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선 종양이라니.
명의, 하정훈 선생을 찾아갔다.
왠지 한 분야에 저명한 명의는 지리산 산골에 있어서 찾기가 수월할 것 같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를 비교적 쉽게, 사전예약이란 절차를 통해 선릉역 그의 개인병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갑상선암, 구강암 수술을 6천건 이상 시행했던 전문의. 갑상선암에 대한 책을 쓴 저자로도 잘 알려진 분인데 로빈슨이 검색 끝에 이 선생님을 선택했다. 명의, 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권위주의적인 태도없이
진료실 여기저기 환자가 있는 곳으로 분주히 오고 가는 모습에서 왠지 신뢰가 가면서, 기사나 매체를 통해 화려한 프로필을 봤을때보다 마음이 좀 놓이기는 했다.
일단 오늘 중간 결론은,
1. 이하선 종양으로 2cm 정도 되는 전형적인 침샘 종양이며
2. 모양이 매끈해서 나빠보이지 않지만
3. 다만 위치가 신경과 근접한 안쪽이라 신경 종양인지 세침검사를 요한다는 것
(세침 검사를 하는 동안-무자비하게 주사바늘이 로빈슨 오른쪽 턱을 찌르는 동안- 피가 흘렀고 그가 아끼는 캐시미어 쉐타에도 피가 묻었다. 소리한번 안지르고 엄살안부리는 로빈슨때매 나혼자만 눈물이 쏟아졌다)
4. 신경 종양이라면 수술시 신경도 자르게 되는데 어떤 신경을 잘라서, 어느 부위 마비가 올지 모르는 것에 대비 해야하고
5. 수술을 안한다 해도 혹이 자라면서 신경을 눌러 안면마비는 오게 될거라는 것
6. 다음주 목요일 재방문 요망- 세침검사 결과
로빈슨이 ct를 보고, 하정훈 의사를 만나기 전부터 걱정하던게 현실이 되었다.
다른사람들은 얼굴에 혹이 만져지거나 육안상 혹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로빈슨은 아무런 증상도 없었을 뿐더러 혹의 존재여부가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래서 수술부위가 신경 가까운 민감한 위치일 것 같았는데 막상 진짜 그렇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듣고나니 마음이 복잡했다.
보통 악성종양 모양은 비정형, 기형의 형태지만 로빈슨의 그것은 매끈했다는 것에,
2주째 머리가 아팠던 것이 결국 뇌종양은 아닌 것에,
위안을 삼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많아진건 어쩔수없다.
아예 그런 혹이 오른쪽 턱밑에 자리잡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고.
인생지사 대부분이 새옹지마임을
이미 일어난 결론은 바꿀수 없음을 잘 아는,
로빈슨은,
이제라도 알게 된 것에 감사해하며
어떻게 혹을 다스리고 수술에 임해야 하는지,
신경 종양이라면 감마나이프 방사선수술은 서울대병원으로 가야겠다고, 말했다.
혹부리 영감도 이하선 종양이었을거야.
, 라고도 말했다. 나원참. 자기가 지금 뭐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 병명 진단할 상황은 아니지않나.
이참에 어디 순진한 도깨비라도 좀 찾아나서야 하나.
엄마 걱정할세라 로빈슨은 최대한 담담히 오늘 진료 소식을 전했지만 철없는 막내를 자처하는 나는 집에 오자마자 엄마한테 오늘일을 낱낱이 고했다. 어떻게 세침을 했는지. 애기 낳을때도 소리한번 안지른 언니가 이번에도 엄살 한번 부리지 않고 검사받는 모습에 나혼자 엉엉 울었다는 것도.
엄마는 화장실 갈때나 갔다와서나 미스터 트롯을 보다가도 문득 문득 혼잣말을 했다.
“그럼 괜찮은게 아니구나.
얼굴이랑 가슴을 그렇게 찔렀는데 아프겠네.”
가슴은 안찔렀어 엄마;;
시골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이런저런 각자의 걱정을 뒤로하고 모두 잠든 고요한 이밤, 오늘 일을 기록해본다.
폐암말기로 고생했던 아빠가 복수에 물이 차서 괴로워하며 그것을 빼내는 장면
뇌경색으로 쓰러진 엄마가 콧줄을 코에 낀채로 중환자실에서 나를 찾던 장면
겁보 둘째언니 자궁용종 수술하는데 바쁜 남편대신 내가 같이 가주었던 장면
넷째언니 불안장애로 쓰러졌을때 병원침대 바닥에서 울면서 언니 약 예후를 정리하던 장면
아무리 인생은 생.로.병.사 라지만
태어나서 늙고 죽는거야 그렇다쳐도......중병으로 괴롭게 죽는 건 싫은게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싶다.
할머니 단한가지 소원은
자다가 죽는 것, 이었다. 고통없이, 폐 끼치지 않고.
다행히, 우리 할머니 바람은 이루어졌다.
죽음을 선택할 수야 없지만, 나도 우리 할머니처럼 단한가지 소원을 그렇게 써볼까싶다.
고통없이 폐끼치지 않고 명대로 살다 죽는 것.
나의 자궁에도 10cm 혹과 5-6cm 크기 혹이 대여섯개 들어있다. 언니들 유두 근처나 유방부근에도 혹이 서너개쯤은 다 있고.
대부분의 여자들이 자궁과 유방에 크고 작은 혹을 지니고 산다. 다만 누구는 그 혹이 혹으로 끝나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 혹이 악성종양으로 변하는 일이 생기도 한다. 스트레스로, 흡연으로, 가족력으로, 선천적, 후천적 요인으로 누구에게나 혹이 생길수는 있지만 그 혹의 향방은 다 다른 것.
그래서
인생은 한치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과거와 미래에 너무 많이 연연하지 말고
현재를 살라는 것도 다 그때문일는지도 모른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면서.
까르페디엠, 외치면서
오늘을 살라는 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