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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an 21. 2022

쓸 만한 인간



종이책 시대를 살아온 나같은 부류는 아이패드로 먹방은 보더라도 전자책같은 건 결코 읽을 수 없을 줄 알았다. 책 특유의 냄새가 안나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배터리가 살아있는한) 시종일관 반짝이는 LCD 화면에 눈이 피로했고, 밑줄을 그을수도 손으로 책장을 넘길수도 없다는게 영 낯설고 답답했다. 몇번이나 e book 읽기를 시도해보려고했으나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문이나, 주변인들 통해 알게된 책들을 주문하기 전에 가볍게 목차나 책 안에 내용을 간단히 훑어보는 사전답사용으로만 사용하려고 <밀리의 서재> 결제를 했다. 그런데 역시나, 내가 찾는 책은 대부분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다음달 결제를 일단 취소했다.

한달에 두권 정도만 읽어도 그리 손해는 아니니까, 라는 생각으로 여기서는 한달간 두권정도만 건져야지하다, 이책을 발견했다. 사기엔 망설여졌지만 (그의 생각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 만났다. 이북 입문 첫책은 너로 정했다.


그리고 반전. 유튜브 프리미엄처럼 넷플릭스처럼 왠지 다음달에도 그 다음달에도 밀리의 서재를 결제할 것 같은 이느낌. 출발한 책(이책말이다)이 좋아서 기대할만한 다음책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그나저나, 오해하는 이들없겠지만 노파심에서 한줄 언급하자면 이 글은 밀리의 서재로부터 홍보비를 받고 쓰여진 글이 아니다. 회사동료로부터 전자책 플랫폼 중 가장 괜찮은 곳을 추천받아 가입한 어느 종이책예찬론자의 전자책 입문서 정도라고 봐주면 좋겠다. 밀리의 서재가 요청한 홍보글을 이따위로 써서는 안될일이기도 하고…)


무튼 본인은 평소 박정민, 이란 배우에게 관심이 많아 이미 그의 필모를 다 찾아본 터였다. 그리 잘생긴 외모의 배우는 아니었으나 <동주>와 <변산> 그리고 <그것만이 내세상>이라는 영화를 통해 그가 또래 다른 배우와는 결이 좀 다른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라는 직업은 무언가를 평생 배우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작품마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배우는 배우라니, 참 괜찮군. 뭐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그가 책을 썼다는 거다.

(아니 이 남자 못하는게 뭐지;)

그렇게 호기심과 기대로 이책을 읽게 됐다.


그리고

책까지 잘써버린다면 반하지 않을수가 없을 것 같았는데,



결국

나는 다시 그에게 반하고 말았다.

대단히 잘생긴 외모가 아니지만, ( . 아까도 언급했었지. 배우님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본인도 잘 안다고 했다. 본인이 공유나 정우성 타입이 아니라는 것은 왠지  부연설명을 할수록  미안한 마음이…)


내가 완전, 좋아하는 타입의 사람일 것 같았다.

나서서 말이 많지 않지만 유머감각있고 배려돋는 사려깊은 타입의 사람. 굳이 튀지 않으려해도 눈길이 머무는.


그런 성격의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쓸 수 없는 문장들을 읽으면서 그가 그런사람일거라거 (나혼자) 확신했다.


나혼자산다에 나갈까봐 좁은 자취방에 침대를 사는

준비성 철저하지만 왠지 좀 마이너한 느낌을 지울수는 없는 그런.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었을때 같은 B급정서가 주는 충격이랄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다른 직업을 가진 이로부터 받은 뜻밖의 위로랄까. 정말 신나고 재미있게 낄낄대면서 읽었다. 지금은 마치 그의 오래된 친구같은 느낌도 든다. 그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은.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우연히 자기 책을 검색하다가 내 브런치글을 보게 된다면 (그런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바야흐로 지금은 구글링 시대니까..나라도 내 이름 내 영화 내책을 검색해볼법하니까) 내가 당신 글로 인해 대단한 가치 하나를 얻었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다. 놓치고 있었지만 중요한 것 하나를 얻어간다고. 고맙다고,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고 말이다.


이 시간 출근길에 위윌락유가 나온다.

와우. 그리운 퀸, 프레디 머큐리.


편애하는 밑줄


동네바보형: 내가 어디가서 네 팬이라고 하면 있잖아. 나까지 마이너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정민: 너 팬클럽 강퇴.

뭐 옛날부터 그랬다. 남들이 핑클좋아하면 써클좋아하고 남들이 CD플레이어 들고 다닐때 난 MD플레이어 들고 다니고 그랬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 야구선수보단 벤치의 선수를 더 좋아했고 그 선수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도 사고그랬다. 그런데 그 선수 방출당해서 유니폼 중고나라에 내놓고 그 와중에 안팔리고 뭐 그랬다. 남들이다 읽는 책은 읽지 않았고 남들이 다 보는 영화도 보지 않았다. 대신, 아무도 안보는 영화를 골라봤고 그런 영화는 주로야했다.


'도광양회'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사자성어다. 본인이야 아직 재능이 차오르지 않아 불가피하게 드러내지 못하지만 재능이 가득한 서른들 혹은 서른 즈음의 사람들이라면 조금 더 자신을 믿고 기다려봤으면 좋겠다, 나같은 것도 그러고 있으니 말이다. 가만있어보자. 내가 최측근 인물에게 메세지를 한번 보내보겠다. "형의 서른은 어떠셨나요?"

"어두웠지" 그는 지금 아주 잘나가는 배우 중 한사람이다. 마흔넷에 수많은 작품에서 그를 찾았고 마흔다섯엔 분명 더 멋진 배우가 될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연기를 해보겠다고 극단에 들어간 2005년, 극단형과 함께 포스터를 붙이다가 가슴에 꽂히는 한마디를 듣게 됐다. "너 같은 놈 만이 봤어. 발 좀 담그는 척하다가 다 없어져"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화를 낼수 없으니 애먼 포스터만 쓰다듬었다. 이후 배우가 되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마다 그 형의 말을 되새겼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직도 싸움은 그 형이 이긴다.


영화같은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은 이렇게 영화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인생도 당신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영화같은 인생일 것이다. 영화같은 인생을 사시느라 수고가 많다. 그래도 우리모두 절망치 말고 고구마를 심은 곳에 민들레가 나도 껄껄 웃으면서 살아가자. 어차피 끝내는


전부 다 잘될테니 말이다.


요지는 책을 읽자는 거다. LCD에서 반짝거리는 글자와 책 속에 진득하니 박힌 활자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책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수도 있다는 거다. 책을 통해서라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있고, 좌절한 자를 사랑할 수도 있고, 형사가 되어 범인을 쫓을수도 있고, 헤어진 연인과의 기적 같은 재회도 가능하다.


꽤나 큰 메리트다. 살아있다는 것 말이다. 밥을 먹을수도 있고 잠을 잘 수도 꿈을 꿀수도 있다 (중략) 살아있다는 건 경험속에 있다는 거다. 나는 지금 노트북에 묻은 짜장면 국물을 한달동안 지우지 않으면 결국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난 맨날 경험해. 경험쟁이야.


수첩에 적힌 이상한 글자들이 지금의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스물다섯의 내가 스물여덟의 나를 위로한다. 동생주제에 꽤나 위로를 잘한다. 가끔씩 느끼는 감정의 요동을 글자로 남겨보길 바란다. 그중 8할은 훗날 이불을 걷어찰 글자들이지만 그중에는 분명


"목이 마를때 물을 생각하듯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그때를 기다려. 충실히. 성실히. 절실히. 길게."

서른일곱살의 박원상 선배님이 스무살의 내게 해주셨던 말씀이다. 술먹고 하신 말씀이라 본인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당시 그말에 용기를 얻은 배우 지망생 박정민은 아직도 그 문장을 마음에 품고 지낸다. 이 외에도 술먹고 하신 말씀이 몇 있는데 "즐겁게 해라. 즐겁게 해야한다" 혹은 "나 버리고 먼저가 난 더 마실께" 그래서 홍대에 고이 버려드리고 먼저 도망쳤다. 나같이 말 잘 듣는 후배도 드물다. 좌우지간, 긴 호흡을 갖고 가라는 그 말씀이 문득 가슴을 치는 요즘이다.


"영화는 네 것이 없다, 이건 내거네, 저건 네거네 하다가 정신차리고 보면 영화는 온데간데없다 하지만 가운데 두고 모두가 같이 보고 있으면 영화는 늘 그 자리에 있다" 어느날 촬영을 마치고 이준익 감독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모두가 같이 가야 한다는 거였다. 소유하려 들면 안되고 나눠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동안 내것만 하는데 급급했던 그 과정들이 조금은 반성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난 후 팀을 믿고 가는 순간, 팀원들 사이의 유기적인 끈끈함이 그전보다 더 정답을 찾아가는데 수월하더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하려고 무슨 일이든지 하게 되더라는 것도 말이다.

투수가 공을 맞아도 그라운드에는 그 공을 잡아줄 여덟명의 야수가 있는 것처럼 그 팀원들을 위해 인대가 끊어질때까지 공을 던지는 투수처럼, 팀을 믿고 간다는 것. 굉장히 멋있는 일이다. 이번 현장에서 내가 동료들을 믿고 인대가 끊어질 정도로 공을 던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팀을 위해 팀의 목적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제법 멋져보였다는 건 확실하다.

"영화에 인생을 걸지말고 그 영화를 같이 찍는 사람에게 인생을 걸어라" 라는 감독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것도 같다.


누구에게나 잊지못할 팀이 있을 것이다. 2005년 결성 이후로 무승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는 야탑동 오합지졸 축구팀 '타이거 블레이즈 범범'. 우리 골대를 노리는 저팀도 적이지만, 내게 패스를 주지 않는 저 새끼도 내 적이었떤 그팀. 근데 저 새끼가 주장인 그팀. 자책골을 넣었다고 집단 린치를 가하던 그팀. 그리고 2015년 <동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적재적소에 패스를 주는 동료들과 자책골을 넣어도 만회해주는 능력있는 동료들을 만난 이 시간이 앞으로 큰 자양분이 될것도 같다. 그리고 그들이 '타이거 블레이즈 범범'을 잊게 해줄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제나 좋은 팀에 속해있을수는 없어도 언젠가 좋은 팀에 속해 있을 수는 있을거다. 모두가 강팀속에 속해 있을 수는 없지만, 누구나 자신의 팀을 강팀으로 만들수는 있을거다. 뒤에서 받쳐주는 동료들을 믿고 다들 지금 하고자 하는일들 모두 다 이뤄으면 좋겠다. 늘 그렇듯,


결국에 다 잘될테니까 말이다.






2022년 1월의 책 <쓸만한 인간>

에필로그


결국엔 다 잘됐으면 좋겠다, 잘 될거다, 잘될테니 말이다, 로 마무리를 하는 그의 글들에서


아직 미처 다 재능이 차오르지 않았다거나

스스로 마이너함을 인정하면서도

본인이 가고자 하는 그 방향을 향해

근면성실하게 배우고

열정을 다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즐겁게 임하려는 그의 태도에서


한참을 낄낄 거리면서,

많은 위로를 얻었다.

당신들도 그의 경험과 인내와 기치가 담긴 문장들로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의 말대로 결국에는



모두




잘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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