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I. 개복하 자궁근종 수술 및 퇴원
드디어 수술 당일.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채혈 후 담당간호사로부터 내가 하게 될 개복하 자궁근종 수술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당일수술센터'에서 환자복으로 환복한 이후 <보호자랑 헤어질 시간>이라는 안내를 받고 보호자는 들어갈 수 없는 '수술준비실'에 나혼자 들어갔다.
(수술전후를 통털어서 그 한시간 반이 제일 두려웠다ㅜ)
두려움에 떨며 수술준비실에서 링거를 꽂고 내 차례를 기다리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이름이 호명되지 않았다. 처음엔 내 차례가 좀 천천히 왔으면 했는데, 한시간 넘게 대기하다보니 차라리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내 이름이 이제는 제발 좀 불리기를 바랐다.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면 '보호자'랑 헤어질때 책이라도 한권 챙겨올 걸, 신문이라도 가져올걸 하고 후회했지만 얌전히 앉아 눈을 감고 (평소 외울일이 없던) 사도신경을 외웠다. 앞뒤 옆사람이 하나둘 차례차례 호명되며 의료진에 의해 수술실로 끌려간(;) 한참 뒤에 드디어 내 순서가 왔다.
"00님?"
네, 저 여기.....
그리고 마침내 나는 침대에 눕혀진 채로 내가 가야할 수술실에 배달되었다.
"이름이 뭔가요?"
"오늘 받을 수술은 어떤거죠?"
다 아시면서 왜 묻지, 싶었지만 환자가 수술실에 잘못배달될 수도 있는거니까 침착하게 이름과, 내가 받을 수술에 대해 답변했다. 마취과 의사로 보이는 분이 그외 몇가지 말씀을 내게 더 하셨는데 그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깨어보니 회복실이었다.
[수술 전 체크사항]
* 수술전 금식은 상식이지만, 수술시간 4시간 전까지는 소량의 생수는 먹어도 된다. 단 소량으로만!
* 보호자 이불이나 베개는 챙겨가야 한다. 1인실에도 보호자를 위한 침구는 제공되지 않는다.
수술은 그야말로 눈깜짝할사이 끝났다.
2년에 한번 꼴로 받는 수면 위내시경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4-5시간이 걸렸다지만 내 입장에서는 눈깜짝할 시간이었다. 마취후 눈떠보니 이미 회복실.
전신마취를 하는 수술이 처음인 분들은 너무도 두렵겠지만 이미 해본 분들은 안다. 마취되는 순간 바로 깨어나는 의술의 신비로움을! 그러니 걱정마시기를.
다만 회복기는 또 다른 이야기니까 기저질환이나 각자 다르게 발현되는 수술 후 증상에 맞춰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수술 후 회복실에 옮겨진 기억은 없지만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란 글씨를 볼 수 있었다.
회복실에서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는 간호사들이 보였고 그중 한분의 이야기가 들렸다.
"환자분 호흡이 너무 짧고 빨라요. 길게 심호흡하세요"
(저도 진심으로 그러고 싶어요. 근데 내 호흡이 내맘대로 안된다구요!)
왜 자꾸 내 호흡가지고 뭐라고 하는거지...지금 내 호흡이 어떻다는거야....
분명히 나는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언제 다시 잠이 들었는지, 걱정끝에 다시 눈을 떠보니 '보호자'가 기다리는 6인실 병상으로 옮겨져있었다.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나의 보호자'를 드디어 만나게된거다. 그때가 저녁 예닐곱시.
그리고 이후 자정까지 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수술 후 전과정을 통털어 제일 힘든 시간이 이때다.
생전 경험해보지 않은 고통에 발을 동동 굴렀는데 '나의 친애하는 보호자'는 내게 주의를 줬다.
"여기 다 중증환자들이니 소리내지 말고 참아!"
(나원참! 식당에서 반찬 더 시키지 말라고 하는건 이해하겠는데 아픈데 찍소리도 내지말고 참으라니. 기가막히고 코가 막혔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거라 일단 참았다)
실제로 발을 동동 구르지는 않았고, 나름 참을성이 강한편이라 (나라서) 참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통증에 약한 사람은 강력하고도 강력한 진통제가 필요할것같다. 찌릿찌릿 아리는 고통 속에서 도저히 편히 잠을 잘 수없었다. 잠이 들게 해달라고 수백번 기도했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허리는 왜 이렇게 또 끊어질 정도로 아픈걸까. 도저히 가만히 한자세로 누워 있지를 못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이리저리 몸을 뒤척여보고 편한 방향을 찾으려고 해도 조금도 편해지지 않았다. 게다가 손목과 배 곳곳에는 주사바늘, 배관액 그리고 소변주머니가 달려있어서 어떻게 누워도 불편했다.
주렁주렁 거추장스럽게 매달린 이 아이들을 대체 언제쯤 떼어낼 수 있을까?
허리는 왜 이렇게 아픈거지?
대체 언제까지 이 고통이 이어지는 거지?
진통제는 들어가고 있는건가?
들어가는데도 이렇게 아프다면 진통제가 효과가 없는 거 아닌가?
무엇보다 진통제 효과가 1도 느껴지지 않는데 억울하게도 그 진통제 때문에 생기는 메스꺼움은 자주 올라와서 괴로웠다. 마취제(마취가스)를 내보내기 위해서 심호흡을 더 자주해야 한다고 안내받아서 후~ 하고 계속 숨을 뱉었는데 숨을 뱉을때마다 내 몸속에 가득 차있던 특이한 그 약물냄새도 함깨 배출됐다.
제발 빨리 다 나가버려라!
이 냄새 언제까지 나려나?
(다음날이면 사라진다)
생전 처음 겪는 수술 후 증상들로 궁금한게 너무도 많았지만 같은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들은 나보다 더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아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도 나름 배려의 아이콘이지만 나보다 더 남을 배려하는 '나의 보호자'는 한번 더 내게 주의를 줬다.
“다들 (너보다) 더 아픈 사람들이니까 찍소리도 하지마
우리 병실에 있는 5개 베드 위 환자분들이 모두 부인과 문제로 항암치료를 받는 분들이었다.
사정을 알았기에 나는 당연히 그 어떤 찍소리도 내지 않고 고통과 무서움으로 가득한 암흑의 밤을 보냈다. 밤 열시쯤, 어느 간호사가 천사처럼 나타나 내 손을 잡아주기전까지는 그랬다.
엄청 아프시죠. 내일은 다를꺼에요.
오늘(첫날)이 정말 제일 힘든 날이에요, 저 믿으셔도 돼요.
내일은 진짜 훨씬 낫습니다.
사도신경을 외우며, 하나님을 찾으면서 기도했다.
평소엔 하나님을 이렇게 애타게 찾지 않았는데, 나란 사람 참.
'이 고통의 밤이 지날 것은 알지만 지금 너무 고통스러우니 제발 이밤이 빨리 지나게 해주세요.
내일은 오늘보다 낫게 해주세요'
그러다 스르르 잠이들었는데 새벽녘에 어디선가 나를 찾는 남정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 00님?
“네 저, 여기 있어요.”
마치 정체를 숨기고 병실에 누워있는 좀비를 발본색원해야겠다는 사명감 같은걸 가지고 있는 듯한 그 분은 기어이 나를 찾아내어 내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내코에 기다란 면봉을 무자비하게 넣었다. 그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것은 환각인가?
(환각은 아니었다. 병실을 옮긴 후에도 이 남성분은 퇴원전날까지 끝끝내 나를 찾아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코를 쑤시고 가셨으니까)
[언젠가는 추억이 될 코로나 시대의 입원수칙+ 병실 옮기기 tip]
*코로나 검사는 입원기간 내내 매일해요.
* 고통은 첫날이 제일 심하고 점점 나아집니다.
* 병실은 첫날은 보통 1인실 2인실로 바로 가기 어려워요. 다만 미리 간호사분에게 이야기해서 다음날이라도 자리가 나면 꼭 옮기고 싶다고 어필하세요. 웬만하면 퇴원환자가 있어서 이튿날엔 병실 옮기는게 가능합니다. 오늘 원하는 병실이 없다고 좌절하지마세요. 내일 있을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찾아온 이튿날.
간밤의 천사가 말한대로 첫날의 고통은 진짜 많이 사그러들었다.
침실에서 일어나려고 배에 힘을 줘야할때나 화장실갈 때는 너무도 괴로웠지만 그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꽤 괜찮았다.
새벽 6시에 소변줄은 제거했다.
주렁주렁 치렁치렁 내몸에 달려있던 것 중 드디어 하나 클리어! 배관액과 링거는 언제 떼지?
(퇴원하는 날 뗀다!!!!)
오전 회진 시간.
수술 후 나의 담당의를 처음봤다. 수술당일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만날 수가 없었다.
남들이 볼때 위중하거나 심각한 수술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나름 배를 가르는 첫 수술이었으니 수술 경과가 궁금했다.
혹은 제일 큰게 14cm였고 총 10개 제거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임신가능하세요.
근데 자궁이 일반분들에 비해
알통처럼 근육이 많이 발달해 있더라구요"
(자궁에 근육이 발달하면 혹이 더 잘생기나요?)
(자궁에 근육이 생겨서 좋은건 뭐죠?)
(임신 계획은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이 가능하다니 다행이네요)
궁금한 건 많았지만 묻지 않았다.
그저 네, 감사합니다. 라고 했을 뿐. 나중에 좀 회복되면 물어봐야지, 하고 의사의 말을 메모해두었다.
의사가 회진을 다녀간 이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병실을 옮길 채비를 했다.
'나의 친애하는 보호자'가 병원에 오기전부터 노래를 불렀던 1인실이 생겼다고해서 옮길 수 있게 됐다.
우리 엄마 아빠를 간호한 덕에 나는 6인실 병원생활이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도움도 받고 편했는데 ‘병원 보호자 경험이 없던’ 나의 보호자는 한시라도 빨리 6인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본인 코고는 소리에 다른 환자들 피해줄까봐 그런다지만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닐 것 같다. 둘만 있는 2인실에서 맘편히 일드를 보고 싶어서라면 또 모를까.
"병실 옮길때 나는 못 걸어가니까 나를 굴려서 데려가줘, 이 침대 그대로..."
라고 부탁했지만 점심을 먹고나자 그 부탁이 무색할 정도로 스스로 새병실까지 걸어가는데 1도 문제가 없었다.
고통스런 밤을 지낸 동지(오른쪽 배드, 왼쪽 배드 어머님들) 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저희 조기 옆으로 병실 옮겨요 어머님"
"어제 커텐쳐진 병상에 누워서 언니랑 이야기하는 목소리만 들었을땐 강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얼굴은 순둥순둥하니 인상좋네. 병실 어디로가? 놀러갈게요"
"제가 병실 옮기고 인사올게요"
(다음날 양쪽 어머님들 찾아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과 액티비아를 사드렸다.
감사하게도 너무 좋아하셨고 두분 다 퇴원하는 날 내 병실로 찾아와 사과도 주시고 퇴원 인사도 하고 떠나셨다)
[통증과 빈혈]
* 이튿날 처음으로 통증과 선생님이 다녀갔다. 진통제에 대해 말씀주셨는데 아픈거 굳이 참지말고 진통제 맞으라는 이야기를 여러번들었다. 쌩으로 참지 마시길!
* 빈혈수치가 낮다고 해서 철분제를 맞았다. 수술 후 빈혈체크는 필수. 철분제로 잡히지 않는 경우 수혈을 하는 일도 종종있으니 평소에 빈혈관리 잘 하시기를 (빈혈양 장복하시기를) 적극 권장드린다.
새벽부터 엑스레이 촬영했다.
새벽에 채혈 결과 빈혈수치가 6.2. 지속적으로 수치가 떨어져서 수혈을 해야한다는 의사 소견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병실도 편하고 이제는 회복만 남았으니 1인실에서 맘편히 놀멍쉬멍 지내다 퇴원해야지, 하는 순간 들린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역시 내 마음대로되는 일이 없어.
배관액(피주머니)에 나오는 피의 색깔도 진하고, 배출되는 피의 양도 많고
체온도 많이 오르고
빈혈수치가 너무 떨어짐
인위적으로 생배를 째고 거길 비집고 들어가서 혹을떼고, 그 상처난 자궁을 다시 꼬매고 나왔으니 단번에 몸이 성할리 없겠지만 나름 제기능을 잘해주리라 기대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일까.
그 존재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새롭게 느끼게 된, 자궁, 방광, 대장, 폐, 심장 모든 장기에게 말을 걸었다. 제발 무탈하게 잘 견뎌 달라고. 잘 견뎌셔 제기능만 제대로 해준다면, 여기를 나가서는 니들 잘 보살펴주겠다고 약속하며 기도했다.
(수술이 끝난 지금, 그약속이 무색해졌지만...)
새벽에 간호사가 찾아와 폐가 너무 쪼그라든것 같다고 심호흡을 돕는 도구(구슬을 올리는 장난감같은 기구)를 주고 갔다. 무서웠다. 폐가 쪼그라든다니ㅠㅠ
새벽부터 아침까지 열심히 그 장난감 같은걸 불면서 심호흡연습을 했다. 배에 힘을 줄수도 없고, 어지러웠지만 쪼그라든 폐의 기능을 되돌려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ㅠㅠ
'나의 보호자'는 여전히 꿈나라 여행중,
새벽에 간호사가 다녀갔는지, 내가 열심히 호흡운동을 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찾아온 의사의 두번째 회진.
"환자분이 수혈 싫다고해서 어제 철분제 처방했는데 도저히 그정도로 해결될 수치가 아니네요. 퇴원하시고 밖에 나가면 (코로나 시기에) 피를 구하기 어려우니 여기 계실때 수혈하고 나가는게 좋을 것 같아요. 세팩만 하는걸로 하시지요”
그간 간호사에게 수혈을 받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전달했지만 담당의사가 수혈을 해야 한다고 하니 더는 버팅길수가 없었다. 마지못해 그러겠노라했지만, 협상안을 제시해봤다.
“그런데 수혈...
두팩만 받으면 안될까요?”
“네, 안됩니다!”
‘이시기에 피가 있는 것에 감사해야한다. 내 피 자체도 그리 좋은 것이 아닐수도 있다, 헌혈하면서 한번씩 묵은 피를 내보내는 것도 좋다고들 하지 않나’ 머릿솓으로 좋은 점만 생각하려고 애썼지만 수혈후 부작용 사례를 많이 들었고 또, 생면부지 남의 피를 내 몸에 넣는다는 게 왠지 너무도 찜찜해서 첫날 고통스러울때도 안그랬는데 급 예민모드가 켜졌다. 그러나 해야만 하는 것. 억지춘향이 격으로 그렇게 수혈을 받게됐다.
한팩당 두시간씩 6시간 반 정도 걸려서 수혈을 받았다.
도중에 갑자기 혈압이 급속도로 내려가고 체온이 올라 수혈을 중단했다가 30분 가량 수혈대신 수액을 맞고 안정을 취한뒤 다시 수혈을 이어가면서.
두번째 팩에 들어있는 피는 왠지 더 끈적끈적한거 같고 수혈도 더디고 수혈도중 혈압이 급 낮아져서 짜증이 한껏 났었는데, 그때, 내 모든 상태와 걱정을 잘 아는 둘째언니가 영상통화로 기도를 해주었다.
하나님. 이 시기에 기꺼이 수혈까지 해준 분이라면
그분은 틀림없이 선한분일꺼에요.
수혈해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수술도 수혈도 모두 처음인 우리 동생 두렵지 않게 지켜주세요”
받기로 한 피를 꾸역꾸역 내 몸에 다 넣고 수혈은 끝났다. 별다른 부작용이 없음에 감사하고
동분서주하며 애써주시는 간호사님에게도 감사했다. 간호사라는 직업도 정말이지 사명감없이는 할수 없는 일이구나, 새삼 생각했다.
하루하루 바뀌는 간호사분들께 모두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선물했다. 현직 간호사인 캐롤에게 연락했더니 "하겐다즈 대박이네요. 근데 주머니 속에 쏙 넣을만한 간식이 더 좋을수도 있어요"라며 귀뜸을 해주었다. 역시 현직자 꿀팁!
(다음엔 그런 간식을 준비해드려야지!)
고통으로 치면 첫날밤이,
고난으로 치면 셋째날이 제일 힘들었다.
오늘 하루는 왜 이리 긴거지?
수혈받는 것만으로 마음이 예민해졌고 몸도 지쳐있는데 하필 환부 소독까지 해야 하는 날이다. 질소독에 환부 소독까지 마치고 병실로 가려는데 복대가 없어졌다. 배에 통증을 완화해주는 것 같은 믿음을 주었던 소중한 나의 복대...복대를 다시 샀다. 다시 또 사야한다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소중한 장기와 허리를 보호하기 위해 결국 다시 사서 살포시 환부를 감쌌다.
오후에 통증과 의사가 또 찾아왔다.
"오늘은 통증이 몇점이에요?"
"전날에 3-4점이었는데 오늘은 좀 더 아팠어요. 5-6점 정도?"
"진통제 더 요구해도 되니까 참지마시고요. 여기 진통제 버튼 직접 한번 눌러보실래요?"
이게 웬걸 !!! 얄궂게도 그간 진통제가 들어가고 있지 않았다!!!
힘이 없어서 진통제 버튼을 너무 천천히 눌렀던 것. 제대로 배우고 난후 틈나는대로 진통제 버튼을 눌렀더니 통증이 다시 3-4점으로 내려갔다.
(수술 후 진통제를 링거로 연결해서 맞게 되는데, 링거와 연결된 버튼을 누를때마다 진통제가 투입되는 시스템이다)
스무살 무렵 아빠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서른살 무렵엔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병은 두 가지로 구분되는게 아닐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병과 아닌 병.
낫는 병과 아닌 병.
뇌우회로 수술후 혈액의 공급이 원활하진 엄마는 전자였고, 폐암말기로 매일을 고통스러워한 아빠는 후자, 라고 생각했다.
희망이 적다고 생각하는 병일수록 특히나 기적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절박한 모든 순간에 작게나마 희망이 깃들 수 있도록. 세상 어떤 희귀한 병이라 할지라도 감히 희망이 없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가혹하니까. 스무살 무렵 나는, 병마에 잠식당한 아빠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다. 마흔살이 되어 병원에 누워
아빠를 떠올려보니 그때 희망을 주지 못했던 것이 못내 참 미안했다. 죄송했다…
(뜻하지 않게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하며 병실에 누워있자니 그옛날 아빠 생각이 많이 나. 얼마나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웠을까. 아빠...늦었지만 정말 미안해)
동창이 밝고 노고지리 우지진대 우리의 '보호자'는 꿀잠을 자며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어젯밤에 머리 감겨달랬더니 오늘 감겨준다고해서 참았는데 오늘은 커녕, 저 게으른 보호자만 믿었다가는 내일도 머리감기는 다 틀릴 것 같다. 원래 잠이 많은 분이긴 하지만 병원에서 보호자의 신분으로 와계신 와중에도 저녁일찍 자고 아침늦게 일어나다니! 그렇지만 굳이 보호자를 깨우지 않았다. 주사바늘 없는 오른손만으로 혼자 머리감기를 시도했다. 나름 큰 불편없이 잘 해결했다. 넷째날이 되니까 통증이 훨씬 줄어들어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요리조리 씻을만했다.
머리를 감고 맑아진 정신으로 처음으로 노트북을 연결했다.
급하게 연락줘야 할 고객사의 요구사항을 처리하고, 팀분들이 궁금해하는 몇몇 건들에 대해서는
직접 통화로 설명했다. 수술 잘 마치고 오라는 메세지와 수술후 회복할때 먹으라고 보내주신 이런저런 선물에 일일이 감사 답변을 드리니 어느새 점심무렵.
점심식사후 운동도 할겸 체온도 낮출겸 천천히 76병동 복도를 걸었다. 별다른 근심없이 걷고 있노라니 수술 후 첨으로 콧노래가 나왔다. 그게 막 신나서라기보다는, 그냥 평소처럼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거다. 그러니까 내 몸이, 내 컨디션이 평소로 조금 돌아온 느낌이랄까.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가, 고마운 아이들 1.2를 사진에 담아보았다. (아래 사진)
내일이면 헤어질 피주머니와 목에 걸고 소중히 안고 다닌 진통제.
아주 아주 미미한 소량의 진통제가 조금씩 몸에 들어가는 거지만 아플때나 아플 것 같은 행동을 하기전에 미리 버튼을 누르면 빠르게 주입이 가능하다. 플라시보 역할도 톡톡히 하는 아이다. 단, 한번 누른 버튼은 15분이 지나야 다시 누를 수 있다. 배관액......저 피주머니때문에 진짜 염려가 많았다. 저게 어떻게 내 몸속에 삽입되어 안에 고여있는 피를 빼내주는건지, 저 주머니를 제거할때 얼마나 아플지......
근데, 일단 안심하시라. 하나도 안아프고 속시원하다. 스르르 조용히, 빠찐지도 모르게 찰나의 순간 제거된다. 근데 문제는 저 피주머니를 제거한 후 그곳에 생긴 상처에 일명 호치케스...스탬플러를 두번 딱딱, 박아주시는거다. 물론 참을 수 있다. 근데 살에 박는 스탬플러라니.....안당해보면 모른다. 괜히 무섭지만 아무일도 아니니 걱정마시길.
그리고 실밥을 제거할때, 저 스탬플러 심 두개도 같이 제거하라고 했는데 제거에 용이한 가위 같은 도구도 챙겨주셨다. 일반병원에 그 도구가 없어서 어려워들 한다고.
(정말 그랬다.이 도구 없이는 실밥제거 해주는 병원 찾기 힘드니 꼭 챙겨오시길)
퇴원전날, 재미난 일이 하나 있었다.
수간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나이 지긋한 여자 간호사님이 오셔서 의료진이 하는 이야기라고는 믿을 수 없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하시는 거다. 나를 생전 처음본 수간호사님이 마치 나를 오랜기간 알았던 것처럼. 모르긴 몰라도 이 수간호사님도 나와 같은 수술을 했을거라는데 한표!!!
"이 병은 착한 사람들에게 생기는 병이에요. 참지말고, 내 지르세요"
황당한 '나의 보호자'가 수간호사에게 물었다.
"엄마랑 우리는 얘가 이 수술 받고 조금 착해질거라고 기대하고 있거든요?"
그러나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우리의 수간호사님!!
이병은 너무 착하고 남 배려하고 참아서 희생해서 생기는 병입니다.
참지 마세요.
가족분들도, 더이상은 환자분에게 참으라고 하지마세요.
어머나!!
대체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내가 아니라)수간호사님이 너무 참아서 혹이 커져서 이 수술을 받은게 아니고서는 이해될 수 없는 대화였다.
차라리 차가운 얼음 피하세요, 너무 오래앉아 일하지 마세요, 자주 걸으세요.....가 아니라
희생하고 참지 말라니! 일견 수간호사님의 말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으나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관계지향적인 스타일의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는 하다.
어찌됐건 수간호사님 고마워요 조금 덜 희생하고 조금 덜 참아볼께요^^
수간호사님 핑계대면서!!! ㅋㅋㅋ
[실밥제거]
* 실밥제거는 꼭 아산병원에서 안해도 되고 집 가까운데서 해도 되는데 문제는 아무데서도 안해주려고 한다는 거다, 꼭 미리 전화해보고 <개복하 자궁근종 수술> 받았고, 스탬플러 제거 도구도 가지고 있는데 실밥제거 가능하냐고 병원에 물어보고 방문해야 한다. 잠실 7군데 산분인과에서 거절당했다!!! 오직 한곳, 삼전역 아미산부과 (02-3432-7373)에서 제거해준다!!! 잠실근처에 계신분들은 이 병원을 이용하면되니 걱정마시길.
실밥 제거해주겠다는 병원이 극히 드문 이유가 궁금해서 쌤에게 물어봤더니 꼬맨 부위가 벌어지는 경우 책임소재를 다툴 일이 생기기에 그럴수도 있다고 했다. 실밥제거 비용은 겨우 6천원인데 뒷감당해야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의료의 본질을 잊고 피하려는 모양이다.
* 마취제는 마취액이 다 끝나는 시점이 퇴원전날 새벽이라 새벽에 제거했고, 피주머니는 퇴원하는날 제거한다.
개복하 자궁근종 수술하고,
복대 잃어버려서 재구입하고,
수혈 세팩받고,
심호흡 기구 구입해서 사용했고,
환자 외 보호자 식사추가했고,
1인실에 있었으니
이 모든 토탈 비용이 상당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전부합해서 252만원 정도가 나왔다. 1인실이 아니었다면 150만원에도 수술 및 입원까지 토탈 비용이 가능했을 거란 이야긴데, 수술비에 대한 부담이 크게 없어 다행이었다. 처음 수술을 결심했을때 구글에서 로봇수술 검색해보니 수술비만 700만원 정도라고 해서 꽤 걱정했었는데 말이다.
의사 진단서 받고, 피주머니 제거하고나니 이제 진짜 퇴원!!!
어젯밤부터 퇴원짐 싸라고 닦달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던 '보호자'는 아침나절 10분만에 짐을 다 쌌다. 뭐든지 미리미리 하는 나와는 너무 다른 스타일의 나의보호자. 환자의 수족이 되어 수발을 들어주기는 커녕, 병원에 지인은 불러 외출나가 미팅도 하고 오고, 밤마다 프레즐 사먹자고 환자를 졸라서 지하 빵집에 데려가고 (많이 걸어야 하는 나를 운동시킬겸, 겸사겸사였을테지만), 간호사분이 여러번 들락날락해도 코골며 꿀잠 주무시는 그런 분이지만 함께하는 동안 배를 움켜잡고 아픔을 참아가며 웃으며 지낼만큼 걱정없고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다. 함께있으면 행복한 사람.
나의 그 보호자님 덕분에 4박 5일을 여행 온것처럼 잘 지냈다.
그리고는 무사히 나를 둘째언니 집에 이관(;)한뒤 본인은 유유히 본인 가정으로 돌아가셨다. 닷새를 집과 가게를 비웠으니 맘이 바빴으리라.
[몸의 신비로움]
센스돋는 나의 대장때문에 퇴원즈음에 아주 큰 감동을 받았다. 수술 후 고통으로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갈때마다 얼마나 아팠던지. 만약 더 큰일(;;)을 봐야한다면 배에 힘을주느라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걱정이 됐었는데 병원에 입워해있는동안 신호가 1도 오지 않았다. 변비걱정? No! No! 원래 지병인 분이 아니라면 수술후 사나흘 후면 자연히 제상태로 돌아오니 변비는 큰 걱정안하셔도 된다.
마지막으로 팁 하나 더!
지나치게 상대를 배려하는 스타일일수록 (나와 나의 보호자같은 사람들) 1인실 추천한다.
몸도 아픈데 남들 배려하지말고, 이럴때 쓰라고 돈 버는거니까 보호자분과 여행온것처럼 지낼수 있는 1인실 추천드립니다:)
이제 정말 끝!
자궁근종 수술후기 1편은 여기서
https://brunch.co.kr/@jennifernote/401
마지막 수술 후 경과와 다이어트 3편
https://brunch.co.kr/@jennifernote/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