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리움의 실체는 무얼까.
팀원 K가 공개해준 그의 지난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문득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시간 속의 사람들이 하나 둘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K의 인스타그램에는 본인의 25살부터 27살의 기록이 담겨 있었는데, 이제 서른살이 된 그가 보기에는 그저 가까운 과거, 5년전의 일이겠지만 마흔살의 내가 바라보기에는 하나하나 너무도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행여 이 예쁘고 고운 모습이 다칠세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그의 지난 3년의 기록을 엿보았다.
그러면서 나의 스물다섯살을 떠올려 보았는데 슬프게도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회사에 두고 다니는 외장하드에 년도별로 담아둔 사진폴더를 보면 그나마 떠오를까. 까마득히 어딘가로 사라진 나의 스물다섯. 그 기억들. 그렇다면 나의 스물일곱은 어떻게 지났을까? 영국 유학시절 만난 친구들과 첫사랑을 담아둔 나이이기에 너무도 명확하고 또렷하게 기억한다. 안개낀 새벽의 허버트 애비뉴 거리, 고백을 받았던 아름드리 나무아래 해질녘 풍경, 매일같이 모여 술을 마시던-이제는 부부가 된-EJ&HY 이 렌트하우스까지, 하나 하나.
드라마에서 남자든 여자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어서 옆자리 연인에게 고개를 떨구는 장면을 볼때마다 가슴이 아련하다. 도버해협을 건너던 그때 그 버스 여행이 생각나서.
집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녀석. 좋아하는 상대가 기다릴세라 머리를 말리지도 못하고, 허리띠를 채우지도 못하고, 운동화 끈을 묶지도 못하고 허리띠를 채우며 입에 손수건을 물고, 마당에서 나를 기다리던 녀석을 봤을때의 두근거림도 뭐한다고 아직 이토록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다.
칠칠치 못하다고 타박할법도 한데 "기다리게 하기 싫어서" 라며 허리띠를 주섬주섬 채우는 내 앞에서 말없이 무릎꿇고, 내 운동화 끈을 묶어주던 녀석의 새까만 머리통은 왜 또 그렇게 안 잊히는지. 그때 내가 얼마나 그 기특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는지, 우리집에서 EJ&HY 커플의 집까지 둘이 걷는 그길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내가 그때 다 말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때 다 표현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감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공대생때매 힘들다느니,
너를 기다린 시간이 괴롭고, 그래서 너를 만나는 순간들 대부분 행복하지 않았다며
순하고 순했던 스물다섯 청년에게
내가 내뱉었던 그 모진 말들은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로 인해 두근거리고, 설레고, 보고싶고, 행복하고, 예쁜 옷을 사고, 토스트를 싸고, 여행 계획을 변경하고, language course 를 포기하고 한국에 왔던 것들은, 내가 다 말했는지 모르겠다.
내 모든 것의 처음 시작이 너였고
그로 인해 내가 꽤 오래 충만했다는 것을,
힘든것만 있었던게 아니라는 걸,
그때는 왜 말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기록해둔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담아둔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제이미가 긴 휴가를 보내고 돌아와서 준 마지막 꽃다발을 보면서 기어코 눈물이 쏟아졌다. 행복하게 떠난 1호 팀원으로 자기를 생각해 달라고, 자기만큼 예쁜 꽃을 만들어 온 아이. 그리고 빈말도 과한 표현도 안하지만 존재만으로 기쁨과 위안을 주던 우리 캐롤.
갑자기 스물다섯과 일곱사이의 나를 채워준 사람들과 나를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웁다.는. 그래서 조금은 많이 허전하다는. 살아있는 생명체, 그 많은 것들 중에서도, 강아지 시절을 나와 함께 보내고 장년층이 된 개를 한마리 들이고 싶은 것도 아마 그러한 허전함때문일지는 모르겠다.
새로운 개를 들이는 것보다 이미 양평집에 있는 심바, 탄이, 레오를 데려와야 하는게 아닐까, 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그건 아니다', 진짜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서울의 빌라에 거주하기 적합한 타입의 개들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왜냐고?
자기 밥그릇에 오줌을 싸는걸 좋아한다. 엄마한테 아무리 구박해도 그 버릇을 못 고친다. 이미 8년을 마당에서 제 멋대로 생활을 즐겨온 터라 갑자기 집안에서 생활하려면 갑갑해할 것 같다.
너는 왜 안되냐고? 글쎄다.
너를 임보했을때가 심바가 온 다음이었는데. 나이를 추정해보자면 대략 8-9살? 이미 성견이 되어 우리집에 왔으니까 그때를 2-3살로 생각한다고 해도, 7년을 같이 지냈으니 9살 -10살 됐으려나?
탄이 너는, 일단 짖는 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공동주택에선 살수가 없다고 판단했어 (사실 생각도 안했다;;;). 다들 멍멍짖는데 너는 컹컹, 짖잖아. 같이 산지 7년된 나도 가끔 무서운데 아마 다른 사람들이나 소형견들은 더 무서워할 것 같아. 나랑 서울살이 하는것보단 엄마랑 양평집 마당살이가 백배는 나을꺼다.
레오는.....너무 어려서 힘들것 같다. 한참 혈기왕성한 레오는 뭐든 먹어치우고 공만 던져주면 사방팔방 헤집고 다니는데. naughty boy 레오도 어려울것 같다. 서울살이는.
무엇보다 수컷 강아지와 한집살이는 여러모로 무리라고 생각되는 바, 아무래도 유기견들 중에서 입양해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근데 내가 배정남이 벨에게 하듯이 시간을 충분히 보내주고, 산책도 매일 시켜줄 수 있을까? 목욕도? 여기까지 생각하면 현타가 온다.
어. 렵. 겠.다.
사진찍으려면 가지런히 발을 모으며 포즈를 취해주는 까망이 (왼쪽사진)와 분명히 트렁크에 태웠는데 까치발하고 뒷좌석으로 쓰~윽 얼굴을 들이밀고 내옆자리를 차지하는 까망이 (오른쪽 사진)
잊지못할 나의 소중한 까망이는 천둥벌거숭이 심바, 탄이, 레오와는 비교할 수 없는 넉넉함으로 나를 품어주고, 배려해주었다. 다른 여느 건강한 개들처럼 침을 많이 흘리고 다른 삽살이들처럼 털이 자주 엉켰으며, 뭘 먹고난 후에는 도저히 깨끗함을 유지할 수가 없는 얼굴구조(털복숭이)를 가졌지만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이였다.
온몸으로 위로를 건네주던.
...
...
K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문득 나의 스무살 언저리가 그립기는 했지만 그런 감정은 오늘의 어느 순간일뿐, 마흔살이 된 나의 바람은 빠르게 쉰살이 되는거다. 앞으로의 십년이 별탈없이 그저 빠르게 지났으면 좋겠다.
쉰살이 되면 뭘 하려는거냐고? 별 거 없다. 서울에서의 30년을 채우고 다시 마당이 있는집으로 돌아가려는 소소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원없이 가을 겨울 여름 봄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곳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고 싶다.
그때가 되면
목련나무 그늘아래 앉아, 바람과 새들 지저귐을 듣고, 책도 읽고, 스피커가 가진 맥스 출력을 이용해 음악도 듣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써야지.
그때가 오면
까망이 같은 아이랑 다람쥐녀석같은 반려자랑 함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자유로이 만끽해야지.
그러다 이유없이 그리움이 밀려드는 날에는
밤새 하늘의 별을 보며 시를 읽어야지.
내 옆에 잠든 이의 손을 가만히 잡거나
등을 그러안으며 하루를 마무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