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북리뷰
헤세의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페터 카멘친트를 한번 읽었을때와 세번 읽었을 때 차이에 대해서 헤세가 서문에서 이야기하는데, 한번 더 남았다. 헤세의 안내대로ㅡ 세번째 읽고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한번 더 읽고 다시 정리하리라!
편애하는 밑줄
1장
특히 나무를 볼때면 나는 마음속 깊이 감동했다. 그들은 그들 특유의 생명을 이어 가면서 자신의 독특한 모양과 가지를 만들어 내고 자신의 고유한 그림자를 던졌다. 정착민이자 투사로서, 특히 높은곳에 있는 나무일수록, 그들 각자는 자신들의 생존과 깨어있음을 위해 바람과 돌과 날씨에 대항해 고요히, 하지만 끈질기게 투쟁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짐을 짊어지고 스스로 버텨내야 했기에 자기만의 고유한 모습과 독특한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폭풍때문에 가지가 한쪽으로 치우쳐버린 소나무들이 있었는가 하면, 붉은 줄기가 마치 뱀처럼 바위를 칭칭 감고 선 것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무와 바위가 서로를 누르고 지탱해주는 것이었다.
말은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
흡사 같은 것처럼 보이는 생활양식에도 불구하고 우리씨족 마을에는 악한 사람과 선량한 사람, 고상한 사람과 보잘것없는 사람, 권위있는 사람과 비천한 사람이 한데 어울려있었다. 말하자면 우리 마을은 큰 세계의 축소판이었다. 대인과 소인, 교활한 자와 멍청한 자가 서로 돈독히 친척 관계를 맺고 있어서, 같은 지붕아래 살면서도 서로가 교만을 부리거나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 감정이 상하기 일쑤였다.
3장
나는 친구를 더이상 만들지 않았다. 리하르트만을 전적으로, 질투심까지 느끼며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와 만나는 약속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틀림없이 지켰으며, 그가 나를 기다리게 하면 마음이 아팠다.
"내게 우정은 사소한 일이 아니야"
이에 대해 리하르트는 "그말이 그의 심금을 울려, 그는 즉시 다시는 잘못을 하지 않기로 맹새했도다..."라고 유쾌하게 시를 인용했다.
집에서도 종종 나는 에르미니아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내가 그녀의 예술을 높이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 나의 열정을 꺼뜨리거나 감소시키지는 않았다.
4장
죽음은 올바를 때를 알고 있으니,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그를 기다려도 좋을 것이다. 나는 또한 고통과 실망과 우울은 우리를 망치고 쓸모없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성숙시키고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5장
그녀는 영리해보였지만, 지나치게 그런 티를 내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흉보는 말은 지식인 사회의 남녀 사이에서 즉시, 무성하게 퍼져 나가게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을 더듬었다. 엄숙하고 험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그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반쯤 감았다. 내가 마음을 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그녀가 조용히 기다려줘서 기분 좋았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그녀도 깨닫고 있었다.
나는 끝없이 숲과 산, 목장과 과일나무, 관목들을 보았고 무언가를 기다렸다. 아마도 나 자신, 아니 사랑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6장
꽃같이 아름다운 시절도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
좋은 일이 있거든 마음껏 즐겨라, 내일을 알 수 없는 인생이니.
수줍어하던 이웃소녀들까지 점차 내게 친밀감을 갖게 되어 떠들썩한 동네잔치에 끼어들었고, 작은 그림을 선사하면서 내 신앙심을 믿기 시작했다. 내가 경박한 농담을 하지 않고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지도 않은 덕분인 듯 싶다.
7장
스스로 아주 동정심 많고 선량한 사람이라고 여기던 우리는 그를 집에 가둬놓고 산책하러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흡족한 기분으로 아이들과 산책을 즐기고, 아름다운 가을의 금빛 햇살을 만끽했다. 불구자를 홀로 집에 두고 나왔다는 데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끄러워하거나 가슴 아파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잠시나마 그에게서 해방됐다는 사실에 몹시 기뻤고, 맑고 따스한 공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들이마셨다.
(중략)
그러자 아시시에서 내가 이웃사람들에게 성 프란체스코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내게 모든 인간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며 큰소리를 쳤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중략)
유감스럽게도 그는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기꺼이 내 제안을 수락했다. 그는 나와 함께 그 불구자를 하나의 손님으로 받아들여, 그를 부양하는데에 드는 약간의 돈을 공동으로 나누어 부담하기로 했다.
(중략)
가을이 이상하리만치 오랫동안 따뜻하고 아름답게 지속되었다.
8장
보피는 맥을 특별히 좋아했다. 맥이라는 동물의 유일한 미덕은 그 족속이 아니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청결함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맥이 검나하고 미련하며, 불친절하고 은혜도 모르며, 더구나 대단한 먹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략) 더욱이 맥은 먹이를 구걸하지 않고 감사해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당연한 공물처럼 근엄하게 받아먹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동물을 세관원이라고 불렀다.
교수 집으로 가는 일은 거의 없었으나, 엘리자베트에게는 자주 들렀다. 그녀이 집은 어떤 경우든 끊임없는 마력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거기 앉아서 차나 포도주를 마시며 그녀가 주인 노릇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속으로 항상 베르테르 같은 감정 따위를 비난했지만, 여기서는 가끔 감상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머니에 관해서 네가 기억해줬으면 해.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에 대해 알고, 감사할 사람이 없을테니까. 사람들이 모두 그런 어머니를 갖고 있다면 정말 좋을거야, 페터. 내가 전혀 일을 할 수 없었는데도 날 극빈자 수용소로 보내지 않으셨어"
헤세의 주인공들에게 각자 나름대로 자기만의 고난 해결책이 있었다. <페터 카멘친트>의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돌파구 삼았고 <데미안>에서는 내면의 힘을 키우는 방법을 찾았다. 그런데, <수레바퀴 아래서> 주인공 한스는.....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헤세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까?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건 당사자의 몫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소설을 쓴다면, 나는 내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을 자살로 마감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방황하는 청소년, 특히 ‘남자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오롯이 나로 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그래야 하는 이유에 대해, 데미안 보다 더 잘 설명해줄 이가 있을까?
편애하는 밑줄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없어.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주었다는 것에서 비롯하는 거야.
어느 아침, 그런 꿈들을 꾸다 깨어났을 때, 나는 갑자기 그 그림의 실체를 알아보았다. 그 그림은 참으로 기막히도록 친숙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나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어머니처럼, 아득한 시절부터 내내 나를 향해져 있었던 것 같았다. 가슴이 뛰며 나는 그림을 응시하였다. 숱 많은 갈색 머리카락을, 절반쯤 여자의 것인 입술을, 특별하게 밝은 뚜렷한 이마를, 그리고 점점 더 분명하게 인식을, 재발견을, 앎을 느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얼굴 앞에 서서 아주 가까이에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크게 뜬, 초록빛 도는 굳은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오른쪽 눈이 다른 쪽보다 약간 더 높이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 오른쪽 눈이 찡긋했다. 가볍고 섬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찡긋했다. 그리고 이 찡긋거림으로써 나는 그림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내가 그걸 이렇게 늦게야 바로소 찾아낼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데미안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금지되었다>는 것은 그러니까 영원한 것이 아니야. 바뀔 수 있는 거야. 오늘도 누구든 어떤 여인과 함께 신부님 앞에서 결혼하고 나면, 동침해도 돼. 다른 민족들에게서는 달라, 오늘날도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들 누구나 자기 스스로 찾아내야 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지.
그가 언젠가 말했듯, <오로지 말을 늘어놓기 위한> 대화를 그는 견디지 못했다.
저 몇 주일, 몇 달의 다정한 안정이 오래전에 사라졌다. 하나의 섬에 도달했고 평화를 찾아냈다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늘 그랬다. 하나의 상태가 나에게 좋아지자마자, 하나의 꿈이 내게 편안해지자마자, 그것은 어느새 벌써 시들고 흐려졌다. 부질없다, 그 뒷모습을 보며 탄식함은!
나한테 이야기했었지.
음악을 사랑하는 건 음악이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는 파스토리우스가 나한테 했던 말을 기억했다. 그의 말이 참으로 옳다는 것을 느끼는데도, 그 말을 그대로 전할수는 없었다. 내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것을 따르기에 나 자신이 아직 성숙해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충고를 남에게 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나에게 나 지신에게로 가는 용기를 선사했다. 아, 그런데 이제 서서히 자라가면서 나는 그에 대한 저항을 감지한 것이다. 이제 들으니 그의 말에는 지나치게 많은 가르침이 담겼고, 그가 완전히 이해하는 건 나의 한 부분뿐이라고 느껴졌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몇 주 뒤 나는 대학에 등록했다. 모든 것이 실망이었다. 내가 들은 철학사 강의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젊은이들의 방황과 똑같이 실체없고 공장식이었다. 모든 것이 찍어낸 것 같았다. 그리고 소년티 나는 얼굴들에 어린 달아오른 즐거움은, 보는 사람이 우울할 정도로 텅 비고 기성품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자유로웠다. 나 자신을 위해 온 하루를 쓸 수 있었다. 교외의 오래된 낡은 집에서 조용하고 아름답게 지냈고, 내 책상 위에는 니체가 몇 권 놓여 있었다. 니체와 함께 살았다.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꼈다.
사람들은 정확히 알아.
사람 하나 죽이는 데 화학이 몇 그램 필요한지. 그러나 어떻게 신에게 기도해야 하는지는 모르지.
어떻게 한 시간을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걸.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길은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돼요. 그녀가 말했다. 강요해서도 안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면 내가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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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고, 사색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지혜로운 것은 좋은 일이고, 참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이유없이 규칙적으로 어둠의 그림자가 찾아오는 것
불 피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
나무를 사랑하는 것
헤세와 공통점을 무려 3개나 찾았다. 전쟁을 겪고나서 고작 정원에 대해 글을 쓴다고 비판을 받아야 했던 헤세. 헤세는 자본가가 착취하는 노동자의 삶이나, 기계로 인한 진보, 탐욕이 부르는 전쟁보다 모차르트 오보에 4중주나 바이올린같은 누구에게나 무해한 것을 사랑했다. 모두가 꼭 시대의 기록자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을 것 같던 헤세의 유다나무 (박태기 나무)가 죽었을 때, 헤세가 아끼던 주머니칼을 잃어버렸을 때, 헤세가 이사를 갈때, 정원을 관리할때, 그 순간순간을 기록한 글들에서 이상하리만치 큰 위안을 얻었다. 내가 그리워하고 지향하는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었을까? 그리고 생각했다. 10년은 더 도시에서 지내다 전원, 정원으로 돌아가도 되겠다고. 전쟁을 겪은 것도 아니고 신경쇠약을 앓는것도 아닌데 헤세에 비해 너무나 평온한건 아니니가 싶고 여기서 더 많은 겪은 일을 아직은, 겪어도 되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 외로워지고, 더 괴로워질때, 그때 고향으로 돌아가기로..조금 더 버티기로, 이곳에서.
편애하는 밑줄
어떤 신문에 난 기사가 내 눈에 띄었고 나는 즉시 그 기사에 끌렸다. 그것은 한 문학단체에서 '헤르만 헤세의 밤'이라는 행사를 개최하는데 가볼만한 행사라고 추천하는 기사였다. 나는 서둘러 그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찾아가 행사장 입구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는 사람에게 헤르만헤세도 그 행사에 참석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헤세라는 사람이 참석하는 것에 대해 조금도 가치를 두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를 안심시켰다 (중략)
이날 저녁행사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략) 어느 정도는 조예가 깊은 전문가로 통할 수 있었을 그 문학의 밤 행사에서조차 나는 나를 은둔자로 만드는 고립감을 느꼈다 (중략) 내가 보고 체험한 모든 것들이 계속해서 나를 당황하게 해서 내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일이 어디에서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 한번은 나를 우습게 만들지 않고 나를 인정하고 내 힘을 북돋워주는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문명 뒤에 남겨진 온갖 찌꺼기들이 산을 이뤄 지구에는 온갖 쓰레기 더미들이 쌓여있다. 쓸모있는 발명품들이 만들어진 결과 구경할만한 세계 박람회나 근사한 자동차 전시장이 생겨났지만 그 뒤에는 창백한 얼굴에 보잘것없는 임금을 받는 수많은 광부와 질병, 그리고 황폐함이 초래되기도 하였다. 노동자와 기업가들의 얼굴에 나타난 일그러진 표정, 쇠약해진 영혼, 파업과 전쟁, 그야말로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반면에 인간이 바이올린을 발명하고 누군가 피가로의 아리아를 작곡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대가도 치를 필요가 없다.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나 뫼리케 같은 작가 때문에 세상에 대가를 치러야 할 일은 없으며 그들은 마치 햇빛처럼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존재들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내 삶 속의 어두운 파도도 역시 일정한 규칙을 갖고 다가오곤 한다. 나는 날짜도 숫자도 알지 못한다. 나는 한번도 지속적으로 일기를 써본적이 없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따금 내 영혼 속에서 아무런 외적 원인 없이도 어두운 파도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마치 어두운 구름처럼 이 세상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중략) 평소에 마음에 들었던 사람들, 집들, 색깔 그리고 소리들이 의심스러워지고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음악 소리는 머리를 아프게 한다. 어떤 편지를 받아도 기분이 안 좋고 그안에 먼가 신랄한 내용이 감춰져 있을 것 같다. 이럴때 사람들과 억지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고통이고 결국 피할 수 없는 말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략) 그러나 분노와 초조함, 불만, 증오는 사물들에게로 향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증요해야할 대상은 바로 나다. 불협화음과 불쾌함을 세상에 끌어들인 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10여년전 그 낯설고 유쾌하지 않았던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나는 일상적인 교류를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더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신뢰를 쌓아가며 사귀는 이리을 하지 않은 것이다. (중략) 나는 혼자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대신 작은 사물들과 일상적 교류를 한다. 내가 산책하러 나갈때 들고 다니는 지팡이, 우유를 마실 때 쓰는 찻잔, 내 책상위에 놓여있는 꽃병, 과일이 담겨있는 그릇, 재떨이, 녹색 갓을 쓴 책상 전등, 인도에서 가져온 청동으로 만든 작은 크리슈나 신상, 벽위에 걸린 그림, 이런 것들이 나와 교제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끝으로 가장 좋은 교제 상대를 들자면 내작은 아파트 방 벽 책꽂이를 가득 채운 많은 책이다. 그것들은 내가 깨어있을때나 잠이 들었을 때, 식사할때나 일할때 날이 좋거나 궂거나 가리지 않고 나와 함께 한다. 함께 있으면 마치 고향집에 있는 듯한 기분 좋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무는 늘 나의 관심을 가장 많이받는 설교자이다. 나는 나무를 존경한다. 나는 많은 사람 사이에서, 가정집 안에서, 크고 작은 숲속에서 자라는 나무를 존경한다. 특히 한 그루씩 홀로 서서 자라는 나무를 존경한다. 나무는 마치 고독한 존재와 같다. 나약함 때문에 현실을 벗어나 은둔하려는 사람과는 다르다. 마치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고독하게 버텨낸 위대한 사람 같다.
밤바람에 소슬거리는 나무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정처없이 떠돌고 싶은 욕망에 마음을 빼앗긴다. 가만히 오랫동안 귀기울이노라면 왜 방랑하고 싶은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고통때문이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방랑은 고향을 그리는 향수이며, 어머니를 기억하려는 동경이다. 삶의 새로운 비유를 찾으려 하는 동경이다. 방랑은 고향집으로 이끌어간다. 모든 길은 고향 집으로 향해 있으며 모든 걸음은 탄생이디ㅏ. 모든 걸음은 죽음이며 모든 무덤은 어머니이다. (중략)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이제는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처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사람들도 그럿듯이 식물 중에도 늘 특별히 강한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탐욕스럽게 자라면서 곁에서 자라는 다른 식물을 파렴치하고 가차 없이 거세하기도 한다. 그것들의 크기와 강인함에 사람들은 경탄한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마구 날뛰고 숲의 새들도 침묵을 지킬 때면, 우울하거나 고통스러워 혹은 일이 잘못되어서 방에서 뛰쳐나왔을때, 어떤 짓궂은 사람이 보낸 얄미운 편지가 나를 화나게 하고 기분이 상했을 때,
아, 너 푸른 은신처는 항상 흔쾌하고 선량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몇 시간이고 나를 신성한 고요 속에 숨겨주었다. 숲에서는 딱따구리의 울음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이 숲의 품에 안겨 많은 꿈을 꾸고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헛간에서 작고 다루기 쉬운 둥근체와 불쏘시개와 종이를 한줌 갖고 나온다. 이곳에 머물때면 거의 언제나 불을 지피기 때문이다. 불을 지피기를 좋아하는 성향의 유래는 여러가지가 있다. 소년 시절부터 불 피우는 일을 즐기던 것에서부터 아벨 혹은 아브라함이 희생물을 바치던 관습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리라. (중략) 나의 경우 불은 물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많지만 신에게 봉사하는 효소이자 상징적인 의식을 의미한다. 다양한 것들이 하나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하므로 나는 그때 사제가되고 봉사자가 된다. 의식을 치르고 의시기을 이행하는 것이다. 나는 나무와 잡초를 재로 변하게 하고 죽은 것들이 빨리 사라져 속죄하도록 돕는다. 그러면 내 안에서 스스로 명상하며 속죄하는 발걸음이 많은 것들로부터 걸어나와 하나 속으로 되돌아 걸어간다. 신앞에서 나는 순종한다.
나도 불피우는 것을 좋아한다. 한번도 그것을 아브라함이나 아벨과 신앙속 관습과 연관지은 적은 없다. 내게 불은, 지저분한 것들을 태워 없애는 작업이다. 말 그대로 지저분한 것들을 모아서 태울때 기분이 좋고, 복잡한 내 감정을 태울때도 있다. 장작이 불에 타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시간이 좋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고, 시간을 잠시도 허투루 쓰지 않아야한다는 강박속에서 불피워놓은 것을 바라볼때면 편안함이 든다. 뭐, 그 불위에 삼겹살을 얹을 기대를 할때도 좋고. 고구마를 넣었다 꺼내는 순간도 좋아하기는 한다....하하하.
나는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아름답게 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놀랍게도 아침에 믿지기 않는 이른 시각에 일어나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갔으며,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켜고, 자주 목욕을 하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대다수 사람들은 사업가이거나 그들에게 고용된 직원이었으며, 모두가 미쳐버릴 정도로 할 일이 많았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들은 사실 사업이 잘 안 되어서 할 일이 많았으며, 형편이 나아지게 하려고 지나치게 혹사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혹사당하면서도 거의 모두가 물건들을 만들어내거나 그 물건들을 판매하였다. 그 물건들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지 않은데도, 오직 생산자와 상인에게 돌을 벌게 해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1877년 헤르만 헤세 출생 (독일 뷔르템베르크주 칼브)
1881 부모와 함께 스위스 바젤에서 거주. 아버지는 선교사학교의 교사.
1891년 개신교 기숙학교 입학했으나 7개월만에 도망쳐나옴. 시인이 되거나 아무것도 되지 않거나, 하겠다고 선언.
1892년 정신병원에서 요양. 3개월.
1893년-1903년 서점 점원, 탑시계공장 견습공으로 일을 배움, 튀빙겐 서점에서 서적 분류 일을 도움, 첫 자작시 발표. 바젤의 라이히 서점에서 조수로 일함.
1903년 베르누이와 약혼함
1904년 베를린 피셔 출판사에서 <페터 카멘친트> 출간
1906년 베를린 피셔 출판사에서 <수레바퀴 아래서> 출간
1911년 가깝게 지내던 화가 한스 슈튜르첸에거와 함께 인도여행에 올라 실론섬과 말레이지아, 싱가포르, 수마트라까지 둘러봄, 실망감과 병든 몸을 이끌고 여행에서 돌아옴.
1912년 영원히 독일을 떠나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 작고한 화가 친구 알베르트 벨티의 집으로 이사. 로맹 롤랑과의 우정이 싹트기 시작함
1915년 크눌프 생애에 관한 세가지 이야기 베를릴 피셔 출판사에서 출간됨
1916년 부친 사망, 정신분열증세를 보이는 아내와 중병에 걸린 막내아들로 신경이 쇠약해짐. 정신과 치료 받음.
1919년 베를린 피셔 출판사에서 <데미안>이,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간됨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에 씌어지고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19년에 출판되었다.
1921년-1922년 싯다르타를 쓰는 사이 정신분석 치료를 받음. <싯다르타> 출간
1924년 루트벵거와 두번째 결혼
1927년 뉘른베르크 기행, 황야의 이리 등 출간. 두번째 부인의 요구로 이혼함
1930년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출간
1931년 여류시인 니논 돌빈과 결혼. 친구이자 후견인 보트머가 지어준 카사 헤세 Casa Hesse 로 옮겨감
1935년 정치적인 강요에 의해 피셔 출판사와 결별
1936년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빈에 있는 고트프리트 베르만 피셔 출판사에서 출간. 스위스 최고 권위상 수상.
1939년 헤세의 작품이 독일에서 환영받지 못함. 나치의 선번우에 의해 유리알 유희 금지됨 (1942)
1944년 헤세의 작품 출간하던 페터 주어캄프가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됨
2차 세계대전 1939-1945년
1946년 취리히 프레즈&바스무트 출판사에서 전쟁과 평화 펴냄. 프랑크프루트에서 수여하는 괴테문학상 수상, 노벨문학상 수상
1950년 빌헬름 라베상 수상. 페터 주어캄프에게 독자적인 출판사 설립하도록 헤세가 용기를 줌
1955년 독일 출판협회의 평화상 수상
1962년 몬타놀랴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