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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May 18. 2022

월요일을 지나 아직도 수요일






월요일은  원래 야근하는 날이지만  

화수목금에 비해 또 유독 피곤한 요일이기도 해서, 조금 일찍 일을 마치고 집에왔다.

도착하니 밤 열시 반.  때 맞춰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웬일이래. 나도 너 생각하고 있었는데. 텔레파시가 통했네. 나도 방금 집 도착. 집으로 와"


가정의 달이라, 1년중 제일 바쁜 한달을 보내고 있는 꽃집친구에게 한달 내내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다.

 살기 바쁘다고 가보지 못한 죄책감도 있었고. 그렇게 마음쓰이면 그냥 한번 들러보면 되는데 주중에는 매일야근하고 금요일엔 양평엘 가니까, 도통 시간이 나질않았다. 오후반차라도 내고 가봐야하는데 반차를 내더라도 쉬는게 쉬는게 아니라 (어차피 고객사+후보자 전화 받느라 꽃집에서도 전화통을 붙들고 있어야해서)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서 부채의식과 죄책감을 쌓아가고 있는데 그런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마냥 해맑게 어젯밤 갑자기 친구가 찾아왔다.


서른초반.

느즈막이 만난 이 친구와는 마치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질풍노도 시기를 겪어온 갑빠만큼 가까워지게됐다.

십년째, 참 한결같다.


집에 온 그녀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둘다 체중조절 중이라…


평소처럼 자정에 처갓집 양념치킨을 시킨다거나, 낙곱새를 주문한다거나, 집앞 뚜스레스쥬르스에서 (제대한 고향청년이 그시절 새로생긴 빵집, 뜨레쥬르를 저렇게 발음했다는 에피소드를 들은 그 언젠가부터는 친한친구들과 있을땐 꼭 뚜스레스쥬르스라고 부른다, 뜨레쥬르 빵집을! ㅎ) 햇님언니 덕에 (사실 언니 아니다, 우리랑 동갑이다...) 사랑에 빠진 클래식 롤케익에 우유를 한가득 마신다거나, 하는 폭식은 하지 못했다.


겨우 일주일 못봤는데, 한두달을 못본사람처럼 수다를 떨다가, 배곯은 채 침대로 가서 잠을 청했다. 친구가 계속 뒤척였다. 배가 고프다고. 어지럽다고. 타이레놀 좀 사다달라고.

예전에는 그런 술수(ㅋ)에 걸려들었었다. 타이레놀 사러 나갔다가 편의점에서 친구가 좋아하는 과자 (양파링)도 사오고, 친구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도 사다줬는데. 이제는 눈치 백단이다. 어지럽다고, 타이레놀 사다 달라는 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저 아이는 단지 과자와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은거다. 억지로 달래서 재웠는데 결국 새벽에 이 아이는 배고프다며 나를 깨웠다.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하며, 키위 몇개로 위장을 달래고, 친구는 다시 침대로 복귀했다. 그모습이 영 안쓰러워서 단 하나 남은 단백질 바를 건넸더니 내 침대위에서 부스러기를 휘날리며 세상 맛있게 먹어치웠다. 단백질바나 칼로리바란스라도 좀 쟁여놓아야지, 먹을게 아무것도 없는 냉장고가 그렇게 또 미안했다.


배고픈 밤을 지나 맞이한 화요일,

다음날 아침, 내게는 꽤 중요했던 고객사 미팅이 있었다. 논현동 어딘가에서.

길치인지라 약속보다 한시간 반 서둘러 집을 나서려는데, 친구가 화요일엔 꽃시장을 안들려도 된다며 목적지까지 태워다주었다.

친구 덕분에 전혀 헤매지않고 너무도 일찍 도착한 고객사 빌딩 아래 투썸에서, 어젯밤 내내 주린 배를 부여잡고 괴로워한 친구를 위해 샌드위치+커피세트를 사주었다.


"미팅 몇시에 끝나? 너 기다렸다가 데꼬 갈까?"


하마터면, 그러자, 할뻔했다.

얘랑 있으면 내가 정신줄을 잘 붙잡아야 한다.

우리팀 막내와 점약도 있고, 오후에도 두시, 네시 예정된 con call등 할일이 태산이었다.




그런데 햇살이 따사로운 오전에,

이토록 한적한 커피숍에 '얘'랑 앉아있노라니 오늘 하루 반차내고 제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내려면야 얼마든지 낼 수 있는 반차지만, 오늘내 캘린더에 쌓인 스케줄은 <그러면 안된다>도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었다.



"친구야 우리 빨리 헤어지자. 사고친다, 우리 또.

난 여행가면...여행가는 건 좋은데 회사로 돌아오는게 참 싫다.

나 지난주에 진짜 좋았거든, 오랜만에 갑빠애들이랑 공연도 보고, 주말에 돌아도 다녀보고.  

이렇게 그애들이나 너나...내 친구들 만나는 건 좋은데 이렇게 놀다보면 일하러 들어가는 게 참 싫고 그렇다. 그래서 나는 그냥 외부로 나오면 안될거 같애....주구장창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일할땐 딴생각이 안나니까"



과연 그게 내가 생각했던 성공하는 삶은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며, 성과를 채우기 위해, 팀의 매출을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는걸까.

어차피 될놈될 안될안인데.


친구야 난 낯선 건물에 오면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겁이나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말했는데 친구가, 엘리베이터 타는 것 까지 지켜봐주고 떠났다.

#그렇게바보가되어간다

친구들은 되도록이면 퇴직을 늦게하라고했다. 회사 밖에선 바보같으니까......회사에 있으라는 의미다;;



다행히 이날 미팅은 친구 덕에 잘 마무리했다.

그간 만나봤던 어떤 헤드헌터보다 프로페셔널하다고, 고객사 본부장님이 말씀주셨다.

너무 솔직하게 고객사가 처한 상황+ 마켓 상황을 들려드린 것 같아 걱정했는데,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라고 생각했다.


친구야 고맙다. 덕분이다. 덕분에 헤매지 않고, 엘리베이터도 잘 타고 고객사 미팅 잘 다녀왔오.

다음엔 다이어트 접어두고 너의 최애치킨 #처갓집 양념통닭 먹자꾸나!


금요일같은 수요일

어제는 팀 막내가 집에 들려 자고 갔다.

집에 잔뜩있는 골드키위로 (어제 친구가 먹었던 그 키위다, 그 키위가 배고픈 사람 여럿 살렸다, 어제오늘) 허기를 달래고 (이 아이도 현재 체중조절중이다) 각자 시간을 보내고,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잠이 들었는데 새벽 5시에 이 아이 알람이 울렸다. 새벽기상 첼린지가 아니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시간 5시. 우리팀 막내는 몇년간 매일을 주말을 제외하고 이 시간에 일어나서 회사를 나간다고 했다. 리스펙, 이 절로 되는 순간이다. 17살이나 어린 친구지만, 배울게 많은 아이.


아침으로는, 고구마를 삶아줬다. 시간에 쫓겨서 조금 덜 삶아졌는데, 고맙게도 맛있게 먹어줬다.

그리고 시작한 수요일...금요일 같은 수요일이 시작되었다.

왜 이렇게 피곤한건지. 왜 아직도 금요일인건지.....


매주 수요일은 둘째 언니네 집에 방문해서 성경통독도하고, 한주간 읽기로 한 책도 나누고, 글쓰기도 연습하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공구 관련 아이템 미팅>을 한다.

100% 재택하는 언니는, 주1회 수요일에 내가 찾아가는 그 시간을 기다린다.

누군가를 기다릴때 그 마음을 아는지라 기다리게 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일을 서둘러 마치고 언니네로 갔다. 언니+형부가 좋아하는 파니니를 두개 사서.




왼쪽 사진은 삼성동 파니니 맛집이다. 언니+형부의 파니니를 기다리며 한컷 찍어봤다.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 종종 가는데.....


가운데 사진, 신발은, 넷째언니 부탁으로 밑창수선 맡긴 건데 5/6일에 찾아가라는 메세지를 보냈다는데 오늘에서야 인지하고 간신히 찾아왔다. 금요일엔 양평으로 배달해야하는데…

애니웨이 넷째언니가 요청한 미션 클리어!

(나름 비싼 신발 잃어버릴세라,  지하철에 두고 내릴세라, 수선집에서 남의 신발과 바뀔세라...일어나지않을 일이지만 일어날 수도 있는 확률때문에 혼자 머리가 좀 아팠는데 무사히 심부름 끝!냈다. 잃어버리면 걱정이 되는 가방, 신발, 시계는 소유해도 걱정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른쪽 사진은, 언니네 집에 가는길에 새로생긴 커피숍 외관에 비치된 화분이 예뻐서 찍어봤다.꽃집친구에게 시안겸 참고하라고.

나중에 집을 짓게 되면 꼭 넝쿨장미를 심을거다.

장미가 덩굴덩굴 무리지어 있는 곳은 그게 어디든 맘이 설렌다. 내집 담벼락보면서 설레고 싶으니까, 꼭 담장엔 장미를 심을거다.



왜 때문에 내일은 목요일인가. 금요일이면 뭐가 어때서!


인스타 메인계정을 접었다.

쓸데없이 시간이 많이 소모되는거 같아서.

글을 계속 서너줄로 짧게만 쓰게 되는 것 같아서.

자연스레, 오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대신 블로그에 이런저런 생각을 기록해두기로 했다. 내가 제일 잘하는게 기록이니까.


이 컵은, 몇년전 우리회사로 인턴십을 다녀갔던 인턴 J가 떠나면서 사준 선물인데, 귀여운 강아지때문에도 귀여운 그 아이때문에도 내가 유독 자주 쓰는 컵이다.


이 컵에, 허브차를 마실때,

커피를 마시거나 물을 마실때

마다

J를 생각한다.

감사하다며 취업 후 서너번 정도 회사로 찾아와준 고마운 아이.


선물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온다.

나를 위해 이 컵을 골랐을 J에게 몇년이 훌쩍 지난 오늘 밤, 새삼 감사한 마음을 전해본다.


우리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떠나는 날 내게 주었던 손편지와 이 컵에 담아준 마음 참 잘 받았다고.

아직도 너무 너무 잘 쓰고 있고, 심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컵이 되었다고.


선물을 하려거든,

나도 그렇게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선물했다> 는 생색이나 요식행위가 아니라.



오늘은 여기까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제와 다른 세가지를 매일매일 발견해보라고 강신주가 말했는데

어제와 다른 오늘의 세가지는 뭐였을까?


시원해진 바람......같은 층 동료의 따뜻한 눈빛.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못찾겠다 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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