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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May 30. 2020

개를 위한 기도

우리집 개에 대해서


토요일 밤 9시 6분. 현재.

양평집 옥상에 앉아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를 벗삼아 브런치에 접속했다.

오늘 아침 조씨에게서 온 메세지

고갱님의 주문을 받았으니 오늘은 그럼 <엄마와 개 세마리>에 대한 이야기를 써봐야겠다.



우리집에는 개 세마리가 살고 있다.

울집에 온 순서대로 서열이 정해졌다. 심바, 탄이, 레오.

심바는 백구, 8살. 탄이는 삽살개 7살 (추정). 레오는 리트리버 3살이다.


심바는 까망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후 삐용형부가 데려다 준 아이다.

지 밥그릇에 오줌싸는게 취미고, 하늘보면서 스카이 콩콩하며 똥싸는게 특기다.

개집 구조상 스스로 똥을 처리할 수 있는 나머지 둘과 달리 똥도 자주 싸면서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구조라 엄마의 미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2015년 여름, 초파리가 우리 심바 눈에 알을 까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발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당시에 심장사상충 진단까지 받았다. 당연히 엄마는 무슨 개XX 치료는 치료냐며 당장 갖다버리라고 했었고, 나는 제대로 돌보지못한게 미안해서 한참이나 심바집 앞에서 심바를 끌어안고 울었었다. 하필 장마였고, 엄마는 꼴도 보기 싫다며 형부에게 둘다 (심바+나;;;) 갖다 버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결단력 갑!!!!!!;;;;;)

그러나 엄마와 가족 모두의 반대에도 형부와 나의 협작으로 우리 심바는 3차례 심장사상충 치료를 받고, 눈에 초파리 알을 제거하는 시술도 받아서, 다행히 완전하게 건강을 회복했다.


엄마가 당시 우리하는 꼴을 가만히 잠자코 있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한 말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엄마, 엄마가 아파도 안 버리고 끝까지 치료해줄꺼야!!!!” 좀 심하다 싶겠지만 이렇게 초강수 아니면 우리 호랑이 엄마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살면서 배운, 독하지만, 효과있는 노하우다;;


나이에 비해 철이 없고(날 닮았나;;) 아직도 방방 뛰며 잘 까불고, 자기보다 먼저 다른 개 산책이라도 시켜줄 요량으로 목줄 바꿀라 치면 세상 구슬프게 울고, 짖고 난리를 친다. 건강 이상무!!


탄이는, 아픔이 좀 있다.

원래 주인이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우리가 새주인이 생길 때까지 임보아닌 임보를 하게 됐는데, 결국 마땅한 곳이 없어서 우리랑 살게됐다. 이전 주인과 공놀이를 즐겼는지 유독 공을 좋아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랑 5년 넘게 살고 있지만 우릴 주인으로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 3년간은 확실히 그저 밥주는 사람이었다;;) 오지않을 주인인데 이제나 저제나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 왠지 좀 딱하지만 그렇다고 밥을 더 주지는 않는다. 첨엔 왜 쟤까지 떠맡아야 하냐며 엄마의 반대가 심했지만 지금은 족발뼈라도 생기면 제일 먼저 탄이부터 챙겨준다. 똥 오줌 잘 가리는게 이쁘단다. 심바와의 서열싸움에서 이겼지만 굴러온 돌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실력과는 별개로 2인자 자리에 만족할 줄 아는 센스가 있다.

탄이 이발 전, 후 모습이 마치 머털이랑 흡사해서 이미지 첨부해봤다.


마침, 오늘 탄이를 이발시켰다.

어찌나 숱도 많고 엉켰는지 털 깎다 어두워져서, 내일 아침 다시 이어서 자르기로 했다.

탄이 이발하는 날 (2020.05.30)



마지막으로 까불이 우리 레오 3세.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개들이 우리집을 스쳐갔지만 갖은 이유로 엄마에게 퇴짜를 맞았다.

그런데 레오는 특유의 친화력과 애교 덕분인지 어영부영 눌러앉아 집한칸 얻어서 벌써 3년째 잘 살고 있다. 무엇보다 똥을 자기 집 뒤 넝쿨에 얌전히 싸놓는 습관 덕에 호랑이 같이 무섭고 까다로운 울엄마 심사기준을 통과한 것 같다.


그렇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사흘이 멀다하고 돌아다니는 개장수 트럭소리에 백지장보다 가벼운 엄마 마음이 수십번도 넘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사료 축낸다. 똥을 많이 싼다. 여름엔 똥파리가 꼬인다. 고양이지나가는데 왜 짖어대냐 등 갖가지 이유로 우리 아이들은 개장수에 끌려갈 생명의 위협을 주 양육자로부터 받고 있는 거다. 그나마 밥도, 새똥만큼 주면서;;;


오늘도 나는 엄마한테 알랑방귀를 끼고, 또 설득하고, 설득한다.

그나마 얘네 밥주려고 엄마가 마당이라도 나와서 걸으며 운동하지 않느냐. 엄마 지켜줄라고 밤새 짖는애들 기특하지 않냐. 개장수가 데리고 가면 바로 죽는건데 그럼 우리 죄짓는거다. 사는동안 같이 어울렁 더울렁 살다죽자. 고. 나의 끊임없는 설득과, 협박과, 엄마의 최소한의 양심 덕분에 아직 용케도 우리 아이들은 잘(;;) 살고 있다.


모처럼, 그러니까 반년만에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쓰담쓰담하면서 해주는 기도라, 하기전에 진짜 많이 망설였다. 요즘 얘가 백구인지 똥갠지....레오는 은행나무아래 진드기에....탄이는 본투비 타고난 삽살개 털 덕분에 한시도 턱주변이 깨끗할 수가 없다....;;;;)

저 못되고 이기적으로 기생하려는 초파리 & 찐드기와

다가오는 여름의 무더위와

사흘도리로 마을을 돌아다니는 개장수에게 흔들리는 우리 엄마의 변덕스러움으로부터,

부디 우리 아이들을 지켜달라고.

우리가 뒷밭에 가족빌라를 짓고, 앞밭에 도로가 새로 나더라도 꼭 같이 살 수 있게해달라고,

되도록 오래오래 건강하자고.


세상 분주하고 산만하고 기도 중에 오줌싸는 아이들......(노답;;)

그와중에 다소곳하게 귀를 쫑긋한다.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이.


오줌이나, 밥그릇에 싸지마라.

그러다 진짜 쫒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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