 하고 싶다. 대상은 꼭 아이들이 아니어도 좋을 듯 하다.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한 이들과 함께 글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작업을 나누고 싶다.
컨셉 4. 책속의 한 문장으로 책을 선택하게 하는 <비밀의 책 배송 서비스>
어떤 책에서 봤는데 탐나는 아이디어라, 차용해봤다.
컨셉 5. 반려동물을 떠나 보낸 이들과 함께 세상 하나뿐인 책을 제작하는 <치유록 프로젝트>
키우던 삽살개 (까망이)가 8년전 여름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사고사였다. 그때 많은 책들을 찾아봤지만,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위로해주는 책은 만나지 못했다. 언젠가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100일동안 치유를 위한 글쓰기를 혼자 해본적이 있었다. 그 기간 동은 글을 쓰면서 상당부분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는데 언젠가 내가 책방을 열게 된다면, 특별한 아픔을 겪은 이들과 그 주제로 100일간의 치유록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결과물을 책 한권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컨셉 6. 현직 헤드헌터인 점을 십분 활용하여 <점집 보다 나은 커리어 코칭 서비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점을 한다고 하면, 굶어죽기 딱 좋겠다고 걱정부터 한다. 사실 나도 망설이고 있는 것이 그들의 걱정이 내가 하는 걱정과 다르지 않는 까닭에서다. 점점 더 종이책을 사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과연 나는 (더 나아가, 책방을 꿈꾸는, 우리는) 책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을까? 결론은 자명하다. 아니다. 그래서 다양한 콜라보, 시너지를 낼 방향을 백방으로 수소문중에 있다. <앞으로의 책방독본>이라는 책에서는 책방주인의 전직을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지속가능하면서도+생활밀착형인+ 주중엔 본업에 매진하고 주말에만 문을 여는 금토일 서점으로서 나의 책방이 무사하기 위해서라면 커리어 코칭 아니라,시골집 앞밭에서 김매기 체험 프로젝트라도 기획해볼 작정이다.
이 모든 컨셉은 물론, 기꺼이 그 누군가가 양평까지 찾아와주어야 가능해진다.
임대료 낼 여력이 없어서, 일단은 엄마집 옥상에 옥상책방을 올리거나, 엄마집 마당에 컨테이너를 들여놓거나 양평에서 시작해볼 생각이다.
언제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고, 책방 들어설 터도 있고, 미리 지칠 것을 대비해 한달간 내 대신 책방을 운영해줄 지인도 줄 서있고, 자금(퇴직금)도 마련됐다.
그런데 벌써 십년 째 준비가 안된 게 있다. 바로, 흔들리는 내마음이다. 마음의 준비가 덜됐다.
꿈을 쫓는 삶을 동경하지만 실상은 언제나 먹고사니즘에 연연하고 있는 인생의 나날들.
“서점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라고 말하는 주변사람들에게 대꾸할 마땅한 답변이,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다.
월급 따박따박 받는 회사인간에서 매달 임대료와 고정비로 지출되는 돈을 걱정해야 하는 자영업자가 될 용기가 아직 부족한거다.
그러다 <꿈의 서점>이라는 기발한 컨셉의 책방이 소개된 일본 작가의 책을 봤는데 다시 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상상할 수 없는 컨셉의 책방들이 존재하다니. 말도안돼!!!!!!!!!! 그런데!!!!!!
<꿈의 서점>에는 주인의 취향과 세계관이 반영된 독창적인 서점이 등장한다. 간판도 달지 않은 채 오직 입소문과 단골만으로 꾸준히 서점업계의 숨은 보석이 된 곳, 거주지를 책방으로 탈바꿈한 ‘생활밀착형 서점’,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조용한 장소에서 오직 책에만 집중하고 싶은 손님들을 위해 ‘공간을 빌려주는 서점’, 어지간해서는 쉽게 찾아가기 힘든 외딴 곳에 소재한 서점, 심령서점 등등. 공통된 특징은 매출에 연연하기 보다 오직 ‘주인의 책에 대한 애정’을 동력 삼아 운영된다는 점이다. 단지 책을 팔고 사는 공간적 의미의 서점이 아니라 책의 미래나, 책방 운영에 대한 아이디어, 북큐레이션 방법 등이 담겨 있는 서점 이상의 서점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여타 다른 서점을 소개하는 책과는 다르다.
혹여 책이 팔리지 않더라도, 내 서가를 오래도록 빛나게 해줄 책을 고르는 작업이 즐거운 사람들과 그들이 책이라는 매개체를 중심으로 만든 공간. 그 공간을 채워주는 새소리, 바다소리. 빗소리. 꿈의 서점을 상상하면 언제나 즐겁다. 하지만 즐거운 일도 매일매일 업으로 하면 하기 싫어지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 좋아서 시작한 서점이지만 과연 이 서점의 주인장들은 여전히 행복한지, 정말로 먹고 살 수는 있는 건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애석하게도 이 책에서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유주얼 서스펙트’급 반전이 마지막 있다. 차마 그 반전의 문장을 밝힐 수는 없으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뒷목 잡았다는 블로거 후기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절대로 마지막 페이지부터 읽지 마시길! 모든 반전이 그렇지만 이 책의 반전 또한 기대와 재미를 급 반감시킨다 (힌트: 이 칼럼 제목에 있으니 참고하시길!)
P. 132 그때그때 읽고 있는 책은 확실히 그 사람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 <Street Books>
P. 275 서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게 책이라는 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연결되기 때문이지요. 의식주는 물론 음악, 영화, 과학, 사상, 예술, 여행 그리고 스포츠까지. 그러니까 다양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그들 나름의 책을 다루면 진정한 ‘혼야무라’, 즉 책방마을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쭉 생각해왔어요. <혼아뮤라>
에필로그>>>>>> 가족과 친구, 동료, 사랑하는 나의 팀원들 덕분에 용케도 현재 같은 일을 잘 하고 있다. 힘들때마다 나를 우쭈쭈해주는 사람들. 10년 동안 100번은 퇴사를 결심하고 거의 수많은 아침, 휴가를 결심했지만 아직 여전히 나는 이곳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꿈을 꾼다. 꿈의 책방에 대해서. 퇴근 후 들러주겠다는 분들이 많아지면, 내 생각이 책으로 활자화되면 내 꿈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