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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Oct 26. 2021

다시보는 사도행전 5

 바울의 회심 / 우리의 약함도 감싸신다


다음은, 박영선 목사님의 <다시보는 사도행전> 챕터 12~14장을 읽고 요약한 글입니다.


Part 12. 죄인에게 복음의 문이 열리다

교회 안에서 사랑이나 믿음을 이야기하려면 사랑은 분명히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믿음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예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께서 원수를 끌어안으시는 사랑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용서하신 사람을 끌어안아야 겠다는 각오로 사랑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또 믿음이라고 이야기할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아무도 불가능한 사람은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끌어안아야 합니다. 우리는 감당하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예수께 맡기십시오. 내가 정죄하거나 내가 경계선을 긋지말고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는데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가득한 곳이 교회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5)


성령을 따라 행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가지하 말지니라 (갈 5:22-26)

** 자비(kindness) 양선(goodness) 자비는 관대함, 자비보다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가 양선



여러분은 교회에 오실때마다 무슨 기대를 해야 합니까?

오늘은 얼마나 멋대가리 없는 사람을 만날까 기대하셔야 합니다. 매주일 오실때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까지도 부르시는가 보시고 그중에 하나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시고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부르셨다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가를 보십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구원하신, 죽음에서 부활을 만들어내신 하나님과 함께하여 "볼지어다 세상 끝날때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할지니라"를 기억하는 자로 주일에 교회에 오십시오.


여러분을 이 자리에 앉히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애를 성령께서 오신 바로 그 사실로 인하여 우리 생애 내내 지키십니다. 여러분이 앉은 그 자리가 지금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인 줄로 확인하는 여러분의 고백, 여러분의 출석, 여러분의 교회 공동체 회원됨을 확인하는 오늘의 말씀이기를 바랍니다.



Part 13.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다

사도행전 9장


하나님을 핍박하는 바울이 회심하는 장면입니다.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사울을 만나 세례를 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본성상 종교를 초월자에게 간절히 빌어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치성을 바쳐 신이 감격하여 우리의 소원을 들어두는 것으로 생각하여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의 중심에는 신이 아니라 신을 감동시킨 믿음을 가진 자기 자신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인공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고 구원자이며 인류 역사를 마감할 심판자입니다.


다메세 도상에서 사울을 마중나와 꺾으신 하나님이 매주 매일 매순간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그것이 성경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였느니라(요 15:14-16)


사울은 못난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그것을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항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내가 무능할뿐 아니라 무지했음이라)" (딤전 1:12-15)


여러분 성경에 있는 인물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다 블러와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거짓말쟁이요 모세는 살인자요 다윗은 부도덕한 사람입니다. 그 반열에 사울이 올라갑니다. 무식한 놈으로 올라갑니다. 바울은 정확히 자기 위치를 압니다. 내가 죄인 중의 괴수니라, 하고 자기 자리를 지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VBdALUiWMc


우리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라 그렇게 믿고 주일을 지켜나와 하나님이 사울을 불러 바울을 만드시는 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아나니아가 되는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을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각각 마음에 우리가 쓸모 있고 신앙적으로 어떤 정도를 넘어서야 한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곤 합니다. 우리가 쓸모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차원에서 자신의 보잘것없음에 늘 낙심합니다. 나같은것 하나가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나니아입니다. 기도중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아나니아 말입니다. 또 바울입니다. 교회에 와서 앉아있는 나를 보고 세상사람들이 <저 사람도 구원을 받는구나> 여기는 바울말입니다 (박영선 목사 성가대 이야기 참고) 우리가 이런 바울의 역할을 할지 아나니아가 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한날 주일에 모입니다 기도하며 찬송합니다.


여러분의 사소한 자리, 감추어진 인생이 얼마나 극적인 자리인줄 기억하는 오늘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Part 14. 우리의 약함도 감싸신다

이제 변화된 사울이 등장합니다. 그가 다메섹에서 하려고 했던 바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변화되어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9장 23절에 나오듯이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합니다. 사울은 밤중에 탈출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나려고 하자 사도들이 안 만나 줍니다. 사도들이 사울의 회심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게 예수 믿는자를 핍박했는지 바나바가 나서서 주선을 하고 그가 회심한 사실을 제자들에게 확인시킵니다.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을 죽이고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예수를 만나고 회심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들을 볼면 참 놀랍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혹 여러분이 어떤 회심의 순간, 누구의 증언이나 설교 혹은 기도나 말씀을 통해 어던 변화가 일어난 그때의 정황을 기억하고 있을지라도 그 모든것에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왔을 때의 무대에 불과하며 하나님이 찾아오신 방법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회심했을, 예수님을 믿었을 첫번째 경험, 잊을 수 없는 경험을 가진 분들이 주로 설명하는 중에 <이렇게 하면된다>와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게 오히려 올무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그것은 가끔 지나가는 사람이 준 전도지 한장이기도 하고 어느날 길 가다가 들은 교회 종소리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머리맡에서한 기도이기도하고 예수믿는 친구와 싸우다가 끝에 <너는 지옥에나 가라>고 하는 저주일수도 있습니다-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본인이 모르는 저주 (지옥에나 가라)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게 뭔가 해서 찾다가 예수를 믿었더랍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1-10)


여러분이 보기에 여러분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을때도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이 실패했을때도 주께서 그 일로 일하십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입니다. 누가 당신 예수 믿는 거 맞아? 그러면 이렇게 답하십시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의 자랑, 결코 정죄함이 없는 예수님 안에 있는 축복, 그것이 우리의 인생일줄 아시는 자랑과 감사가 넘치는 인생 사시기를 권합니다.




Q.  여러분의 회심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Q.  언제 어떤 계기로 특별히 낙심되곤 하나요?

Q.  내가 아나니아라고 여겨졌던 순간'도' 있었나요?



제니퍼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내가 했다,  자랑만큼 무익한 것이  있을까요.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내가  선행을 좀알아주세요, 하는 말들을 하고나면 뒤돌아서서 부끄러워질때가 많습니다. 내가 한일인줄 알고 우쭐했다가 결국은 그일로 낙망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주님, 내가 했다는 고백보다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셨다는 고백이 나올  있게 하여주시고, 육체의 욕심을 따르지 않고 오직 성령을 따를  있도록, 내게서 령이 떠나가지 않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세요. 나무는  나무의 열매를 보고 알수 있다고 했고,  사람의 믿음은 그사람에게서 나는 성령의 열매를 보고 안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오래참음과, 사랑과, 자비와 양선, 온유와 절제라는데 모두를 끌어안기보다 선택적인 소수를 끌어안고, 자비로운 마음은 품었으나 적극적인 샹선은 부족했으며 절제하지 못하는 생활습관과, 말로 인한 죄들, 턱없이 부족한 인내심....앞에 오늘밤도 부끄러워집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통해서도 주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어제도 일하셨고 오늘도 내일도 쉼없이 성실하게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믿기에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내일도 동행하여 주시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간구하며, 지혜를 구하오니 항상 넉넉함으로  모든 것들 채워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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