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북리뷰
드디어 민음사 버전 '안나 까레리나' 3권 정독을 마쳤다
(일단 지도먼저 보고 시작하길 권하고 싶다. 첨부했던 지도는 날아감;;)
스티바-돌리부부 (모스크바)
안나-알렉세이 카레닌부부 (페테르부르크)
레빈-키티부부 (포크로프스코예, 모스크바 서쪽)
드라마 <푸른안개>를 보면서 불륜을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이미 결혼한 사람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그러나 언니들이 차례차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형부의 불륜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불륜은 곧 언니 가정의 불행을 초래하는 것이기에 사회악으로 낙인찍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다시금, 누군가로 인해, 이미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불륜을 다룬 대표작이랄 수 있는 고전 <안나 까레리나>를 꺼내 들었다.
남편과 아들을 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떠난 여자, 안나는. 이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궁금했다.
애석하게도 안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를 두고 누구는 불륜에 대해 신이주는 벌이라고 하지만,
다른 누구는 신은 안나를 심판하기보다 위로하려고 했을지모른다고 주장한다.
복수는 나의 것, 삶은 너의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나는 너에게 삶을 주었고 또 주려했는데 너는 왜 끊임없이 용서대신 심판을 구하고 죽음을 꿈꾼 것이냐, 하면서.
이미 배우자와 가정을 꾸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되느냐에 대한 가치판단은 여전히 헷갈린다.
웬만하면 서로 책임을 다하고, 그게 정 어렵다 판단되면 헤어지고 각자의 삶을 다시 시작하면 좋겠는데 인생이란게 늘 그렇게 자로잰듯 앞뒤가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안나 못지않은 비중으로 다뤄지는 레빈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애정이 많이 갔다.
레빈의 심경을 토로하는 톨스토이의 문장을 통해서는 '폐부를 찌른다' 는 것이 이런것일까 싶을 정도로, 어떻게 저렇게 사람의 감정을,생각을 글로 잘 묘사했을까 싶어 경외감이 들었다. 그런 글을 쓰는 작가이고, 그의 인생역작이기에, 여전히 고전으로 사랑받고,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것이겠지만! 무튼 서머셋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주인공이 만난 인간 군상을 묘사할때의 그 쾌감 비슷한 것이 이 책에서도 있었다. 고전이 달리 고전이 아닌가보다. 이 기나긴 장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금 전 3권을 살펴보는데 이제서야 다시 제대로 읽히는 챕터들이 있다. 정말 더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안나까레리나 영화한편보고, 다시 1권부터 한번 더 정독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은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책들이 있어서 일단은 그 과정은 무기한 연기하는 걸로.......결론내렸다.
편애하는 밑줄
1권 중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불행은 안고 있다.
2권 중에서
브론스키를 비롯한 모든 딜레탕트들에게(전문가는 아니지만 그 분야를 즐기는 애호가, 덕후) 그들 내키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미하일로프, 화가) 그것이 불쾌했다. 커다란 밀랍인형을 만들고 그것에 키스하는 남자를 말릴 수 는 없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인형을 가지고 와서 사랑에 빠진 남자 앞에 앉아 마치 사랑에 빠진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애무하듯 자기 인형을 애무하기 시작하면 사랑에 빠진 남자는 불쾌할 것이다. 미하일로프는 브론스키의 그림을 보고 그와 똑같은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불만에 찬 사람이 자신의 불만에 대해 다른 누군가를 특히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탓하지 않기란 어려운 법이다. 레빈이 머리에도 어렴풋하게나마 그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녀가 받은 너무나 피상적이고 경박한 교육탓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 집에 대한 관심을 제외하면, 자신의 몸치장을 제외하면, 그녀에게는 진지한 관심이 전혀없어. 나의 일에 대해서도, 농사에 대해서도, 농부들에 대해서도, 그녀가 상당한 재능을 보인 음악에 대해서도, 독서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단 말이야.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완전히 만족하고 있어. 레빈은 마음속으로 그것을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닥칠 활동시기, 즉 남편의 아내인 동시에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 아이들을 낳아 젖을 먹이고 키울 시기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는 그녀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그 무시무시한 노동에 대비하여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사랑의 행복과 평안의 순간들 속에서 자책없이 즐겁게 미래의 보금자리를 엮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레빈은 형과 그의 사항의 궤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형이 신앙을 부정하게 된 것이 신앙없이 사는게 더 편해서가 아니라 세계의 현상에 대한 현대의 과학적인 해석이 그의 신앙을 한걸음씩 몰아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형이 지금 종교로 회귀한 것은 똑같은 사상의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병을 고치고 싶은 광기 어린 희망에서 나온 일시적이고 이기적인 것임을 알고 있었다.
먼동이 텄다. 병자의 상태는 여전히 똑같았다. 레빈은 몰래 손을 놓고 죽어가는사람을 쳐다보지 않은 채 자기 방으로 가서 잠을 잤다. 잠에서 깼을때, 그는 기다리고 있던 형의 죽음에 대한 소식 대신 병자가 이전의 상태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략) 니콜라이가 동생을 불러낸 그날밤 그가 삶과 작별을 고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킨 죽음에 대한 감정은 완전히깨지고 말았다. 다들 그가 반드시 곧 죽으리라는 것, 그가 이미 반쯤 죽은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그가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들 이 사실을 감춘 채, 그에게 병에든 약을 주기도 하고 약과 의사를 찾기도 하면서 그와 자신과 서로를 속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거짓, 혐오스럽고 모욕적이며 불경스러운 거짓이었다. 레빈은 성품의 특성상,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을 누구보다 사랑했기에 이러한 거짓을 특히 가슴아프게 느꼈다.
3권 중에서
모스크바에 머무는 동안, 레빈은 결혼 후 만나지 못했던 그의 대학 동창 카타바소프 교수와 다시 친해졌다. 레빈은 카타파소프의 선명하고 단순한 세계관 때문에 그를 좋아했다. 레빈은 카타파소프의 선명한 세계관이 천성의 빈약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으며 카타바소프는 레빈의 일관성없는 사상이 지성의 훈련이 부족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빈은 카타바소프의 선명함을 좋아했고, 카타바소프는 레빈의 훈련되지 않은 사유의 풍부함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만나 논쟁하기를 즐겼다.
뮤지컬 안나까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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