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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6. 2020

3월의 눈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헌사

연뮤덕


연극은, 

소중한 것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 남는 것은 무엇이냐고 관객에게 묻는 듯 했다. 



내용은 이렇다. 


사업에 실패한 손주를 위해 노인은 기꺼이 평생을 살아온 고택을 내놓는다. 동네사람들은 노인이 손자와 함께 살게 될거라고 생각하지만 내일이면 노인은 정든 동네와 집을 떠나 양로원으로 가게 된다.


영감의 쓸쓸함은 달빛으로 표현되고, 손주며느리가 죄송하다며 싸들고 온 평양만두에서 복발친다.

한평생, 집을 떠난 아들이 무사하기를 기도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앞서 저세상으로 떠난지 오래.


마을에 하나뿐인 이발소가 사라지면서 이발소도 함께 떠났다. 이발해서 버는 돈 보다, 작은 공간 임대해 주고 가만히 앉아서 받는 돈이 더 많다면서 이발사는 기어코 문을 닫았다.


동네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이 되어, 중국 일본 관광객들의 눈요기거리가 된 상황에서, 오래된 한옥들은 부서져 나가고,  동네 하나뿐인 이발소도 사라지고, 만두집도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집이 지어지고, 새로운 음식점과 까페가 생겨난다.  소중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 남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깨어 부시고, 다시 짓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걸까?



연극이 끝나고 난 후, 한참 울었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 중에서 단연 가장 그리운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아빠'다. 언젠가 사라질지 모를 우리 엄마를 위해서도 더 잘해야하는데 막상 엄마가 궁금해하는 사안들에 대해 이런 저런일을 물어올라치면 자세히 말해주지 않고 짜증부터 낸다. 잘해야지. 생각만 하지말고, 잘 해드려야지.




무대미술가 박동우 

시골 앞마당, 기와집, 마루 밑에 넣어둔 후레쉬, 깨진 화분

연극이나 뮤지컬이 시작하기 전 혹은 모든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사라진 뒤, 무대배경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 연극은 내용보다도 무대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평생을 살아온 한옥. 그 고택의 느낌을 내기 위해 선택한 소품들, 조명, 대청마루. 마루 바닥 안에 보일듯 말듯 놓인 후레쉬와 깨진 화분까지, 어느 것 하나 향수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이 없었다. 



유년시절을 시골의 어느 한옥에서 보냈던 것일까? 어릴적 우리집 마루, 고양이와 쥐가 한바탕 전쟁을 치르던 그 은밀한 마루바닥, 밖에 있던 화장실에 갈 때 꼭 필요했던 후레쉬까지 하나하나 소소한 추억이 깃든 소품을 보며 연극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울컥했다. 

그래서 연극이 끝나고, 무대미술가의 이름부터 찾았다. 박동우. 박동우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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