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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May 20. 2022

고객사 미팅의 나날들



1. 스타트업, 백엔드 개발자


헤드헌터에게 채용을 의뢰할때 기업들은 전화나 비디오로 포지션에 대해 설명 하기도 하지만 대면미팅을 선호하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고객사 첫 미팅은 언제나 대면으로 진행했었는데 최근 2년간 코로나로 인해 거의 대면미팅이 없었다.


2021년, 유일하게 대면미팅을 요청한 스타트업은 <음향 평준화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이었다.

이 회사의 솔루션은 이미 입혀진 소리에 공간을 차등화 시켜주고, 소리에 더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돕는 것.

영화랑 음악-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분야의 채용건이기에 관심이 더 생겼다. 아주 오래전 흑백영화도 이 회사의 솔루션을 통해 최적화된 음향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 이 서비스만의 독보적인 존재가치가 있다.


 <또 오해영> 남주  박도경과 <봄날은 간다> 유지태가 생각났다. 둘다 소리채집을 다녔는데 박도경은 대한민국 굴지의 영화 음향감독이었고 (외모도, 능력도 완벽하지만 예민하고 깔칠한 성격때문에 남자들에게는 나쁜놈, 여자들에게는 철벽인 남자) 유지태는 “라면먹고 갈래?”라는 농익은 여자의 물음에 순수하게 라면’만’ 먹고간 라디오 프로듀서였다.
무튼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두 남자가 소리를 채집하는 장면이 내게는 꽤 인상적이었다. 하나하나 소리를 따서 영화에 생동감을 덧입히는 박도경 직업이 신선하면서도 대단해보였다. 그런 음향엔지니어들이 그토록 추구하고자 했던 사운드 최적화에 이 회사 솔루션이 기여를 할 수 있을것 같아 나름 기대가컸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드라마 또오해영, 이야기까지 언급하게 됐다.

anyway,


2022년 3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

나보다 먼저 사무실에 <음향 평준화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 인사 담당자가 보내준 택배가 도착해있었다.

회사로고가 담긴 사랑스런 굿즈들이었다.

원래도 좋아하는 솔루션을 가진 회사였지만 함께 일하는 파트너를 대하는 태도에도 감동이 밀려왔는데 애석한 것은, 성과는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점이다.

2021년에 Project mgr 한분 입사를 끝으로 별다른 성공 프로젝트를 이어가지 못했다.

‘음향 솔루션에 관심이 많은’ 백엔드 개발자 한분 더 찾아드리고 싶은데 high quality 개발자 수요는 많고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개발자 채용이 생각처럼 쉽지않다.


2. 국내 소비재 제조사, CEO 포지션

8년 정도 함께 일했던 외국계 제조기업의 HR 상무님 소개로 이 회사에 미팅을 가게됐다.

이 회사를 소개해준 상무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작년에 수술후 회사로 돌아왔을때 유일하게 꽃바구니를 보내준 분이었고, 수술전후 많은 배려를 해준 파트너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감사한데 새로운 고객사까지…

BD(business develop) 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헤드헌터로서 나는 객관적으로 봤을때 BD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다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소개로 새로운 비지니스 기회가 시작된다. 기존 고객사 HR이 다른 곳으로 이직했을때, 후보자들이 새로 조인한 회사 인사팀에 나를 추천한 경우, 회사대표님들이 기회를 주는 경우가 그러한데 여타 다른 헤드헌터들처럼 door to door 방식의 cold call BD는 별로 해본적이 없다. 자연스레 그쪽 역량은 강하지가 않다. 그런 부분도 강화되면 좋겠지만 이미 보유하고있는 고객사 관리나 후보자 서치 역량을 향상시키는데 올한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보려고 한다.

지난주 화요일에 처음 찾아간 이 고객사 경영지원팀 본부장님이 미팅을 마치고 전화를 주셨다.


저희 대표이사님과 한번 더 미팅을 진행할 수 있을까요?
이제껏 만난 그 어떤 헤드헌터보다 프로페셔널해서 놀랐습니다.


고객사 미팅을 통해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겸, 얼굴 뵙고 인사를 나누는 게 훨씬 좋지만, 항상 진퇴양난이다. 고객사 미팅이 잦으면 서치할 시간이줄고 고객사를 만나지 않으면 신뢰나 로열티가 떨어진다.  


“이왕이면 따로따로 뵙기보다 한번에 같이 뵙는게 저로서는 더 좋습니다” 라고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겉으로 나왔지만 이제껏 만난 그 어떤 헤드헌터보다 프로페셔널하다는데… 찾아뵙지 않을 수가 없어서 결국 바쁜와중에 다음주 월요일 한번 더 찾아뵙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울회사 리셥센 담당자가 나를 찾아왔다. 웬만하면 가져다 드리고 싶은데 택배 박스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들고 올수가 없었다고.

주문한게 없는데 이상하다 싶어 리셉션 자리로 가보니 이 고객사에서 자사 제품을 두박스나 보낸게 아닌가! (회사 동료들과 잘 나눠쓰겠습니다)


일전에 주류회사 포지션 진행했을 , 주류회사 담당자가 소주 몇박스를 회사로 보내주신 적이 었고

외국계 아이스크림회사 포지션을 진행했을, plant mgr(공장장) 아이스크림 두세박스를 보내주신 적도 있었다.


재미난 추억들이다..ㅎㅎ


기업이 원하는 적합한 인재를 찾아주고, 그 인재가 원하는 바에 대해서도 고객사와 협상을 이끌어내는 채용의 전반적인 과정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다.

그 과정속에서 고객사 HR이나 후보자의 needs가 맞지않아 서로 unhappy 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힘든 과정 가운데 가끔씩 이런 이벤트들은 반복되는 일상속에 작은 활력이 되기도 한다.

꼭 무슨 선물을 주셔서가 아니라, 그런 마음의 오고감이, 정스러울때가 있다는 이야기다.


3. 외국계 물류회사, 영업 총괄 포지션

오늘은 시청에서 미팅이 있었다.

우리회사는 한달에 한번, 셋째주 금요일 오후 세시에 퇴근하는 refresh day 프로그램이 있는데 리프레쉬 금요일인지 모르고 세시에 고객사 미팅을 잡았다. 이런날 이런날씨에 무조건 쉬어야하는데, 깜박한 내 탓이지 뭐.

그래도 발걸음 가벼웁게 고객사에 도착했다. 친구 J 가 근무했던 회사 근처라, 다행히 익숙한 부근이라 헤매지않고 한번에 찾아갔다^^

잡플래닛에 올라온 회사 평판이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곡해된 것인지 확인하고,

회사의 조직에 대해 듣고,

현재 채용중인 포지션들중 가장 급한 것들 위주로 포지션의 채용목적과, 원하는 인재에 대해 회사가 요구하는 방향에 대해 들었다.

인사부장님은 미팅 말미에 무서운 말씀을 주셨다.


저는 딱 한사람만 물고 늘어지는 타입이라,
이제는 이사님만 믿겠습니다.
제가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나또한 많은 헤드헌터 중에 하나가 아니라, 나를 콕집어서 의지하고 신뢰하고 부담을 주는 고객사 건에 대해 성공률이 높은 편이다. 그말은 즉슨, 내가 그 포지션에 책임감을 다하고 시간을 더 쏟는다는 뜻이다.

무작정 나를 쪼는 회사가 아니라, 나와 나의 팀과 우리 회사의 가치를 믿어주는 회사의 일이라면 책임감이 배가된다.

그 책임감이 성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는 두말하면 입아프다.



4. 외국계 반도체 장비회사, Sales Director 포지션

이 회사 대표겸 Hiring mgr는 독일에 있다. 독일에 있지만 한국에 있는 그 어떤 담당자보다 나를 더 부담스럽게 했다.

 추천하는 후보자마다 제니퍼가 이분을 추천하는 이유가 뭔지, 어떤 점이 강점인지, 마켓 상황을 고려했을때 이 후보자의 희망연봉이 얼마나 합리적인건지 꽤 자주 컨콜을 요청해왔다. 그러나, 나는 그의 업무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모름지기 한 회사의 대표와 영업총괄을 찾는 자리인데 당연히 그렇게 세세한 질문이 이어져야한다고 생각하고, 결국 역량검증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원하는 후보자라는 판단이 서면 입사시기나 연봉이나 업무조건 등에 대해 철저하게 후보자 편의를 봐준다. aggressive 하면서 hunter 스타일의 인재를 좋아하는 그는 당연히 <aggressive한 헤드헌터> 인 나를 신뢰했다.

그와의 협업을 통해 2년전 CEO 포지션 하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는데, 그 기억을 바탕으로 작년 6월 또한번 내게 어려운 미션을 줬다.

다만 새로운 미션을 수행하기에는 당시에 내가 너무 지쳐있던 터라, 차마 못하겠다는 말은 못하고 수술들어가야한다는 핑계를 댔다. 실제로 수술을 하기도 했지만 나를 향한 그의 기대와 어려운 포지션에 대한 자신없음때문에 도피처를 마련한 것이기도했다.

그러나 웬걸. 그는 내가 수술을 마치고 복귀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연락을 해주었다. 무사히 쾌유했냐고, 기다렸다고.

이렇게나 나를 기다려준 고객사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몸도 많이 회복되어서 열심히 다시 그 어려운 포지션에 매달렸고

결국 오늘, 나의 후보자는 독일인 hiring mgr 로부터 offer letter를 받았다. 후보자가 원하는 조건을 맞춰주었기때문에 후보자도 오퍼를 받자마자 1시간 이내로 오퍼를 수락한다는 의미로 오퍼에 서명을해서 보내주었다.

장장 1년간의 여정이었다.

우리일이란게 1년간의 여정이라고 할지라도 그 끝이 꼭 오퍼사인으로 잘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채용 프로젝트 결론은 언제나 fail 아니면 success로 귀결된다.

하지만 좋은 헤드헌터로 거듭나기위해서 우리들은 실패한 케이스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 복기하고 다음번에 어떻게 해야할지 전략을 세워야하고

성공한 케이스에서 자만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구심을 가지고, 일희일비하지 않을때 비로소 저력이 생기는 일.

그게 내 일이다.


매달 동료들과 성과가 비교되고 (아무도 비교하는 이 없지만 스스로 비교가 될수밖에 없고)

1년에 한번씩 전직원 앞에서 매출 top 5가 공개되기때문에

나처럼 인정에의 욕구를 바라는 인간들에게는 그 모든 게 쉽지않은 업무환경임에는 틀림없지만

다만 나는 11년간 이 일을 지속해오고 있는 헤드헌터로서

이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나만의 pace 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절대로 비교하지 말자는 것.

성과위주로 나를 몰아세우며 비교하기 시작하는 순간, 행복은 안드로메다에 가버린다.

실패는, 부끄러움이 돼버린다.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오늘 한번 더 행복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살아가고자 한다.

좋은 헤드헌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그렇게.




에필로그 1: 양치하다 문득

오른손에게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365일 중에 양치 안하고 잠든날을 빼더라도 1년에 천번은 넘도록 똑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아랫니 윗니 어금니 혀를 골고루 칫솔로 닦아내는 일.

내내 같은 일을 담당해주면서도 불평불만 없이, 오른손은 그 일을 잘도 해내고 있었다. 기특하게.

그래서 오늘은 매번 남의 일이라 생각하며 주구장창 쉬고 있던 왼팔을 사용해봤다.

오른손으로 할때에 비해 불편하고 속도도 느려서 답답했지만, 왼손으로 글씨쓰는 것보단 쉬웠다.

왼쪽팔에게도 올해는 더 많은 미션을 줘야할 것 같다. 그간  업무가 너무 한손에만 편중되었던 것 같으니.


에필로그 2: 오늘의 합리화

갱년기로 우울해하는 언니랑, 매주 금요일이면 나를 태우러오는 셋째형부랑 나랑 셋다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추어탕.

낮에 속이 안좋아서 고생했다고 추어탕이나 해장국이 먹고 싶다는 둘째언니와 셋째형부를 모시고

엄마드릴 추어탕도 포장할 겸 겸사겸사…

추어탕을 먹으러갔다.

다이어트 해야하는데…그냥 그런날이 있잖나, 괜히 단백질 마시기 싫은 그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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