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리가 아이 엄마가 되기 전, 일본에서 유학했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내게 전화를 걸어, 때때로 '오까네가 젠젠 나이데쓰요' 라며 오까네, 이야기를 자주했다. 그날도 오까네 이야기를 하겠지,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굉장히 업된 목소리로 내게 '오사키 요시오'란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하니 '너는 책 좋아한다는 애가' 하면서 잠깐 타박을 하고, 제 할말을 이어했다.
요는, 본인이 알바하는 곳에 자주 오는 단골인데 알고보니 유명한 작가라고 해서, 사인을 받았다는 것. 그의 사인이 담긴 책은 내가 간직하고 있(었)다. 지난번 집에는 분명히 있었는데 이사하면서인지 누가 빌려간건지 자취를 감췄다. 신기하게도 그의 작품이 세트로, 사라졌다.
미도리가 일본에서 살았던, 그 시기에, 그녀 덕에 나도 오사키 요시오 작품을 알게 됐다. 특히 4편의 단편을 묶어놓은 <9월의 4분의 1>은 내 감성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책이었고, 이후 그의 작품 모두를 사서 읽게 한 계기가 되준 책이기도 했다.
스무살 중후반까지도 자주 들여다보던 편애하는 문장들은, 하기에 요약발췌해두었다.
1957년 홋카이도 출생.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후 수년간 <장기세계>의 편집장을 역임. 2002년 첫 장편소설
<파일럿 피쉬>로 문학신인상 수상. 이후 9월의 4분의 1고 아디안텀 블루 집필.
동물원에서는 말이야.
동물원을 한바퀴 돌아본 후 나는 사자 우리를 쳐다보면서 미나코에게 말했다.
“기린이 통화기준이 된대, 번식력이 강해서 어느 동물원이든 수가 안정되어 있거든 거기다 인기도 적당히 있지. 그래서 동물은 기린을 통화로 해서 거래되는 거야”
“코뿔소는 매우 비싸. 300기린은 하지, 아마?”
“재밌네요!” 미나코의 눈이 반짝거렸다.
“전에는 말이지, 펠리컨이 통화 기준이었어. 하지만 펠리컨은 그 수가 너무 늘어나서 화폐가치가 하락해버리고 말았지. 펠리컨 인플레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몇년 전에 세계 각국의 동물원 관계자들이 모여 펠리컨 회의라는 것을 개최했대. 거기서 통화 기준이 기린으로 바뀌었어”
미나코에게도 나에게도 그날의 만남은 봄바람이 상쾌한 정말 즐거운 데이트였다.
“지금 런던의 호텔에 있어. 샤워하고 자려고 해. 저기 그리고 말이야 이것만은 전해두고싶어서, 8년동안 나와 사귀워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회사를 그만뒀지만 하지만 앞으로도 나답게 살아갈꺼야 뭐랄까. 그렇게 살아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은 들어.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와 함께 지내줬으면 좋겠어”
“유짱…”
“응?”
지구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미나코의 목소리는 높고 맑았다. ㅡ나는 천천히 생각해서 조용하게 대답했다.
“500기린”
“코뿔소보다 비싸네”
“그날보다 올라갔어 기억하고 있어?”
“물론”
“기린 통화 하락한거 아니야?”
“전혀. 펠리컨 회의도 그 후로는 열리지 않았고”
거기서 내가 가지고 있던 국제전화 카드는 끊어졌다.
나는 미나코와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새벽 3시 런던에서는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편애하는 밑줄
(잊었던 적 있어?)
물론 있어.
하지만 잊었다는 것은 표층적인 것이고 그것은 그저 잊는 것뿐 소멸하는 것은 아니야
잠시 필요가 없어서 마음의 호수 같은 장소에 잠겨 있을 뿐
하지만 뭔가를 계기로 그것은 다시 떠오르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 상실감을 가장 다독여 준 사람은 피리를 불면 충실한 강아지처럼 달려와준 달리아였다. 약간이나마 기운을 되찾고 새 생활에도 적응한 후에는 외로운 밤에도 달리아를 무턱대고 불러내지는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그랬지만 머리맡에 놓아둔 피리만 불면 언제든 그 마음씨 좋은 친구가 어둠을 헤치고 찾아와 줄 것이란 믿음 덕에 대개는 참아 낼 수 있었다_데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