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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Aug 01. 2021

'욥기'
박영선 목사 해석

고난의 끝은, 축복!



이하는, 박영선 목사님 욥기 설교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욥기를 한다고 하니 제 아내가 말렸습니다.
왜 말렸을까요?


 

"당신이 설교하면 우리가  꼭 그렇게 되더라. 

신나는 걸로 (설교) 해"


아내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계속 복받는 내용이 어디있나요? 환난과 고난, 의심과 시험을 벗어난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1장에서 하는 이야기는 (고난받는 것에 대해) 욥 자신에게 이유가 없었다, 고 이해하면 됩니다.

욥기는 욥이 고난과 형벌을 받을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끝에 42장에 가보면 욥기의 결과는 욥이 두배로 축복 받았다는 걸로 끝납니다. 욥이 뭘 잘못했는지는 설명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욥에게 <창조세계를 보여주면서, 너는 저 창조물과 다르다, 너는 내 옆에 있는자다, 이 사람은 이것들과 다르다>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욥이 지금 누리고 있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자기의 이해)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자리까지 가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쉬운길은 없습니다. 이 길을 통과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욥기라는 드라마는 하늘에서 회의를 하는데 사탄이 들어오는것 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너는 왜 바쁘게 돌아다니냐?" 하나님이 묻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너는 왜 내 통치에 순종하지 못하고 발벗고 나서 휘젓고 다니냐. 욥을 봐라!" 한거죠. 

사탄이 말합니다. 

"까닭없이 그가 잘합니까?". 


하나님과 사탄의 논쟁입니다.

까닭없이 그가 잘하냐는 말은, "욥을 쳐보십시요. 까닭없이 순종하겠습니까? 순응할만한 충분한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욥의 재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닙니까? 저에게는 그런 울타를 주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라고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래? 그럼 그 조건을 제거해보아라"


그 조건이 뭐냐면 사탄이 불만족인 거겠지요. 

제거하는 것은 하나님 보기에 조건이 아니고, 욥에게는 조건이었겠지요. 

하나님은 조건으로 삼지않고, 우리는 조건으로 삼는 것의 갈등이 '재난'입니다. 그 재난을 통과해야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조건에 의해 성립되고 만족스러운 깨우침에 인도될 것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을 채우기 위해 바빠질 것입니다.

욥은 자신의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서, 하나님 통치의 깊이를 깨닫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성도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과정입니다. 


로마서 5장 1절~4절을 보시겠습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는 이미 얻은 구원과 1절에 있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자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진 사실/ 조건 위에 서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약속 소망 속에 있습니다. 이미 이룬것과 장차 받을 것 사이가 현재인데 그 현재를 3절에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라고, 성경이 선언함으로써 얻은 구원과 구원의 영광된 성취 사이는 <환난>이라, 고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왜 환난이냐? 

환난을 통해서만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당연히 하나님 영광입니다. 

우리의 이해와 욕심과 조건과 범주를 깨고 하나님의 뜻과 넘치는 이해 안으로 <까!닭!없!이>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게 싫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창조한 세계를 보아라." 인간은 창조물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창조물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리자로 명명받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대등한 동반자, 동역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고도 하고 통치와 결정, 선택의 자유까지 허락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어떤 목적물로 지으셨는지 다른 피조물과 구별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지위지요. 그럼 우리는 그런 지위를 모두 버리고 편안하게 우리가 아는 이해의 범주 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어한다 (우리가 기대하고 소원하는 결과를 신에게 받기 위한 울타리 안에 있고 싶다는 뜻).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할 수 없다'는 답을 하나님이 욥에게 걸어서, 욥의 인생속에서 사탄이 맞는가 하나님이 맞는가 사실은 증명하기 내기가 된 셈입니다. 


사탄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짐을 덜려고 우리를 끌어들인것과 달리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욥이라는 인간의 한계와 변덕과 연약함에 걸더라, 하는 것입니다. 까닭없이 하나님을 순종할 수 없다는 사탄의 도전과 욥의 재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가진 이해의 범주와 우리의 이해의 범주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게 드러납니다.


당사자 욥은 고난을 당하지만 그 고난속에서만이 자신이 가진 이해의 범주를깨고 하나님의 이해의 범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나님이 열어 두신겁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젤 노여운게 뭐냐면 자식들이 애들 데리고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때리는게 제일 싫습니다. 참을 수가 없습니다. 

나님이 그걸 참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려고 관망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범주를 드러내고 항복시키기 위해 아들을 보내시는 바로 그 아픔으로 우리에게 고난을 주는 것이므로, 즉 하나님의 고난입니다.

예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할때 하나님은 웃고 계셨겠습니까? 

온 하늘이 어두워집니다. 하늘이 웁니다. 아버지가 울죠. 똑같은 마음으로 욥에게 고난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그건 욥의 고난이 아니고 하나님의 고난입니다.


욥기 1장 이후가 모두 재난을 전하는 종들의 보고가 <갑자기>입니다. 

갑자기가 뭐죠? 이유없이죠. 왜 이유가 없죠? 우리가 아는 이해의 범주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이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일해서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에 가면 19절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말라고 오직 하늘에 쌓아두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물로 아는 것이 (우리 이해 범주 안에) 보물이지요. 
하늘의 보물과 비교해서 땅의 보물은 하찮은 것입니다. 
21절 네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브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31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말라. 


너희가 하나님을 초월자로 순종하지만 목적으로 순종하지 않고 방법으로만 하나님을 요구하면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게 아니다, 라는 거죠. 

하나님 목적이 우리인데.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에만 하나님을 도입하고,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하고 있지는 않나요?


모르면, 허망한 일에 소진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 사이의 문제고, 진정한 가치와 영원한 것의 문제에 관해서 누가 주인이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자기가 고집하는것을 놓지 않는 한 더 큰 것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지난주 아대님이 말씀하신 타잔의 법칙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나아가는 것을 사람들은 언제나 재난, 환난,고통이라 이해합니다. 

싫지요.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참여하기 위하여 깊은 바다에 노저어 가는, 망망대해로 나가라는 건 우리의 이해의 범주에 벗어나는, 내가 장악하고 조작하는 한계에서 벗어나는게 두렵습니다. 그것이 깨질때 우리는 그것을 누구나 재앙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욥기입니다. 이것이 싫다, 두렵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을 자격이 없다는 이야깁니다.


나이가 들면 좋은게 있죠? 

기운도 빠지고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죽어야되는걸 각오하게 되면 사건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젊었을때와 다릅니다. 젊었을땐 청바지에 목숨을 걸지만 지금은 그런것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먹을것 걱정하고, 사회에서 자기 자리 확보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데... 재난을 겪어야 비로소, 이 고생을 하면서 계속 살아야 하느냐? 도전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편안하면 이 생각을 안하게 됩니다. 돈이 생기면 차부터 바꾸고 마누라를 바꾼다고 합니다. 못할 짓이죠. 복권에 당첨되서 잘된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자기가 가진 이해의 범주가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던 목적의 위대함에 도전할 이유가 없죠. 그게 비극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 존재인가. 세상에선 그게 기껏해야 대의요 도덕입니다. 대의나 도덕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 확인을 하는 2차적 가치이지 스스로에게 만족하는게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에 들어와야 비로소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위대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됩니다. 


불교 이야기 잠깐 하겠습니다. 몰아. 내가 없어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비워버리는 것, 무소유. 가져서 진 죄로부터 도망가는 것입니다. 가져서 짓는 죄를, 가졌다 하더라도 제대로 쓰는 것으로 답을 찾는게 아니고 안가지겠다는게 무슨 답이 됩니까?


가족으로 얽히기 때문에 도망갈수 없는 책임에서 전전긍긍하죠. 

산다는게 얼마나 힘이 듭니까? 

왜 하나님이 고달픈 인생을 반복하도록 살도록 방치하는가? 

왜 나는 오늘도 공중의 나는 새를 봐야 한단 말인가? 

여러분은 생각하셔야 합니다. 차라리 생각할 능력이 없었더라면. 내가 다만 저 비둘기였더라면 매미였더라면 한줌 먼지였더라면.....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는 하나님의 흔드심이죠. 

매일의 삶속에 하나님이 심령을 깨우십니다.

일어나라, 답하라. 너 아직도 네 생각과 네 확인속에 숨어 내가 너를 만든 뜻을 외면하고 도망갈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게 현실입니다. 

욥은 우리들 중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입니다. 


우리는 애써 다른것으로 치환합니다. 전도/ 기도/ 성경보기로 치환합니다.

그게 나쁘다는게 아닙니다. 이고민과 이 깊은 답, 자신을 깨고 하나님의 통치에 자신을 위임하고 안내를 구하고 붙잡아 달라고 하는 도전에 직면한 자의 고난을 허울좋게 외면합니다. 

교회가 사회적/시대적/국가적 책임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하나님앞에 자신을 이해하고 인간과 인생을 이해하는 틀을 신앙적으로 확보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다만 도망가고 변명하는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더이상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자식들 손가락질 받지 않게 살게해주세요" 라는 건 기독교를 모르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릴 위하여 고민하고 마음 아파하고 일하는 걸 외면하는겁니다. '하나님 이만하면 됐습니다.' 하고 싶겠지만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열심히 사십시오. 고민하시고 울부짖으시고 어떡하란 말입니까, 물으십시오.

(다행히 그 내용이 한참 나오니까 여러분들이 그런말 하는거 잘못아닙니다. 필요한 과정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만든다는데 여러분은 지금 어디쯤 와있을까요?

연단을 지나면 소망으로 갈 것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나이가 늙고 모든것을 손에 놓아야 하는 때에 이르러 하나님이 다만 우리를 소모시키고 쇠진 시키고 탈진시키는게 인생이 아니라 정금같이 제련하셨다, 는 인생이 모두에게 허락된줄 아시는 기대와 믿음과 각오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 일하심 앞에 우리는 숙연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괴롭히시는것이 아니라 우리로 인하여 기꺼이 괴롭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진심을 주시어, 모든 것을 동원하여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만들고 계시다는 것을 욥기로 통하여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에 시련을 하루의 시험을 하루의 도전을 하루의 인내를 하루의 고통을 소중히 감당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욥기 1장_남포교회_박영선 목사님 말씀 중에서

http://lamp.kr/lamp-sermon/?p=4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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