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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May 15. 2022

갱년기 부부와 함께한 주말


나에게는 4명의 언니가 있다.

부모님은 그렇게나 아들을 바랐지만 결국 딸만 다섯을 두었고, 나는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딸로 태어났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끝으로 장장 10년간 이어졌던 무모한 도전을 끝냈다.


언니들 중에서 둘째언니에게만 자식이 없다.

나에게는 남편이 없고.

그래서 어쩌다 우리는 가족안의 또다른 가족이 되었다. 어버이날, 어린이날, 형부생일, 언니 생일 등 웬만한 기념일을 그부부와 함께 보내고 있다. 그 부부는 나를 그들의 맏딸(....)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특별한 날에 어김없이 나를 초대한다.  둘째딸이 있는것도 아닌데, 왜 맏딸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에게는 그 부부를 포함해서 부모 역할을 해주는 세그룹이 있다.

날 낳아준 78세 엄마와, 내가 태어난 이래 주양육자 역할을 해준 52살 큰언니와, 51살+ 50세 둘째언니 부부.

(그 부모그룹이 내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다른날 다시 한번 다뤄보기로 하고)


대부분의 주말은 엄마+큰언니와 양평집 마당에서 보내고, 어쩌다 한두번씩 서울에 있는 주말은 둘째언니 부부와 시간을 보낸다. 혼자 보내는 주말은 1년에 몇주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점심즈음 둘째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콩나물 국밥으로 점심을 먹자'고.  

 

괜찮다면 사양해도 될까, 하고 정중히 거절했는데 30분뒤 다시 전화가 왔다.

'새로생긴 커피숍인데 커피한잔 하자', 고.   


또 싫다고 거절하고나니 마음이 무거워서 텔레그램을 보냈다. 거절을 잘 하지만, 그렇다고 거절이 쉬운 건 아니다. '커피 생각은 없지만 어차피 운동해야하니 배드민턴 장으로 가겠다'고.      


요즘 언니가 갱년기에 접어들었는데, 형부도 (따라서) 갱년기라고 했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은 갱년기 부부와 시간을 보내야할 것 같아서 꼭 필요한 짐만 간단히 주섬주섬 챙겨 (아이패드, 책한권, 핸드폰, 지갑)서 씻지도 않고 바로 언니네 집앞 배드민턴 장으로 갔다.



먼저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언니 부부를 발견했다. 


도착하자마자 언니는 피자 배 배드민턴 경기를 하자고 했다. 

1:1로 1세트에 10점 내기 경기를 했는데 형부가 3등, 내가 2등, 언니가 1등을 차지했다.

(피자는 결국 1등인 언니가 사줬다 ㅎ)


운동이라고 할것도 없이, 반짝, 배드민턴을 치고 땀도 나고 숨도차서 나는 한켠에 앉아 부부의 경기를 지켜보며 책을 읽었다. 오늘은 <한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다 끝내는게 목표였는데....


바람이 부는 날엔, 야외 배드민턴 장에서, 제대로 배드민턴을 칠수가 없다.

30분 정도 쳤을까. 바람이 심해져서 우리는 결국 다시 집으로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매일 집에서 일하는 언니는 집에 가기 싫다고 했고

매일 회사에서 자정까지 일하는 형부는 주말엔 집에 있고 싶다고했는데



딱히 갈곳도 마땅찮아서, 셋이 다시 집에 들어왔다.



어제 샴페인 샀는데, 한잔 할래?




오늘은 진짜로 진짜로 정말로 정말로 단백질 쉐이크로 리셋하려고 했는데, 또다시 샴페인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아보카도에 비스킷에 치즈를 시작으로 요즘 언니 부부가 즐겨먹는 잭슨피자로 이른 저녁을 먹고 또 스파게티도 먹고 갓배추가 맛있게 익었다는 이유로 진라면까지 끓여서 배불리 저녁을 먹고말았다.


이번주는 수요일 막걸리.  

목요일 소맥 한두잔.  

토요일 하이볼과 사케.  

일요일 샴페인까지.  

주 4회 술을 마셨다.


커피는 칼같이 거절하면서, 왜 술은 거절하지 못하는지.

취할 정도로 마신적은 단한번도 없지만(음, 서른두살 이후로;;;;)

커피만큼 술도 딱잘라 거절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왜냐면, 음식마다 궁합이 맞는 술이 있어서 그렇다. 

반주........는 진짜 포기가 잘 안된다.

바람부는날 맛있는 음식을 두고, 반주를 포기한다는 건.....



어쨌거나 오늘의 별다른 소득없이 하루가 갔다.

일주일간 묵혀둔 집안 청소도 안했고, 오늘 꼭 읽고싶었던 책도 못읽고, 걸으려고 했던 양재천도 걷지못한채 하루가 다 갔다. 

갱년기 부부에게 오늘 하루 내가 뭐 그리 큰 도움이 된것 같지도 않고.


이렇게 주일을 끝낸다고 생각하니 뭔가 너무 찜찜하다.

앞으로 남은 주일 네다섯시간. 

뭔가 좀 알차게 보내고 싶은데.


청소 한시간.

독서 한시간.

운동 한시간.

드라마 한두시간. 요렇게! 


자 그럼 청소부타 해볼까나. bgm은 에픽하이 모음곡!! 

https://www.youtube.com/watch?v=_tykp0-8BDw&t=30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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