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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7. 2020

Call me by your name 콜바넴

제니퍼 공감각적 리뷰



Oliver and Elio

올리버와 엘리오는,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조합이다. 햇빛이 비추는 테이블에 앉아 각자 자기가 할일에 열중하지만 뜨거운 햇살만큼 서로에 대한 열망도 뜨겁다. 대낮엔 서로 각자가 좋아하는 걸 한다. 책을 보거나 번역을 하거나 작곡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수영하거나.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무료해지면 자전거를 타고 시내에 나가 내일의 무료해질 오후를 대비해, 책을 사거나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아지트 '모네의 언덕'이라 불리는 강가 근처 숲에서 솔솔 부는 바람을 만끽하며 낮잠을 즐긴다. 짧지만 깊은 단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옆에, 여전히 사랑하는 그가 있다. 

올리버. 나의 올리버. 혹은 엘리오, 우리의 엘리오.

저녁이 되면 야외 테이블에서 기분 좋은 바람을 만끽하며 저녁을 먹는다. 

해질녘 해변을 산책하다 밤이 되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나무나 바위에 걸터앉아 사랑을 속삭인다. 이미 몇번이나 이야기 나눈 적 있는 가슴 저릿한 이야기들. 언제 처음 서로에게 빠져들었는지, 내 맘과 다를까봐 아닌척 숨겨왔던 서로를 향한 욕망, 짝사랑으로 끝나버릴세라 두려웠던 시간들에 대하여. 

그리고도 아쉬운 밤은, 달빛 비추는 발코니에서 음악을 듣다 더이상 참아낼 수 없을만큼 잠이 쏟아질때 침대로 간다. 이 모든 것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크레마에서라면 가능할 것만 같다. 그래서 꼭 가고 싶은, 이칼리아. 크레마

Somewhere northern Italy CREMA, 2019



그해, 여름손님. 여름이 주는 짧지만 강렬한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성장소설!



편애하는 밑줄

어쩌면 그때부터인 것 같다. 그 펄럭거리는 파란색 셔츠와 걷어올린 소매, 우리 집으로 이어진 뜨거운 자갈길을 빨리 걸어보고 싶다는 듯 해진 에스파듀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볼록한 발꿈치. 벌써부터 "해변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하지?" 라고 물으며 내딛는 발걸음. 어쩌면 그때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도착하여 평상시처럼 늘어지는 점심 식탁에 내 옆에 앉았을때, 그해 여름 우리 집으로 오기 전 시칠리아에 잠깐 머무느라 살이 약간 탔지만 손바닥은 부드러운 발다박과 목, 팔처럼 태양에 별로 노출되지 않아서 창백한 빛깔임을 알았을 때 말이다. 어쩌면 점심 식사후 다들 수영복 차림으로 집 안 팎에서 느긋한 휴식을 취할 때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해변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테니스장이거나. 혹은 그가 도착한 날 집 안과 주변을 보여주다가 어쩌다 철제 단조 대문을 지나 텅 빈 내륙 지역을 따라서 한때 B와 N을 이어준 버려진 철도를 향해 둘이 걸었을 때인지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뒤에, 내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온지 일주일이 지난 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우리는 서로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훨씬 전부터 신호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P 7~19
그는 어려운 이웃이 될 터였다. 멀리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손과 가슴, 거친 표면을 밟아본적 없는 발, 좀 더 친절한 시선으로 바라볼때의 눈빛이 마치 부활의 기적처럼 느껴졌다. 절대로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지만, 왜 그럴 수 없는지 알려면 계속 바라봐야만 했다. P 15
제발 내가 잘못짚었다고 말해줘요, 전부 다 내 상상이라고, 당신도 나와 같을리 없으니까. 만약 나와 같다면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입니다. 그날 오후 내 간절한 기도에 부름 받은듯 그가 노크도 없이 들어와 왜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해변으로 나가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감히 입 밖으로 낼 용기는 없었지만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당신과 같이 있기 위해서에요. 올리버. 수영복을 입고서든 입지 않고서든, 당신과 내 침대에 같이 있기 위해서. 아니면여름 한달만 빼고는 내 침대가 되는 당신의 침대에서, 날 가져요. 내가 원하는지 물어보고 대답을 기다려봐요. 내가 싫다고 말하지 않게 해줘요. 그날 밤은 꿈이 아니었다고 말해줘요. P21
오전에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 편곡 작업을 할때 나를 만족시키는 것은 그의 우정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고개를 들었을 때 그가 거기 있는 것이었다. 선크림, 밀짚모자, 빨간색 수영복, 레모네이드. 고개 들었을 때 당신이 거기 있는 거예요 올리버. 머지않아 고개를 들었을 때 당신이 더이상 그자리에 없는 날이 올테니까. P41
오늘은 그가 저녁을 같이 먹을거라는 희망을 거의 포기할 무렵,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거나 식탁에 앉은 모습을 보면 가슴이 마구 뛰었고 독을 품은 꽃처럼 희망이 피어났다. 반면 당연히 함께 저녁을 먹을거라고 생각했을때 들려오는 위압적인 '나가요!'는 자유로운 나비의 날개를 꺾듯 잘라 버려야 하는 희망도 있음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나는 그가 우리집을 빨리 떠나서 모든 게 끝났으면 했다. 차라리 그가 죽었으면 하기도 했다. 계속 그가 생각나고 언제나 볼지 알 수 없는데 적어도 그가 죽으면 모든게 끝날테니까. 그의 존재가 얼마나 신경쓰이는지, 누구든 무엇이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의 태평함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p56
그해 여름을 돌아보면 사건의 순서가 잘 정리되지 않는다. 중요한 장면이 몇개 있다. 그밖에 기억나는 것들은 순간의 '반복'이다. 아침 식사 전후의 일과. 잔디밭이나 수영장가에 누운 올리버. 전용 테이블에 앉은 나. 그후에 이어지는 수영이나 조깅, 그리고 나면 올리버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번역가를 만나러 간다. 차양이 달린 커다란 야외 테이블이나 집 안에서 손님 한둘과 함께 하는 길게 늘어진 점심 식사. 태양과 침묵이 있는 멋지고 푸른 오후 시간. 다른 장면도 있다. 식후의 침묵. 다들 낮잠을 자거나 일하거나 책을 읽거나 온 세상이 고요한 반음에 잠겨있을 때. 우리집을 초월한 세상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서서히 스며들어 나를 잠깐 잠들게 만든 천국 같은 시간들. 그리고 오후에 치는 테니스, 샤워와 칵테일. 저녁 시간까지의 기다림. 역시나 손님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두번째로 번역가를 만나러 가는 그. 때로는 혼자 때로는 친구들과 시내로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는 외출. 예외적인 장면들도 있다. 늦은 오후 다 같이 거실에 앉아 음악을 듣고 온 집안의 창문에 우박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 갑자기 나타난 그를 보고 심장이 쿵 내려앉으면 두려우면서도 흥분되었다, 그가 언제 나타날지 두려웠다. 나타나지 않아도 두려웠고 나를 쳐다봐도 두려웠다. 쳐다보지 않으면 더욱 두려워졌다. p77
"내가 묵는 호텔에서 한 잔 해요" 
그가 불편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같이 자자는 게 아니라 한잔 하자는 거예요" 
나를 보는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잘생겼고 머리도 빠지지 않았고 살도 찌지 않았고 아침마다 조깅을 한다고 했고 그때처럼 피부가 부드러웠다. 
손등에 흑점 몇개가 있을 뿐이었다. 흑점.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게 뭐예요?" 먼저 그의 손을 가리키고는 만져 보았다. 
"온 몸에 있어" 흑점. 마음이 아파왔다. 하나하나 나의 입맞춤으로 날려버리고 싶었다. 
"젊을 때 햇빛을 너무 쏘여서 그래, 그게 아니라도 놀랄 일이 아니지. 난 늙고 있어. 3년 후면 큰 아들이 그때의 네 나이가 돼. 사실 내 아들이 지금의 너보다 우리가 함께였을  그때 내가 알던 엘리오에 더 가깝지. 묘하다니까" 
그는 '우리가 함께였을 때'라고 표현했다. p 291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네가 와서 기뻐." 
"나도 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왜 갑자기 긴장이 되는걸까. "그러세요"
"할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하겠어?"나는 그를 쳐다봤다. 
"그걸 왜 물어요?"
"그냥 대답이나 해"
"할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하겠느냐고요? 바로 그러겠죠. 하지만 벌써 이걸 두잔 마셨고, 세번째 잔을 주문할거예요"그가 미소지었다. 
이제 내가 그에게 물을 차례였지만 그를 당혹스럽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올리버니까.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 p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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