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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Feb 16. 2021

내게 축구를 가르쳐준 남자 <안느>

축알못이  축구에 빠진 이유



내게 축구를 가르쳐준 남자 '안느'

<1%의 우정>이란 몇년전 예능을 통해 우연히 안느를 발견하고

안느+축구에 대한 사랑이 시작됐다.

2002년 월드컵-이탈리아전을 2020년 12월에 봤다.

나만 몰랐던 월드컵 골들....나만 충격적인거지..다들 이미 보고 또 본거 맞쥬? ㅋㅋㅋ



감동의 '청춘 FC 헝그리 일레븐'


1. 김은중

K리그 통산 100골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김은중 코치. 태도나 말씨, 생각에서 <바르다 김선생>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이분 사연을 듣고 눈물이 또 또르르.


3시절 공에 눈을 맞아 왼쪽눈이 실명되는 사고를 당한 그는, 모두가 축구는 포기해야 한다고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명된 눈으로 프로 축구선수가 됐다는 거다.

대체 축구가 뭐라고, 싶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렇게나 간절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2. 상남자 이을용감독

무심한듯 툭툭 내뱉지만 말과 행동에 정이 느껴지는 모습에서 반했다;;



섹시한 리더십 '조제 무리뉴'

경기에 패한후 선수나 감독들 기자회견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때는 바야흐로 2018년 월드컵. 경기에 패한 후 기성용과 손흥민의 인터뷰 온도차를 아직 기억한다.

동료를 감싸안고 기꺼이 자신의 부족함을 언급하는 그 단 한번의 인터뷰로 나는 손흥민의 팬이 되었다. 무리뉴 감독은 일찍이 기자회견까지가 경기라며, 패한 후 기자회견에서 선수탓을 하지 않았다. 잘하면 선수 덕 못하면 모두 감독탓이라고 말했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모두까는 인형으로도 유명하지만 자신의 선수들에게만큼은 따뜻하고 애정이 넘치는 리더다. 한 기자는 이제는 녹슨 무리뉴라고 비하하는 기사를 썼지만 나는 그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노장의 진가를 보여주길. 부디.


허재-안정환 케미 '뭉쳐야 찬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스포츠가 농구였다. 2:2로 갈려서 현대와 기아를 열렬이 응원했던 4명의 언니들 덕분이다.허재가 5반칙 퇴장당하면서 현대에 패했다고 둘째언니가 방상을 엎었던 일도 있었다. 지금 세대는 모를, 허동택 트리오를, 특히 허재를 사랑했지만 허재 자유투와 반칙을 기록하고, 자유투가 빗나가면 울고불고, 경기에 지면 밥상을 엎는 일도 서슴지 않는 둘째언니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허재를 마음껏 사랑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허재를 좋아했다. 원주 TG삼보 시절에, 원주로 경기를 보러 갈 정도로. 그 허재의 허당미가 발휘됐던 뭉찬을 보며 처음엔 당황했지만, 허재+ 안느 케미에 빠져들다가 결국 또 허웅까지 가버렸다. 나원참......

미스터트롯에서 눈여겨봤던 신유가 등장하는 어쩌다 FC vs 미스터트롯 리벤지 경기도 꽤 흥미롭게 봤다.

지금은 뭉쏜을 찾아본다. 허재 감독에, 포인트 가드 안느+ 슈팅가드 이동국때문에! ㅋ


베컴 아버지 덕에 알게 된 '뮌헨참사'

축구선수 37명의 등급을 나누는 유튜버 영상을 보다가 오랜만에 베컴을 보게 됐다. 영국 축구역사상 최고의 킥커라 불렸던 베컴. 얼굴때문에  under_rated 되기도 했던 그의 유소년 시절을 찾아보도가 맨유의 뮌헨참사 사건을 처음으로 알게됐다 (베컴의 가족 모두는 토트넘의 팬이었지만, *뮌헨참사를 이겨낸 맨유를 사랑한 아버지 영향으로 베컴이 맨유에 입단했다는 내용이었다)

축구의 역사를 알면 축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간 1도 관심없었던 터라 무지했지만.


 




축알못이 축구에 빠지게 되었다.

어쩌다? 안느 덕분에!









축알못도 알게 된 축구용어들 (축구 유튜버들 영상보면서 하나씩 업댓중임;;)

스완셀로나: 한때 스완지의 별칭

양학: 압도적인 신체능력, 타고난 센스를 가진 경우 (ex 챔스 16강에서 분데스리가 상위권 클럽인 레버쿠젠과의 경기 중 혼자 5골을 넣은 메시를 표현할때)

 treble: 리그, 컵대회, 유럽대회 동시우승


축구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들 (업댓중임;;)

뮌헨참사

1950년대 거만해진 영국 축구협회가 프리미어 리그 우승팀의 유러피안컵(UEFA Champions League) 출전을 막아왔는데 이전의 우승팀이었던 첼시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맨유의 감독 맷 버스비는 세계적인 팀들과 겨뤄야한다는 소신으로 참가의지를 밝였다. 그리고 참사의 시작은 1958년 2월, 맨유가 유고슬라비아의 한팀과 유러피언컵 8강 원정 경기를 치르고 선수단 비행기로 귀국하는 중에 일어났다. 소련에서 영국으로 돌아오던 유러피언 항공 609편(British European Airways Flight 609) 비행기가 경유지 뮌헨 공항에서 이륙하던 도중에 기체가 전복되고 만 것. 이 사고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 중 8명을 포함하여 구단 스태프, 취재기자단을 통틀어 23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나무위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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