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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15. 202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 사강은 그녀의 필명이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등장인물에서 따온 것.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언젠가, 만약에 나도 내 책을 낸다면 필명같은걸로 내고 싶다. 딱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어서 여직 고민 중이지만.

그녀에게는 술, 담배, 도박, 약물중독 이혼, 스캔들, 프랑스 문단의 작은 악마 등의 수식어 등이 따라다녔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미처 다 알수는 없지만 그녀의 창작물들을 좋아한다. 특히 이 작품을.

(여담이지만, 이책을 읽노라면, 브람스곡보다는 왠지 이소라의 노래가 떠오른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랄지. 믿음이랄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같은 이소라 특유의 음울한 곡들)


그리고 내나이 서른엔 몰랐다. 마흔세살에 읽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을. 





삼십대에 이 책을 읽었을 땐, 폴이 시몽을 떠나 로제에게로 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파리에서 실내장식가로 일하는 매력적인 서른아홉의 폴이 왜 굳이, 자기 마음이 내킬때만 폴을 만나고 종종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로제를 다시 만나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불문율처럼 자리잡은 연인사이에서의 <자유로운 사생활>은 로제만 이용할뿐, 폴은 쿨한 연인인척 불편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며 고독과 외로움에 빠지게 된다. 홀로 있는 외로운 밤이 늘어나고, 로제와의 관계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던 어느 날 폴 앞에 젊고 잘생긴 변호사 시몽이 나타난다. 폴에게 첫눈에 반한 시몽은 끊기 있게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며 폴의 마음을 흔든다. 거짓말까지 해가며 다른 여자를 만나고, 폴과 만나면 늘 일과 관련한 불평만 늘어놓는 로제와 달리 시몽의 눈은 시종일관 폴을 쫓는다. 시몽은 폴을 외롭게 하지 않고, 폴에게 여왕 대접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일에 집착하는 로제와 달리 시몽은 집안이 부유하기까지 하다. 

지나치게 잘생기고, 젠틀하고, 스윗하고 게다가 어리기까지 한 '시몽'. 그는 모든 열정을 다해 그녀의 사랑을 갈구한다. 

집의 인테리어 장식을 의뢰한 고객의 아들이었던 시몽은 폴에 비해 14살이나 어렸고, 로제에게서는 한번도 경험할 수 없었던 적극적인 애정을 폴에게 쏟아붓는다. 폴의 마음은 당연히 시몽에게 끌려가지만, 자신의 나이와, 주변의 시선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신선한 설레임으로 다가와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퍼붓던 사랑스런 스물다섯 청년 시몽을 떠나보낸다. 

당일에 데이트 약속을 취소하거나 며칠전부터 약속한 주말 일정을 취소해버리는, 여전히 폴을 외롭게 하는 로제를 선택한 폴. 폴은 대체 로제이 어떤 점이 그토록 좋았을까?




어느 일요일 폴은 시몽의 편지를 받는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폴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말에 꽂힌다.



출처 : 아틀라스뉴스(http://www.atlasnews.co.kr)프랑스 사람들 대부분은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프랑스인들에게 브람스 공연을 초대하려면 "브람스를 좋아하느냐 물어야 하는 것."
그런 브람스 공연에 함께 가지 않냐고 폴에게 첫 데이트를 신청하는 시몽.
14살 연상의 여인이자, 스승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를 흠모했던 요하네스 브람스의 러브스토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마흔세살에 다시 이 책을 읽어보니 나 역시 폴과 같은 선택- 로제에게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을 것 같다.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 로제를 이해할 수 없는데다, 젊고 잘생겼는데 적극적이기까지한 시몽의 열정에 점수를 지나치게 줬기 때문인지 10여년전 이 책을 읽었을때는 시몽이 폴의 아파트에 살림을 차려놓고 일도 하지 않고 매일 술을 마시고, 폴에게만 집착하는 찌찔한 모습을 간과했다. 그렇다고 매일밤 나를 외롭게 하는 로제에게 돌아간 폴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변한다. 열렬히 폴을 원하는 시몽의 사랑도 바랄 것이고, 폴에 대한 로제의 사랑은 말할것도 없고. 그래서 내 선택은, 결국 익숙한 관성처럼 로제에게 돌아간 폴과 달리 두사람 모두와의 결별이다. 속박하고 구속적인 관계의 로제도 내 삶의 동반자로 삼고 싶지 않고, 저돌적으로 다가오되 집착하듯 일도 하지 않고 술만 마시며 나만 바라보는 14살이나 (지금보다 그 당시에 느끼는 심적 충격은 훨씬 컸을것이다, 20살 차이 이상?) 어린 철없는 시몽도, 아니올시다,이다. 

하나의 자유로운 인격체로, 속이지 않고, 진실되게, 사랑하는 마음도 변하지 않는 그런 관계는 정녕없는걸까? 사랑의 도파민은, 유효기간은 정말 2~3년이면 끝이 나는걸까? 

내 첫사랑과의 사랑도 그래서 끝이 난 걸까?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그래서 내가 아직도 혼자 라는 것. 

서로 완벽한 혼자가 만나서, 덜 외롭고 의지되는 둘이 되고 싶다.

오늘도 간절히!  




편애하는 밑줄


그는 그녀를 힐긋 곁눈질 했다. 자신을 향한 그녀의 확신에 찬 오랜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는 줄곧 그녀의 기분에 놀라울 정도로 민감했고 언제나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마치 처음 사귈 무렵에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기억나?’라고 물으려다가 참고 오늘 저녁에는 자신의 감상적 성향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거울 앞에서 조용히 화장을 고쳤다. 바로 그 거울 속에서 그녀는 시몽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지나치게 헐렁한 실내복을 입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있었지만 그는 깜짝 놀랄 정도로 미남이었다. ‘내 타입은 아니야’하고 폴은 줄곧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생각했다. 그녀는 잠시 거울 속의 자신에게 미소를 지었다. 청년은 무척 호리호리했고, 살결은 가무잡잡했으며, 눈동자는 좀 지나치게 섬세해 보이는 연한 빛을 띠고 있었다.


로제의 자동차 속에서 시몽은 잠이 들었다. 폴의 어깨 위에서 그의 고개가 이쪽저쪽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그는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그의 머리가 차창에 부딪치나느 것을 막기 위해 폴은 결국 그의 이마에 손을 얹어야 했다. 그러자 그의 머리의 무게가 그녀의 손에 완전히 실렸다.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이제 그녀에게 주말은 없었다. 로제가 이번 토요일에 현지 동업자와 일을 하기 위해 릴에 가야 한다고 알려 온 참이었다. 아마 그 말은 사실이리라. 그녀는 늘 그의 말을 사실로 치부했다. 그녀는 이틀동안 할 수 있었을 일들을 상상해 보았다. 로제와의 산책, 로제와의 대화, 저녁 그리고 통째로 놓여 있는 시간, 해변처럼 매끄럽고 따뜻한 온종일과 더불어 서로의 곁에서 잠을 깨는 일을. 그녀는 전화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친구와 점심을 먹을 수도 있었고 저녁에 누군가의 집으로 브리지 게임을 하러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이틀 동안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녀는 애인 없는 여자로서 보내야 하는 일요일이 몹시 싫었다.


일요일, 자리에서 일어난 폴은 문 아래 편지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과거에는 ‘푸른쪽지’라고 시적으로 표현했던 속달우편으로, 그녀는 실제로도 그 편지가 시적으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맑은 11월의 하늘에 다시 태어난 태양이 그 순간 그녀의 방을 따뜻한 빛과 음영으로 채웠던 것이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은 것은 두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을 열입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그녀는 브람스의 콘체르트를 듣기 시작했다. 그녀는 첫 부분이 낭만적이라고 여겼지만 음악 중간에는 듣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음악이 끝나고 난 다음에야 그녀는 그 사실을 깨닫고 아쉽게 생각했다. 요즈음 그녀는 책 한권을 읽는 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그녀는 시몽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뭐라고 대답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마도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리라. 자신이 그 연주회에 가려는 것인지 아닌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전화를 받은 시몽의 말, 시몽의 목소리에 따라 달라지리라.



그녀는 연주회 동안 시몽이 자기 손을 잡으려 들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자신이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만큼 두렵기도 했다. 언제나 그런 기대가 사실로 확인되면, 떨쳐 낼 수 없는 권태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그녀가 로제를 좋아하는 것은 그런 이유때문이기도 했다. 로제는 모든 것이 너무나 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그녀의 예상에서 조금 어긋나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는 잘못 알고 행복해하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불행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로서는 시몽이 그 디너파티 전체를 비춰주고 있는 것 같았다. 시몽의 눈길이 등대처럼 2분 간격으로 그녀의 얼굴에 머물며 혹시 그녀에게 틈이 나지 않는지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도 이따금 그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럴때면 그는 미소를 지었는데 그 미소가 너무나 애정과 갈망에 차 이는 나머지 그녀 또한 미소로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가까이, 너무 가까이에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대화를 나누기에는 늦은 시각이었다. 그는 자신을 따라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자신을 따라오지 말았어야했다. 로제가 그를 보았을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제정신이 아니었다……그녀는 시몽에게 키스했다. 가을바람이 거리로부터 자동차안으로 불어와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시몽은 그녀의 얼굴을 키스로 뒤덮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젊은 사내의 그 체취, 그 헐떡임, 그리고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런 다음 한마디 말없이 자리를 떴다. 새벽녘, 반쯤 잠에서 깬 그녀는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새찬 밤바람 때문에 자신의 머리카락과 뒤섞인 채 부드러운 장벽인 양 두 얼굴 사이에 놓여 있던 시몽의 검은 머리카락을 떠올렸다. 그리고 너무나 뜨거웠던 그 입술이 계속해서 자신의 온몸에 와 닿는 것처럼 느껴졌다.


폴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들이 처음으로 함께 밤을 보낸 날 시몽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그녀의 몸에 몸을 부이고 그녀의 허리에 살짝 잡힌 주름 위에 한쪽 손을 올려놓고 구녀의 고른 숨소리에 자신의 숨소리를 맞추면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자는 체하려면 애정이 지나치든가 권태가 지나치든가 해야겠군.’하고 그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이제까지 권태가 지나친 쪽의 경험만을 해 온 그는 잠든 폴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바친 숫처녀에게보다 더 큰 책임감을 느꼈다. 두사람은 그렇게 조심스럽고 감동되어 각자 자고 이쓴 체하며 상대가 깰까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맞대고 서로를 지켜보며 밤을 지샜다. 시몽은 행복했다. 그는 자신보다 열다섯 살 연상인 폴에게 열여섯 살짜리 여자 아이에게보다 더 큰 책임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불안했다. 그들이 저녁 6시에 만나는 게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그에게 할 수 있을까? 다른 한 편 매일 저녁 그가 작은 자동차에 탄 채 문 앞에서 조바심을 내며 자신을 기다려주리라고 생각하자 그녀는 벅찬 행복감을 느꼈다……매일 저녁 누군가 나를 기다려 주다니. 저녁 8시 기분이 내키면 방심한 태도로 전화나 걸어오는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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