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글쓰기 실력에 대해 이견을 제시할 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본인이 정말 이해하지 않고서는 풀어낼 수 없는 글쓰기 방식. 토론도 잘하지만, 글도 잘 쓴다. 이 분, 참.
2015년도에 출간된 그의 저서 <글쓰기 특강>에 대한 요약과, 2014년도에 유시민 북콘서트에 다녀왔던 기록을 재정리해두었다. 모두 4-5년전의 소회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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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목적은,
그 장르가 어떠하든,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해 타인과 교감하는 것이다.
사랑도 열정도 헌신도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널리고 널린 세상, 도대체 그 누가 겨울 골목길의 연탄재를 걷어찰 합당한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말만 할 게 아니라 행동해야 한다.
독재정권과 싸우는 데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조직을 만들고, 자금을 조달하고, 화염병을 제조하고, 정보기관에 들키지 않고 거리시위를 준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이 한다. 누군가는 권력의 부정부패를 폭로하고 시민들의 궐기를 호소하는 글을 써야 하며 들키지 않고 인쇄해야 한다. 그런 사람한테는 글을 쓰는 것이 곧 실천이고 행동이며 투쟁이다.
발췌는 텍스트에서 중요한 부분을 가려 뽑아내는 것이고 요약은 텍스트의 핵심을 추리는 작업이다.
발췌는 선택이고 요약은 압축이라 할 수 있다.
독해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텍스트를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더 개성있게 요약할 수 있다.
독해력을 기르는 방법은 독서뿐이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글을 쓸 때도 번역을 할 때도 말하듯 쓰는 것이 좋다.
말못하는 아기한테도 자주 말을 걸어주어야 한다.
아기는 부모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부모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줄 때 아기의 뇌에서는 행복한 비상사태가 일어난다. (중략) 그런데 모든 부모가 우리말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말 공부를 새로 할 수도 없다. 이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말을 바르고 예쁘게 쓴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실컷 놀아도 허무하거나 자책감을 느끼지 않는 놀이 또한 독서만한 것이 없다.
20대 청년시절 나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호프를 비롯한 러시아 작가의 소설과 최인훈, 김승옥, 윤흥길, 오정희, 박완서, 조세히, 이청준, 황석영 등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설을 끼고 다녔다.
독해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텍스트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문제점과 한계까지 탐색하면서 읽어야 한다.
귀로 듣기에 좋지 않다면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면 잘 못 쓴 글이다.
못나고 흉한 글이다.
생각과 느낌은 붙잡아 두지 않으면 내것이 아니다.
나는 주제에 대해 특별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도 주의 깊게 읽기만 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끔 텍스트를 쓴다.
사람은 무엇인가 표현할 것이 있으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내면에 어떤 가치 있는 것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글로 표현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인다.
글쓰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면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그런 삶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게된다.
글을 살 수 있지만 글 쓰는 능력은 살 수 없다.
이 책의 저자가 안내해준 다음책: 자유론, 토지, 코스모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토지만 읽었다 결국. 그나마도 청소년 토지로....미스터 선샤인 보고 필 받아서;;)
공연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하필 '블루스퀘어'였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공연장에 도착해보니 표지판을 보며 한번 더 기분이 상했다. 삼성전자홀과 삼성카드홀. 도대체가 낭만이 없다. 줄라이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건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공연장 앞에서 유시민 작가는 한창 사인회에 열중하고 있었고 나는 관계자에 의해 공연 준비를 위해 더이상의 사인은 불가능하니 이해해달라는 말을 듣고 사인받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전국노래자랑 야외공연을 볼때 앉을 법한 의자가 따닥따닥 붙어있는 공연장은 조금 불편했지만 편하게 즐기러 온 공연은 아니었으니까 그점은 차치하고.
첫 무대를 연 건 말로였다.
재즈보컬니스트 말로. 말로는 어제와 내일사이에는 하루 이상의 시간이 있고, 요람과 무담사이에는 누군가 있다고 그건 바로 나 자신이라고 읊조리며 같은 내용을 영어로 노래했다. 먼저 그렇게 한국어로 읊조려주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었을텐데.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Between yesterday and tomorrow There is more, there is more than a day.
그리고 금지곡들 중에서 (이해가 안가는 금지곡들이 참 많기도 많더라)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불러주는데 왜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왜색이 짙다는 이유였다. 왜색이 짙은 이들이 그런 이유로 금지하기엔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대한민국에는 그러한 어불성설한 일들이 하루에 수도없이 일어나니까, 달리 할말은 없었다.
표값은 표준이 35,000원이었다. 5만원 상당의 자리도 있었지만 유시민과 찍은 사진을 가지고 오면 30% 할인을 해준다거나, 책을 가지고 오면 5%를 할인해준다거나하여 표준은 대략 그정도 선이되었다.
말로가 만원, 조금 후에 등장한 김미화가 만원, 장기하가 만원, 그리고 유시민 작가가 5천원을 담당했기에 가격은 그 정도선에 정해진 것이 아니겠냐고 진중권 교수가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현대사 이야기에서 유시민은, 박노해 시인의 손무덤이란 시를 낭독해주었다. 산업화는 박정희만의 공인가, 라는 질문에 박정희와 그 몇몇의 대표적 인물이 산업화를 이끌었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박노해 시인의 손무덤 만큼 확실한 답변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알아야하고 기억 해야 한다. 산업화를 이끈 사람들은 그것에 희생되고 쓰임받았던 우리들 각자각자의 땀방울 피눈물덕분임을. 문득 고생하지 않은 하얀손이 싫어졌다. 박노해 시인의 손무덤이라는 작품을 들으면서 손을 가꾸는 어줍짢은 일은 이후에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신해철을 잃고 생각한다. 소중한 분들 소중한 가치를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준만 유시민 김제동 이승환 강풀...그 외 수많은 사람들. 유시민은 말했다. 그사람의 인생 절반을 좌지우지 하는게 국가라고. 다음이 부모. 국가와 부모는 선택할 수 없다고. 다만 민주주의는 선택할 수 있다고. 역사의 동력은 이름없는 수천 수만민의 경험이라고. 그는 설파했다.
김미화가 등장해서 그간 금지된 곡들과 그때 그시절 60~70년대를 회고하고는, 이어서 장기하가 나왔다.
드디어 장기하가 나왔다. 미안하게도 이번에도 '얼굴들'에게는 집중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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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로 요약할 수 있는데요. 그런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 현대사의 방향을 결정한 결정적인 사건들은 우리들 각자의 사건과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말해볼까요? 대학생때였는데요, 어느날 막차 시내버스를 타고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큰누나 집에 가는 길이었어요. 야간 통금이 있던 시간이라 걸릴까봐 막 뛰어서 고갯길을 올라갔지요. 고개 꼭대기에 오른 순간, 아파트 단지가 보이면서 강서구 전체의 야경이 보이더라고요. 빼곡하게 불은색 네온사인이 비추더군요. 조금은 기괴한 장면처럼 보였습니다. 그 당시가 조세희 선생이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이 나온 시기인데요. 강서구 목동의 가난한 동네를 부수고 아파트를 지을때입니다. 그때 그 끝날 것 같지 않은 아파트 야경을 보면서 왠지 좀 외롭고요, 서럽고요 그리고 겁이나더라구요. '저렇게 많은 집들이 있는데 내가 살 집은 한군데도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나도 언젠가는 저속에 나만의 공간 내가 쉴 곳 내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야지 하는 욕망이 슬그머니 밑에서 올라왔습니다. 학교 기숙사에 살면서, 자취방에 살면서 그런 외로움이 들 때 그걸 벗어나는 방법이 하나 있었는데 142번 시내버스를 타고 이화여대 앞을 가는 거였습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고요 옷을 잘입은 예쁜 사람들이 많았어요. 여대생들이 많이 드나드는 커피숍에서 커피하나를 시켜놓고 사람들을 가만히 보다보면 맘 속에있던 외로움과 두려움이 덜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럼 다시 142번 버스를 타고 봉천동 자취방에 돌아오곤했는데 그무렵인데 어떤 선배가 저보고 야학교사를 해보지않겠냐고해서 ‘한번봅시다’고 했더니 구로공단 입구 게시판에서 만나자는거에요. 저녁무렵에 거길 갔죠. 갔는데 서쪽 하늘엔 해가 지고 있었고 바람이 좀 불고 그리고 그 큰 게시판에는 구인광고들이 있었고 퇴근 시간이었어요. 많은 노동자들이 몰려나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게시판 앞에 서서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보는데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더라구요. 다들 표정이 어둡고요. 눈을 내리깔고 피곤한 얼굴로 걸음걸이는 축 처지고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가 이화여대에서 봤던 그 젊은 여대생들과 저와 그 퇴근하는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그당시에는 공순이라고 불렀는데요. 다 같은또래인 청년들이었습니다. 굉장한 콘트라스트를 보면서 왠지 마음이 되게 불편했어요. 도스토프예스키나 톨스토이의 제정러시아 배경으로 나오는 소설을 보는 듯한 불편함이 들었어요. 거기 나오는 멋진 남자 주인공들은 대개 귀족청년들 아닙니까? 그들이 느꼈던 어마어마하게 높은 문화적 생활의 수준은 수천만 농민들의 피땀을 착취한 그 돈으로 누리는 것들 아닙니까? 이대 앞에서 본 여대생들과 구로공단 앞에서 퇴근하는 여공들은 과연 같은 나라에 살고 있을까? 몹시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도심 야경을 보면서 느꼈던 서울에 집 한 칸을 마련하고 싶다고 느꼈던 그 욕망이 왠지 모르게 비루하게 느껴졌죠. 그렇게 산다는 것 또는 러시아 귀족들처럼 노동자들을 착취한 과실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번민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현대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던 것 같습니다.
사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고싶은 욕망과 여러 모순과 부조리속에서 의로움쪽에 살고 싶다는 것 사이에서 여러분도 누구나 이 번민을 가지고 살고 계시죠? 각자 조금 다른 양상으로 맛보지 않으셨어요? 저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둘 사이에서 고민했다고 생각합니다. 둘중의 하나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잘 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 사람들이 산업화의 동력이었고요,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 최소한 불의의 세력쪽에 악의 세력에는 서지않겠다는 사람들에 의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천만 국민들 마음속의 욕망과 번뇌로 우리 현대사가 이루어진게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한 사건들은 수 백만 그런 이름없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루어진게 아닌가 하고요.
두번째 주제가 그렇다면 산업화의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문제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저를 좋아하는 분들이고, 사회 진보를 바라시고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역사에 대한 환멸이나 절망을 느끼실꺼에요. 여러분은 산업화 시대하면 누가 제일먼저 생각납니까? 박정희 이병철 박태준 김우중 대부분 돌아가셨고 김우중씨만 살아계시죠? 이런 사람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무언가를 선택하는 거지요.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 사람들이 중요하다거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골라서 우리가 기억합니다. 역사라는 것은 어쩔수없이 무언가를 이루거나 만들거나 무언가를 남긴 사람들을 중심으로 기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산업화를 이룬 이들이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참모 10명 정도다, 라고 하는 주장이 있죠? 과연 그럴까요? 그래서 박노해 시인의 작품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눈으로만 보지 마시고요 여러분도 소리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박노해 손무덤 (꼭 한번 씩 읽어보시기를!)
80년대를 기억하게 하는 단어들이 나오죠? 은하수가 70년대 말 80년대초 담배. 그라나다 승용차가 에쿠스 그랜저 소나타 급입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원할 수 있고 이건 정수라씨 히트곡 아 대한민국이고, ET가 흥행을 해서 유행이었고요. 제가 이 시를 가지고 온 것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내걸고 드라이브를 걸었던 산업화에 그 과정 속에서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들의 숫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하루에 잘라지는 손가락고 손목이 무덤으로 쌓일만큼 그 양이 어마어마하게 나오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지금도 다르지 않다. 반도체2세에 대한 한겨레 특집기사를 보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삼성 기흥공장, 반도체산업의 이면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나갔다) . 사실 물질이 중요하죠. 물질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내가 살고자 할 때 물질이 너무 결핍되어 있으면 원하는대로 살 수 없습니다. 물질의 극단적 결핍은 억압이죠. 괴로움과 고통이에요 물질에 대한 욕망은 괴로움과 고통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당연한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이 풍족한 것을 지고지순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욕망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맞설수 있는 주장은 ‘경제발전과 물질의 풍요 그것은 중요하지않아’ 라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중요해. 그러나 그것만 중요한 것은 아니야. 그것만큼이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어’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서 그와 같은 산업화의 역사가 몇몇 이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천만명의 국민들의 각고의 노력과 피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만큼 이 산업화를 소중하게 여기고 대견하게 생각하는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박노해 시인의 손무덤에 등장한 많은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대한민국이 성장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고요.
세번째 주제로 가서, 민주화. 대한민국 민주 공화국맞나요? 맞습니다. (청중이 대답을 하지 않자) 분위기가 이상한대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맞아요 우리 헌법도 정상적인 헌법이고요 또 5년마다 4년마다 선거도 하고요. 선거거 끝나면 결과에 다 승복하고요. 뭐 정상적입니다. 근데 품질이 좀 나빠요. 우리가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를 가질 수 있나하는 것은 생각해봐야합니다. 사실 민주주의를 그냥 얻은 나라는 없거든요. 프랑스혁명 영국 명예혁명.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서 왕 목을 잘랐고요, 피가 강같이 흐르는 내전을 치렀고요, 다시 혁명을 치렀고요 이런 일들을 몇백년씩 반복한 끝에 오늘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는 어땠나요? 임금님 목을 자른 적 있나요? 아니죠 일본인들이 쳐들어와서 쫓겨났습니다 지배계급을 숙청한 적 있습니까? 망국과 함께 이 나라가 무너지면서 조선의 지배층도 무너져버렸죠 그런데 어떻게 민주주의를 가지게 되었습니까? 3.1운동과 대한민국 민주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선포함으로써 우리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시작된거고요. 미국 점령기에 21세기 문명사의 축복을 받아 공짜로 민주주의를 받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헌법에 쓰인 그대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갖는 것은 어려웠어요 우리는 왕의 목을 자른적은 없지만 독재자를 쫒아내거나 굴복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4.19 다 아시는것처럼 대통령을 쫓가냈어요. 518때 부산 마산지역 겁먹은 권력집단 분란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 일어난거 아닙니까? 그리고 전두환 6월 항쟁을 통해 굴복시켰습니다. 먼저 헌법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 뒤늦게 그헌법을 실현하는 문제를 가지고 정말 오랫동안싸워온 국민입니다. 그 과정중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쳤고요 죽었고요 감옥에 갔고요 고문을 당했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죽이기도 했습니다(테러가 아니라 자신을 죽이면서 분신자살을 한 유일한 국민이라고도, 저자는 책에 썼다). 끈질기게 싸워서 얻어냈는데 민주주의가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 사치품같으거였다면 그랬을리가 없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집회사진을 가지고 왔는데요, 계엄군 선포하고 광주민주화 운동발생하고 참혹하게 진압당했고 연속적 동시다발적으로 싸우면서 1980년 5월 15일 집회에 앉아 있을 때 한편으론 두려웠고요 한편으로 설레었습니다. 구로공단앞과 이대앞의 극적인 콘트라스트 이런 불평등 불균형에 대한 문제의식, 즉 이 사회는 정의롭지 않은 사회다라는 의식이 있었고 잘못된 것을 이야기하고, 선거를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으면 해결될줄 알았어요. 제 나이 21살때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더라구요 어쨌든 우여곡절끝에 과거 야당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을 연속해서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그러다 입만 열었다하면 거짓말을 하는 왕사기꾼을 대통령으로 뽑았잖아요. 그러한 사기꾼을 대통령을 뽑아 쓴뒤 버렸구요 그 사기꾼이 쓴 고지서가 지금 날라오잖아요 해외 자원외교만해도 지금 들어간것만 삼십몇조원이고 앞으로 들어갈것만 사십몇조원입니다. 그다음 모라고 표현해야할까요? 산업사회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성이 없는 사람. 그렇게 없어야 될게 있는 사람과 있어야 될게 없는 사람이 5년씩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헌법을 무시하고 국가를 사유화하여 수익모델을 창출하는데 급급하다가 다른 한분은 이념적으로 국가를 사유화하고 있죠? 제 결론은 우리 민주주의가 약한데 약한 이유가 이름없는 수천만의 개인적 경험과 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한민국을 훌륭한 나라로 만드는데 민주주의가 필요조건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민주주의는 국가정의를 실현하는데 필요충분조건이 아니고 현재는 단지 필요조건이지만 그것을 필요충분조건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죠? 현재에 대한 절망감 비판 환멸 국민에 대한 불신을 극복할 시간말입니다.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때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나치가 정복하고 전쟁을 12년간 경험하게 되는데 똑같은 국민이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바이마르를 세운 국민이 히틀러를 지지했죠. 그리고 나서 전쟁이 끝나고 나서 시민들은 그때와 다른 현재의 독일사회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야만과 굴종과 치욕을 지나고 나서야 독일 시민 개개인이 '나와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것을 각자의 체험으로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이고 자유인지에 대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저는 우리사회가 조금 더 긴 가시밭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우리들 각자가 개개인의 저마다의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는데 결정적인 싸움의 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네번째, 민주주의가 무슨상관이냐 나만 잘사면되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우리들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많죠? 제일 첫번째 어느나라에서 태어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죠. 그다음 어떤 아버지 할아버지 족보아래 태어났는가? 어떤 생각과 특성을 가지고 태어나는가 하는 가 등. 여러분 가지고 태어난 유전자 바꿀수있어요? 부모를 바꿀수있어요? 그런데 뭘 바꿀수 있습니까? 국가는 바꿀 수 있어요. 실제로 국가가 훌륭하지 않으면 개개인의 삶이 훌륭할 수 없습니다. 1950년 출생자의 기대여이 55년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55년을 살았거든요, 이미 평균치만큼 살았고요 앞으로 사는건 덤이에요. 2014년 태어난 애들은 80년을 살도록 예측됩니다. 지금 30대들이 애를 낳으면 80살까지 산다는 얘기고 그건 우리 세대가 이 다음 세대에게 25년의 삶을 더 준거에요. 우리 할아버지에게 받은건 55년인데 우리세대는 자녀에게 80년을 준거에요. 50년사이에 수명을 25년 늘린거 대단한거 아니에요? 저는 대단하다고봐요 청년들이 기성세대에 감사해요. 국가도 전염병과 상하수도관리했죠. A 급은 아니지만 B급정도의건강보험을 가지고 있고. 55년전과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국가가 안전해졌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우리나 우리아이들이 컬러티 있고 행복하게 살려면 국가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역사 변화의 동력은 수천만의 사람이 가진 개인의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관련해서 사람들이 느끼는 아픔 슬픔 고통을 느끼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탑승객과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람도 아닌데 우리는 왜 울며 분노할까요? 저는 이것이 역사진보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몸 뇌 그런것들은 수십만년전에 만들어진거에요 우리가 가진 뇌를 포함한 몸은 구석기 시대 완성됐다구요 문명이 발생한 이후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진화한게 없어요.하지만 우리 생활은 만년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사람들 각자가 더 자유롭게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형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물집의 결핍, 불합리한 제도, 낡은 관념 이 세가지는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들입니다. 여럿이 함께해야하기 때문에 몇만년전에 완성된우리 뇌속에 이미 서로 공감하고 협력하고 서로 배려하는 세포조직을 가지고있습니다. 문명은 우리 본성을 반영한건다 우리 선한 본성이 더큰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보는데요.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들 마음속에 선한 본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러한 본성을 따듯하게 잘 활용할 수 있는 사회가 훌륭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겠죠?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록 불완전하고 주관적인 기록이지만 우리와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선한 본성에 의한 역사의 진보에 대한 확신을얻을수 있다는거에요 더 크게 도약하기 위해 개구리가 다리를 움츠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선한본성을 알고, 믿고 그것을 표현하려 할 때 문화적으로 한때 그러했던것처럼 점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너지 비축하여, 누군가에 함부로 비난하지말고.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가 개봉박두할 때 에너지를 모아봅시다.
그때가 곧 올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