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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Nov 08. 2020

글을 쓰고 싶다면


내게는 4명의 언니가 있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어공’ 큰언니와, 갑자기 인플루언서가 된 ‘파워 인스타’ 둘째 언니, 자발적 비정규직으로 지내는 ‘편의점 알바’ 셋째 언니, 학원강사인 ‘수학쌤’ 넷째 언니. 그들에 비해 탁월하게 글쓰기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집안의 온갖 글쓰기 대필을 내가 도맡고 있다.



지난주엔 파워 인스타 언니가 요청한 ‘지리산 산양삼의 효능’에 대한 글을 썼고, 본인 셀링을 잘 못하는 셋째 형부가 이직할 땐, 그가 쌓아온 경력을 잘 어필할 수 있도록 ‘자소서’를 대신 수정해주었다. 그런가 하면, 조카 중 한 녀석이 또래 친구들과 싸움이 나서 학폭위에 회부될 뻔했을 때 ‘기록하는 자’로 학교에 불려간 적도 있다.


엇갈린 아이들의 기억과 제 자식‘만’ 감싸고도는 부모들의 편파적인 주장, 그리고 그 사이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교직원들 행태에 대해 낱낱이 기록했다. 단지 그 내용을 기록했을 뿐인데, 누군가 자신들이 한 말을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는지 예상보다 빠르게 협의가 이루어졌다.


이런 일들이 아니더라도 의외로 글을 써야 하는 일들이 많다. 인스타그램 기록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카카오톡이나 메신저를 통해 본인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켜야 할 때도 글쓰기 능력은 요구된다. 중요한 미팅을 마친 후 핵심만 요약해서 팀장이나 대표에게 보고하는 일도 직장인들에겐 허다하다. 



그렇다면 글은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단 글을 잘 써보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솔직하게 써라

북리뷰 마감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절체절명의 순간, 책 <글을 쓰고 싶다면>(브렌다 유랜드, 엑스북스)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잘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쓰기 시작하라, 는 저자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책을, 어떻게 잘 써서 독자들에게 소개해야 할지 고민‘만’ 하고 있었을 거다.


저자 브렌다 유랜드는 ‘글을 쓰고 싶다면, 그저 생각나는 대로 글로 쓰면 된다’고 글쓰기 방법을 소개한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생각에 앞서 글쓰는 행위를 두려워한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글로 자신의 지식이나 생각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러다 보면 글 쓰는 일이 즐겁지 않게 다가온다.





첫 직장에서 2년간 취재기자로 일했을 때나, 6개월간 드라마 방송작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드라마 시놉시스를 쓰려고 시도했을 때, 서평수업을 들으며 서평작가에게 직접 첨삭지도를 받을 때, 그토록 바라고 꿈꾸던 일인데도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이 지극히 주관적인 결과물에 대해 평가받아야 한다는 게 끔찍했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두렵고 불안했다. 이처럼 누군가의 평가를 염두에 두고 글을 잘 쓰려면 단 한 줄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걸 잘 아는 저자는 말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야깃거리가 있으니 사랑하는 친구에게 말하듯, 나누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걸 저돌적으로, 충동적으로, 솔직하게 ‘그냥’ 쓰라는 것. 비평가의 지적은 무시해도 좋다고. 저자가 일러주는 글쓰기 방법을 읽고 있노라면, 잠시나마 글쓰기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번 달 마감일을 코앞에 두고 한 줄도 안 쓰고 괴로워만 하던 순간에 이 책으로부터 큰 위안을 받았다. 평가받는 것이 두려워 글쓰기를 주저하고 포기한 이들에게 ‘평가하지 않는 글쓰기 방법’을 가르칠 수도 있겠다는 묘한 자신감도 생겼다.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해주는 글쓰기 방법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는데, 그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예술 작품은 한없이 고독한 것이며 비평 같은 것으로는 그에게 다가갈 수 없다. 오직 사랑으로만 예술 작품을 이해하고 간직할 수 있으며, 공평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If you want to write? 잘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쓰면 된다. 나를 사랑해주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자유롭고 솔직하고 진실되게. 똑똑한 척 하는 사람들, 지적을 위한 지적을 하려는 비평가들은 무시하고 말이다. 


편애하는 밑줄

나는 톨스토이, 체호프, 도스토옙스키 같은 러시아 작가들을 제일 좋아한다. 그들의 멋지고 세련된 표현이나 아름다운 단어보다는 진실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내용보다 포장이 더 근사하고 의미심장한 글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글을 잘 쓰려면, 그리하여 우리가 이야기하거나 관심을 갖고 있거나 감동받은 것을 사람들에게 믿도록 하려면 그 유일한 방법은 가식과 점잖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내게 이것을 깨닫게 한 사람들이 바로 러시아 작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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