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인간관계를 해야 한다던데...

by 책읽는 헤드헌터


재택을 하고 있어서 경계가 다소 모호하지만, 고객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시간을 내 퇴근시간으로 간주하자면, 바로 그 퇴근무렵, 둘째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업무중간에 가족들 전화를 거의 받지 않는 편이지만, 퇴근무렵이라 편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심심해. 심심하니까 외롭다.


언니는 다짜고짜 심심하고, 심심하니까 외롭다고 했다.

결혼 안한 너를 자주 놀렸지만, 결혼하고 남편이 있어도 인간은 외로운 모양이라고. 남들은 다들, 어제 들은 강의처럼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공부도하고, 부캐도 여러개 가지고 있고, 뭔가를 배우는데 바쁜거 같은데 근 몇년간 본인은 인스타 속에서 갇혀 아무런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고 했다.


둘째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어느날 갑자기 파워인스타가 된 인물로 우리가족 중에서 제일 바빴던 나와 둘째형부 (IT 개발부서 팀장이다)를 제치고 단숨에 가족 내 수익 1위로 인생역전(;)한 인물이다. 실제 3-4년간 인스타 공구진행때문에 가족여행도 제대로 못갔고 (코로나 영향도 컸다), 하루종일 집에서 외출도 삼가고 일에 종횡무진한, 결과이기는 하다.


공구 제품 촬영하고, 글 쓰고 (글은 물론 내가 도와주지만 그래도 메인으로 컨셉을 잡는건 언니 몫이니까 몸이 하나로 부족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CS하고, 다시 또 공구할 제품 미팅하고. 배송문제도 관여하고.

바빠도 너무 바빴다. 그러는 동안 해커에 의해 3-4일간 계정을 뺏긴 적도 있었다. 그 당시를 추억하자면 할말이 또 너무 많지만 오늘은 그게 메인이 아니니까....(해커가 나의 주말에 미치는 영향 편 참고!)


언니의 성실함이 18만 팔로워를 만든 걸 지켜봤기에 대단하다 싶고 때로는 측은하기도 하지만, 가족들도 많이 괴로웠다. 설날, 추석 명절이나 어버이날 어린이날 무슨무슨 날마다 그에 적합한 공구 아이템을 생각해야했고, 관심도 없는 집밥, 홈쿡, 요리도구 등에 대해 같이 공부해야했다. CS에 시달려 눈이 퀭한 언니를 마주해야했고 해커의 위험에 불안해하는 언니의 심리상담(;;)을 맡기도 해야하고.


그래도 본인이 소개하는 아이템이 잘 팔리면 뿌듯함을 느껴했고, 인성좋은 업체를 만나면 더 열심히 그 제품을 홍보해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보람차하기도 했다. 물론 그러다 또 DM으로 해결이 다소 까다로운 CS 가 들어오면 마음 어려워하는일도 생기고, 잘 팔리면 기분좋아지고. 뭐 대략 연애할때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사람같았달까. 널뛰듯 이리저리 마음이 바뀌고 볶이는 일들의 반복이 언니의 일과였다.


최근 몇주 공구시장이 예전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했다. 그래서 이전에 비해 너무나 한가해졌는데 늘 일만하다가 한가해진 이 시간에 뭘해야할지 모르겠는 게 고민이라고. 급기야 오늘은 너무 심심해서 외롭다고, 인간이란게 본래 이렇게 외로운 존재인거냐며 늘 공구아이템만 이야기하던 사람이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공구아이템에 문제가 있네, CS가 어떻네, 하는 것보다 내게는 훨씬 더 익숙하고 흥미로운 주제였다.


맨날 바쁘면 그렇게 돌아볼 시간도 없는데
어쩌면 이시간이 축복이야!


교회 집사님 같은 말이지만, 나는 진짜로 그렇게 믿기에 언니에게 말했다.

길만 건너면 닿는 지근거리에 살지만 서로의 일과상 자주 만나지는 못하는데 오늘은 언니를 만나는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운동삼아 석촌호수나 한바퀴 걷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만난 언니랑,


언니가 화두로 던진 <인간이란게 본래 외로운건가, 인간은 인간관계를 하며 살아야한다는데 그간 너무 인간관계없이 집에서 일만했다.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의 인간관계가 필요한건가, 나에게 인간관계가 필요한 시점인가>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일단 석촌호수 동호쪽에 다다르자 우리는 습관처럼 무지에서 파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시작으로 돈까스에 맥주한잔을 마시면서 오늘의 화두는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일단 마주쳤다하면 그냥 지나칠수 없는 돈까스의 집

2월달부터 유사나 단백질로 체질개선+체중조절을 하고 있는데 #인생별거있냐 #오늘만먹자며 돈까스의 집엘 들어갔다. 돈까스도 집이 있는데;


돈까스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동네 <돈까스이집> 간판을 본 이상 그냥 지나치는 건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거의 매번 언니랑 산책하다 여길 다다르면 우리는 무언가에 홀리듯 어느새 여기에 앉아있곤했다. 밥을 먹고 지나든, 안먹고 지나든 늘.


그렇게 오늘도 돈까스 정식(함박스테이크, 생선까스, 돈까스 세가지 종류가 함께 나온다) 하나를 시켜서 맥주 를 나눠마시면서 최근 큰언니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 무언가 댓가를 바라지 않고. 우리 큰언니는 어떻게 그러한 삶을 살아올 수 있었을까, 뭐 그런 이야기들.

배불리 먹고난 둘째언니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과, 인간관계의 필요성에 대한 것>은 잊었는지, 돈까스 집을 나오자마자 다음달 시작한다는 공구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바퀜은 어려워서 공부를 많이 해야하는데
글을 쓰려면 너도 공부해야해



와우. 또다시 언니의 다음 공구 아이템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자 나는 언니에게 속았다싶었다.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은 무슨!!!!


웬만해서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나를 꼬시기 위한 고단수 핑계였나!

물론 그정도로 머리를 쓸만큼 철두철미한 스탈은 아니기에 노여움 풀고 남은 산책을 즐겼다.

기분좋을 정도로 바람쐬며 산책하고 맛있는 거 먹고나니 집을 나설때 가졌던 고민이 나름 해소된 걸수도 있고. 워낙에 단순하시니까.


집앞 꽂집 바우어

오늘 산책길에 꽂집만 네군데 정도를 들렸는데 보통 선뜻 화분 서너개씩 샀을텐데 빈손으로 왔다. 내친구가 꽃집을 열고나서부터 생긴 버릇이다. 동네꽃집도 오래오래 잘됐으면해서 갈때마다 무언가를 사는 편인데, 친구네 꽃집 #줄리의정원 이 자꾸 생각나서, 쉽게 카드를 꺼낼 수가 없었다. 이왕이면 친구네서 사야지, 하는 생각때문에. 친구는 그런생각하지말고 놀러나 와, 하면서 황당해할 거다, 만약 이글을 읽는다면.

오늘도 재택하고 놀러오라고, 집에 콕 박혀 뭐하냐고 했었는데 결국 가보질 못했다. 무튼 친구 꽃집엘 자주가지는 않지만 다른 꽃집에 들러도 쉽사리 카드를 꺼낼 수는 없었다는 뻐꾸기 날리는 친구의 속사정을 글로 풀어본다.


인간은 인간관계를 꼭 해야하는가?

만약 오늘 언니가 내게 물었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줬을까.


나야말로 인간관계를 최소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인간에게는 대체 얼마만큼의 인간관계가 필요한것인가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는 상황이었다.

꽤 오랜기간 ENFP였던 나는 최근 INFP가 되었고 이후로 <혼자있어도 괜찮다> 는 면죄부라도 얻은 것처럼 더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갖기 시작했다. 인프피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아니니까 집에서 혼자 좋아하는 취미활동 하면서 쉬는게 충전이야, 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애시당초 나라는 사람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에너지를 뺏기는 스타일로, 사람들의 요청에 거절을 할수없어서(실망시키고 싶지않아서) 그자리에서 너무도 흔쾌히 약속을 잡지만, 약속날이 다가오기 전부터 꽤 큰 부담감을 갖는 유형의 사람이다. 전형적인 인프피가 이런 스탈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유형이다.


친구도 가족도 자주 만나지 않는데 유일하게 회사에서 일로 만나는 사람들이나, 항상 함께하는 팀원들에게는 그런 피로감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매일 당연히 만나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지해서 인지, 사회생활에서는 그래야 한다고 단련을 해서인건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이래이래야한다, 는 규율에 잘 단련되는 스타일도 아니긴 하다만...


약속을 자주 어기면서 왜 그렇게 약속은 덥석 덥석 잡는지.

20대, 30대, 사실은 40대인 지금까지도

<너만 안깨면 이 약속은 깨질일이 없어> 라는 류의 말을 많이 듣는 편이고 사실 이러한 이미지가 썩 달갑지는 않지만 #나도어쩔수없는인프피인가봐 하며 이제는 자책감과 죄책감을 어느정도 내려놓으려고 노력한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외롭다는 둘째언니는 그런말을 남겼다.

남편이 있어도 외롭지만 밤에는 퇴근해서 돌아오는 남편이 있다는게 굉장한 안정감을 주더라고.

그러니 너를 위해 배우자 기도를 시작하겠다고.

기도를 해주신다면야 감사하지만

주님이 언제 응답을 주실지는......


#오늘의끄적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친애하는  반려식물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