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뮤덕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의사가 될 청년이 뮤지컬 배우가 되어 한국 무대에 섰다면서 언론 전체가 떠들썩하게 <미스 사이공>의 남자배우 '마이클 리'를 소개했던 것이.
하지만 당시 그 공연은 나로 하여금 (언론의 호평과는 달리) 앞으로 절대 마이클리 캐스트는 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한국어가 서툰데다 발음 자체가 애매모호했던터라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흐른 몇 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쇼케이스 영상을 보다가 그의 발음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물론, 내로라할 국내 뮤지컬 배우들을 아우르면서 공연연습을 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예의 사람좋은 미소를 뿜뿜하며 즐겁게 노래하는 그를 보면서 심쿵, 했다.
그래서 뮤지컬 <더 데빌>에 그가 악마 X로 출연한다고 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마이클리를 선택했다.
증권가에서 투자자들의 돈을 모두 잃고 그빚을 해결하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존 파우스트와 X.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한다. 한지상 버전으로 봤더라면 어땠을까....하는 ㅎ)
처음엔 도대체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X 마이클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과한 사운드에 배우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초집중해도 알 수 없었는데 이미 남자 배우는 울며 불며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는 신대신 지금 나를 도와주는 악마에게 자신을 의탁하겠다고 하고 있었고, 처음 보는 여자 배우도 관객이 감정이입할 새도 없이 자기 way를 향해서만 자기 feel에 충만해서만 무대를 '장식'하고 있었다(차지연으로 봤었어야 했는데...)
그러는 가운데,
나의 마이클리가 마치 구원투수처럼 높은 계단에서 내려와 우리 앞에 서서 그 멋진 음성과, 막힘없는 고음과, 이제는 누가들어도 너무나 쏙쏙 귀에 박히는 한국어 발음으로 무대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열광의 연속.
아빠다운 미소와 눈짓으로 앙상블과 무대위 연주자들을 챙기는 모습도 어찌나 멋지던지.
집에 돌아와서도 여운이 가시질 않아 그의 겟세마네, this is moment 등을 찾아봤다.
그리고 굳이 몰라도 좋을 내용을 알게 됐다.
이미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을.
나의 덕질도 금세 끝이 날 것을 믿는다.
남의 아버지를 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