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리 패밀리
나름 파워인스타 미저리 계정 해킹 첫째날 2020.06.04
해커가 미저리 11.4만 팔로워+1400개 포스팅이 있는 계정 아이디, 메일주소, 전화번호, 프로필 모두를 변경했다. 출근을 못했다. 미저리는 남편은 출근하라고 하고, 나는 출근을 못하게 잡아두었다. 남편이 프로그래먼데 그 사람을 잡아야지. 왜 나를?
나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데, 사사건건 나를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인스타에 해킹당했다고 계정신고만 12번은 했다 (제발 답변 좀 해라, 사람 똥줄탄단 말이다. 이 인스타 x들아!!)
그러나 전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이 인스타서비스에, CS 가 실시간 일리 없다. 기다리자.
블로거들 말이, 이건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지난한 싸움이라고 했다. 결국 세달에 걸쳐 인스타로부터 답을 받느냐, 그전에 계정을 버리느냐. 우린 끝까지 찾아내기로했다.
내동생이 집에 있으니 좋다.
셋이 살 팔자인가?
응, 아니야!
소름.....우리집 놔두고 내가 오ㅐ! 굳이!!
아 이노무 해킹. 빨리 계정복구 하든지. 벗어나고 싶다.
한시간 일찍 퇴근해서 미저리네로 갔다. 둘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함께 침대에 누워, 한숨쉬는 일이 고작.
그런데, 로빈슨과 미도리로부터 수십통 전화가 왔다.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 내한공연이 언제 또올지도 모르고 심지어 자리가 VIP인데, 빨리 블루스퀘어로 오라는 것.
우리는 결단했다.
한가로이 뮤지컬을 볼때는 아니나, 집에 누워있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감동적인 건, 가기로 결정했다는 말에 미도리의 답변이다. "고마워"
우리가 고마울 일인데, 왜 미도리가 고마울까.
무튼 로빈슨 덕에 공연은 잘 봤다. 다소, 클래식한 면이 있고 오페라의 유령이..생각보다 안 멋져서 몰입이 어려웠지만, 우리 모두가 아는 그 팬텀 오브 디 오페라, 웅장한 넘버때문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딱 한 두곡? 정도.
모두 양평으로 돌아가는 차를 탔지만, 나는 미저리와 함께 잠실에 내려졌다.
그 해커 개XX 때문에 내 행복한 주말이 깨졌다.
예정대로라면 나도 가족들 따라 양평에 가서, 행복하게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 들으며, 새소리 들으며, 옥상에서 와인 한잔 마시면서 이 여름밤을 만끽했을텐데. 사방이 막힌 통풍안되는 미저리 집에 갇혀있다. 나를 붙잡아둔다고해서 지금 바로 계정이 복구되는 것도 아닐텐데 미저리는 한사코 나를 붙잡는다.
양평도 못가고 서울우리집도 못가는 상황. 그나저나 나는 이렇게 사방을 꼭꼭 닫아둔 통풍안되는 집에선 너무나 갑갑한데. 휴.
그건, 우리 가족의 오래된 전통이다.
위로가 필요한 자리에 나를 던져두기. 나만 놓고가기.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2010년에도 언니들은 나혼자 병원에 두고 홀연히 각자의 가정으로 떠났다.
아뚱의 불안이 찾아왔던 2015년에도, 버젓이 남편도 있는데, 내가 2주간 회사에 휴가를 내고 언니옆에 꼭 붙어있었다.
장염인줄 알았는데 결국 안에서 맹장이 터졌던, 7년전 윤콩이 맹장수술때도, 큰형부대신 그애 수발을 들었다.
호주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미도리 대신 그녀의 시어머니 장례식장에서, 그녀의 남편을 챙겨야했다.
강요에 의한 감금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발적 감금이었기에 딱히 큰 불만이 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매번, 그 오지랖이 기꺼웠던 것은 아니었다.
밤에, 잠들기 직전 미저리가 말했다.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 한때 빠졌던 준수덕에 싸이 이 노래를 즐겨들었다. 마왕이 술자리에서 즐겨했던 말을 노랫말로 쓴거라 작사에 싸이가 신해철 이름도 넣어주었다. 준수 보컬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지만, 나는, 좋아한다. 꿈을 잃거나 이루거나 또다시 시작되는 하루. 우리는 열심히 또 곱창전골을 먹었다. 언제 상심했냐는 듯이. 사실 내가 옆에서 하는건 별게 아니다. 같이 먹고, 자고, 웃겨주고, 때로 질타하면서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 그게 다다.
내 인스타 계정 간절히 복구되길 바래야 할 사람은 나보다 당신이야.
의아해진 형부와 나는 미저리를 쳐다봤다. 왜지 하는 눈빛으로.
(내가 계정 복구 될때까지 지속적으로 괴롭힐꺼니까!)
불쌍한 우리형부. 하필 직업은 또 왜 프로그래머여가지고. 이 난국에 삼중고를 당하고 있다. 참으로 극한직업이다. '한때 파워인스타'의 남편이란...
평소 술을 잘 안마시는 미저리. 다 잊고 자고싶다고해서 오랜만에 맥주를 마셨다. 맥주는 내 취향, 안주로 산 과자는 미저리 부부취향이다. 먹다가 소세지를 삶아줬는데, 결국 눈물의 소세지가 되었다. 다시, 파워인스타로 돌아갈 수 있을지, 막막해진 모양이다. 어떻게 쌓은 공든탑이었는데.
자다깨서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저장해둔 글 대거 발행했다. 요즘은 브런치 글 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형부 방에서 형부컴으로 브런치 글쓰며 행복해하는 내게, 세상 다산 사람 마냥 “너라도 행복하니 좋다”하고 나간다.
금세 다시 또 들어와서는 ‘더위 안타는 날 위해’ 선풍기 틀어주고 나가고, 아아 타준다.
맞다. ‘미저리’가 그런거였지. 여기서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계정 복구가즈아!!!
미저리가 잠깐이라도 웃었으면 좋겠다.
동영상 하나하나에 나의 맘을 담아봤는데.
근데 워낙 유머감각 없는 분이라 재미있어할지는....
계정복구 될꺼니까 복구될때 대비해서 감사 글좀 써줘
만날천날 이런글 저런글 써달리는 미저리 귀찮은 요구사항들. 그러나 계정복구 감사글은 내가 기꺼이 기쁜 맘으로 써드리리라. 걱정을 마시라.
하루에도 열두번도 넘게 희망과 절망, 천국과 지옥을 다녀간다. 당장 담주에라도 계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가, 어쩌면 다른 사람들처럼 복구까지 하세월걸릴 것도 같다가.
언닐 위해 팔로워들에게 해킹소식을 알려주고, 계정신고를 도와주고, 위로를 건네준 파워인스타 동료, 인친, 지인들이 참 많다.
Special thanks to 로 한분 한분 잊지않고 감사인사 드려야해서 틈틈이 메모중이다. 언니가 해야하는데, 정신이가 없으니까 내가 “이것도”한다.
우선 개인적으론 #백년밥상 순대 사장님께 너무 감사하다. 갑작스런 해킹으로 촬영못해서 죄송하다고 하니 신경쓰지 말고 식사부터 하라고 따뜻한 말씀 해주셔서 미저리랑 저녁으로 순대먹다가 울컥했다.
#홍이부대찌개 사장님도 언니 끼니 챙기라고 죽도 보내주시고
자기일처럼 위로해준 파워인스타 분들 @mos_story @ziminews_table @cook_and_candle @yummysmell @eden_table @honeyfine2007 따뜻한 응원메세지와 팔로잉 독려에 진짜 여러번 울었다.
나원참....세상엔 나쁜 해커도 많지만,
좋은 분들도 참 많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이 주는 따뜻한 위로에 언니도 많이 힘이됐는지, 복구되면 본인도 이렇게 선한 영향 미치고 싶다며, 해킹당한 이들을 위한 전도사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오후엔 드뎌 감금해제되어 집에 왔는데,
우리 애들 (뱅갈고무나무, 사계소국, 마가렛, 꽃기린)이 목말랐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애들 물 챙겨주고, 미저리와 욥기 공부했다. 해커에게 당했는데, 나쁜놈때매 당한건데, 거기에 넘어진 자기탓을 하는 미저리를 보면서, 까닭없이 고난을 당한 욥,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이 고난이 지난 후 두배 축복받을거라고, 이건 언니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해주고싶었다. 미저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라, 큰 위로를 받고, 돌아갔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라 얼마나 다행인지, 큰일을 겪을깨나 낙망하고 낙심할때 절감한다.
오늘의 마지막 영상.
웬일인지 이건 맘에 드는지 미저리가 자기 인스타로 가져가겠단다.
2분짜리 영상을 만들면서 꽤 행복했는데, 1시간짜리 다큐를 만들면 얼마나 더 보람차고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다큐멘터리,작업도 무척 기대된다.
언제 시작하게 될지 모르지만.
이런!
이런저런일을 하느라 저녁타임을 놓쳤다.
휴.
배고프다. 벌써 밤 10시 40분인데.
밥 차려주고 우리애들(식물) 물주고, 가끔 청소도 해주는 우렁각시 한사람 있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