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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17. 2022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벌써 몇 해 전인가

제주 어느 책방에 들렸다가 당시에  '쏜살 문고' 미니 사이즈 판형에 반해 이 시리즈 전체를 싸 그리 몽땅 구입했었다. 언제나 믿고 보는 민음사, 책이니까.

다만, 아직도 그 책을 다 읽지는 못…


어쨌거나

여전히 어디든

조금의 기다림이 예상되는 외출에는

늘 이 작고 가벼운 판형의 책을 하나씩 들고 간다.


끝까지 읽은 책은 많지 않지만 하나같이 다들 주옥같은 문장이 실려있는 시리즈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 소품으로 데려간 이 책을 읽다가, 길 한복판 햇살 아래서 순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왜?

게으른 자를 위해 일찍이 누구도 이토록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준 이는 없었으니까.


게으름이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층의 독단적 규정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일을 하는 것, 이라고 작가는 게으름을 정의한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통찰력인가.

지배계층의 독단적 규정에서 인정받다가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판단되는 즈음


나는 기꺼이 게을러지기로 결정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지배층의 인정에 내삶이 더 피폐해지기전에.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 쏜살문고



편애하는 밑줄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게으름이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층의 독단적 규정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일을 하는 것이다.


게으른 자는 중요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

지혜 말이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들을 차분하게 충분히 고려한다.


계속 노고를 바치고 힘겹게 언덕 꼭대기에 올라 모든 일을 끝냈을 때 여러분의 성취에 무관심한 사람을 마주하면 마음이 쓰라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물론자는 물질주의적이지 않은 사람을 저주하고, 금융업자는 주식을 모르는 사람을 참아주는 척하고, 문필가는 문맹자를 경멸하고, 온갖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앝잡아본다. 이런 사정 탓에 게으름을 변명하려는 일이 어렵기는 하지만 이것이 가장 큰 어려움은 아니다. 이 글은 변명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달라. 확실히 근면성을 옹호하기 위해서라면 합당한 주장을 많이 늘어놓을 수 있다. 다만 근면성에 반대하면서도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지금 내가 하려는 바가 그것이다. 어떤 주장을 한다고 해서 다른 주장에 귀를 틀어막는 것은 아니고 누군가 몬테네그로에서 여행기를 썼다고 그가 리치먼드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분주한 습성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은 그 자신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 친구와 친척,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도 고통을 받는다.

인간이 자기 일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지속적 헌신은 다른 것들을 지속적으로 소홀히 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일'이 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지는 결코 명확하지 않다.


그가 일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잘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타인 삶에 해로운 얼굴이다. 짜증을 잘 내는 그의 기질을 참고 견디기보다는 *관료주의적 관청에서 그의 도움을 아예 받지 않는 편이 낫다.

* 민원을 다른 부서로 계속 옮기고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 무사안일주의적 관료 조직을 비꼬는 용어


담배가게 주인도 생각해보면 자만심을 느낄 이유가 없다.

담배가 진정제로서 탁월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판매하는데 필요한 자질은 희귀하거나 소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의 문제이지 무엇을 소유하는 가의 문제가 아니다.

열망은 영원한 기쁨이고, 토지처럼 확고한 소유물이며, 즐거운 행위라는 수입을 매년 제공하는 결코 탕진할 수 없는 재산이다. 열망이 큰 사람은 정신의 부자다.


고압적이거나 반항적인 사람은 사랑에 빠지거나 사랑을 얻기 어렵다.

사랑을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고 남편과 아내 둘 다 친절과 선의를 발휘해야 한다.


우리가 가장 과소평가하는 의무는 행복이다.

행복함으로써 우리는 익명으로 세상에 은혜의 씨앗을 뿌린다.

따라서 빈둥거려야만 행복한 사람이라면 빈둥거리며 지내야 한다.



엘도라도

진정한 행복은 어떻게 시작하는가의 문제이지 어떻게 끝내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의 문제이지 무엇을 소유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열망은 영원한 기쁨이고 토지처럼 확고한 소유물이며 즐거운 행위라는 수입을 매년 제공하는 결코 탕진할 수 없는 재산이다. 열망이 큰 사람은 정신의 부자다.


희망을 품고 나아가는 것은 (엘도라도에) 도착하는 것보다 낫다. 진정한 성공은 힘겨운 노력 자체이기 때문이다.



심술궂은 노년과 청년


내가 예전에 지녔던 의견은 지금 갖게 된 견해에 이르는 노상의 여러 단계였을 뿐이고, 지금의 견해는 다른 견해로 이르는 단계에 불과하다. 마음을 정확히 균형 잡힌 공백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일관성을 찾거나 명료하고 영속적인 견해를 기대하는 일은 헛되다.


젊음은 그 자체의 일을 해 나가고 그 나름의 행복한 영감을 따름으로써 노년의 여가를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바쁘고 충만한 젊음은 자족적이고 독립적인 노년을 열어주는 유일한 서곡이다.


노인은 한쪽에 서있고 젊은이는 분명 다른쪽에 서 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양쪽 다 옳다는 것이고 그보다 확실한 것은 양쪽 다 틀리다는 것이다.



사랑과 결혼의 미로


사랑은 지나치게 격렬한 열정이라서 어떤 경우에도 가정에 적절한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결혼은 주관적 애정의 문제이므로 일단 마음을 먹고 스스로를 잘 설득하면 누구와 결혼해도 잘 헤쳐 나갈 수 있다, 라는 말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에 관하여


사랑을 불러일으킬만한 가치 있는 남자는 본적이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젋은 시절의 괴테를 제외하면, 그런남자에 대해 읽은 적도 없다.


사랑에 빠지는 일은 결코 모두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이미애 옮김)
- 영국 빅토리아 시대 소설가. 1850년 스콜틀랜드 에든버러 출생
- 보물섬, 지킬박사와 하이드, 마크하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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