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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2. 2020

조카 보고서


평온한 나의 일상을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사람들. 언니 그리고 그의 주니어인 조카들이다. 언니나 조카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을라치면 내 가슴이 무너진다. 그중에서도 나의 스무살에 세상빛을 본 큰 조카가 나의 아킬레스건이다. 소중하지만 소중한만큼 걱정도 큰. 

최토끼씨, 로빈슨씨에 이어 내게 영감을 많이 주는 아이이기도 하다. 5분만 같이 있으면 화를 치솟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아인데 요즘 조금씩 달라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일명, 착한 윤콩이 되기 프로젝트, 라나 뭐라나. 근데 뭐 인간이 그리 쉽게 변하겠냐....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입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말했다가는 또 따다다다다다다~~~~~ 꼰대마인드네 어쩌네 난리칠 게 뻔하니까. 




이번 생애엔 안 되는 걸까

생각한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완벽한 인격이고 이상적인 인간일까? 머리로는 이해하고, 포용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면 화부터난다. 공감해 줄 이를 굳이 찾아 나서서 상대를 비난하고, 기어코 오늘의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며 민낯을 드러내야 감정이 해소된다.


내가 도움을 요청한 순간에 믿었던 상대가 화부터 낸다면?

그가 사과하기 전까지는 아마도 마음을 닫거나 더 이상 마음을 주지 않을 것 같다.


오늘 내게 도움을 청해온 스무살 아이는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다짜고짜 화부터내는 저 인간에게 내가 도움을 청하나봐라’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왜 화가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화를 낼 이유가 없는데 왜 나는 화부터냈을까?


타인으로 하여금 눈치보게 하는 부류의 인간!


그런 사람을 제일 질색하지만, 불행히도 내가 그런 인간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마상을 입히고 눈치를 줘야

나는 내가 꿈꾸는 이상향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생애엔 못되는 걸까?


#좋은이모 #코스프레라도 #하고싶다

 


유전은 아닐텐데

내가 낳은 애도 아닌데 이상한 점만 꼭 나를 닮았다.

다음 장면은 생각 안하고 아빠한테 대든다거나

(뒷수습은 늘 나의 큰언니이자, 그녀의 어머니 몫. 나때도 쟤때도;;)

금사빠라거나

덕질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는 폐인생활을 한다거나

남들이 보면 한심하달 수 있는 취미 (연뮤덕, 쩜오디)를 가졌다거나

어른답지 않은 행동하면 나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4가지없게 대거리한다거나.

별다른 태교는 안 했지만 언니 뱃속에서

콩알만한 점이었던 시절부터 내가 옆에 있어서 그런가 싶어

언니한테 미안한 마음 반, 이 아이한테 책임감 반

앞으로 이틀.

예민보스인 나와 함께있을 수 있는 시간이 최대 사흘이라고 했으니

금요일까지만 잘 지내면 된다.

휴.

금요일아 빨리와라!


슬픈 단어

강박, 불안.

이 단어들이 주는 슬픔을

사람들이 모르고 산다면 더 좋으련만.

 

 

 

윤콩이 대학 실기 D-1

내일은 윤콩이 실기시험이 있는 날이다.

내 딸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히는지.

암투병하다 생을 마감한 일본 여배우 키키 키린은 말했다.

남이다 생각하고 무심해지라고.

노력 중이다.

저 다섯의 조카들이 다 남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거리 두기.

나는 안다.

힘든 일이 전화위복 되기도 하고 좋은 일이 화가 되기도 하는

쿵짝쿵짝 네박자 속에 인생지사 왔다갔다하고 모든 것이 새옹지마인줄을.

그렇지만 우리 윤콩이는 힘든 일 없이 꽃길만 걸으면 좋겠다.

이런 게 부모 마음이려나.

부모도 아니면서 왜 부모마음 같은 건 생겨서…



  

나만 몰랐던 이야기 I

윤콩 19세: 이모 고추 바사삭 있잖아

그거 배달하는 사람들이 몇 개씩 빼 먹어서 요즘 난리래

(그것 좀 한두개 배고픈 사람들이 먹으면 어때서… 사람들도 참)

미저리 48세: 대두. 게장 말이야.

이런거 팔면 꼭 알이 안 들어 있다면서 한통 새 걸로 다시 받는 사람들이 있대.

이번에 게장 공구 할 때도 4명이 컴플레인 했어 알이 없다고.

(알…이 꼭 있어야 하는건가?;;;)

석팔 7세: 이모네 집엔 왜 화장실이랑 거실이 방하고 같이 있어?

(원룸…이니까…;;)



나만 몰랐던 이야기 II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라는 책을 읽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대목에서

“이사람, 어른이네. 어른이구나!” 하고 혼잣말을 했더니

게임만 시켜주면 영혼을 한 세 번은 팔 기세로

껌딱지처럼 붙어서 시중을 들던 조카가 물었다.

왜? 이모?

그 사람도 털이 났어?

9세 기준에서 어른이란, 털이 난 사람이구나.

근데 도현아.

털이 나도 아직 ‘애’인 사람들도 많아;;

큰이모 봐바.

있을 건 다 있어도 철이 없잖아.


  

 

느끼보이

내 주말 일상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음악선곡도 내 취향 배려해주고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각자 책 보고

‘화이트 데이’인데 분명히 아무에게도 선물 못 받았을 거라며

편의점에서 초콜릿을 사준다

어린이 미식가 입맛에 맞는 음식을 제때 공급하고

따뜻한 녹차나 우롱차만 준비해주면 끝!

한가지 주의할 점은,

느끼하단 점이다.




엄근진 배시똥

타인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엄청 야박하다.

브루마블에서 지는 걸 싫어한다.

화투에서도 돈 잃으면 판을 덮는다.

잘못한 일 쌓이면 불안하다고 고해성사한다.

심부름 시키면 죽어라 안 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곧잘 한다. 나무 밑둥치기에 탁월하다.

아기들과 놀아주는 걸 좋아하고

그 아기들이 자기를 안 따르면, 괴롭힌다.

자세히 보면,

든든하고, 사랑스럽다.

진짜,

자세히……..

오~래

노~~오력하고 참고 봐야한다.



정석팔

손자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할머니에게 예쁨 받는 존재

초등학교 때 하굣길에 ‘호랑이 할머니’ 드시라고 떡을 사다 준 게 전부데쓰.

그 하나의 에피소드가 최여심 여사에게 너무도 깊이 각인돼

그 뒤부터 할머니 잔소리로부터 프리패스를 획득했다.

집돌이.

집에서 게임만 한다.

가끔 피아노도 친다.

간지럼 잘 타고

등 긁어주는 걸 좋아한다.




진도

매력남

좋아하는 돈주고 젤리준다고해도

남에게 해되는 이야기나 행동은 절대 안한다.

쪼꼬민데 박력도 있고 엣지도 있고 잘생겼다.

지금도 어리지만

더 어렸을땐

잠투정 밥투정 목욕투정에

꼴배기 싫었는데

지금은 세상 멋지고 이쁘다.

우리 막내조카, 진또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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