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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May 22. 2022

'올 겨울엔 아무나와 사랑하겠어요'가 유행은 아니지만



토요일 오전 6시 반에 언니 알람이 울렸다.

나랑 딱 10살 차이 나는, 52세 큰언니는 최근, 별정직 공무원을 그만두고 작은 가게 하나를 운영하면서 아트딜러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그 사이 틈틈이 <우리 가족 건강 전도사>가 되어 15명 전체 가족 중 11명에게 유사나 단백질쉐이크와 비타민을 강권했다. 처음엔 강권했지만, 지금은 우리들 모두 자발적으로 먹고 있기는 하다. 큰언니는 단백질 쉐이크를 마시진 4개월만에 9kg 을 감량했고, 넷째형부는 6개월간 식이요법을 해도 수치의 변화가 없던 콜레스테롤이 단 한달만에 정상수치로 돌아왔다. 단백질 쉐이크를 마시기 전에는 토탈 콜레스테롤 수치가 269h였는데 207h 로 떨어졌다. 나쁜 콜레스테롤이라 불리는 LDL (저밀도 콜레스테롤은 혈과 벽 등에 달라붙어서 플라크글 만든다) 수치도 193.4였는데 한달간 단백질과 화이버지를 마시고 난 후 133.4로, 정상범주안으로 들어왔다.


큰언니가 유사나 제품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할때 옆에서 건성건성 큰 관심없이 책자를 봤는데 <콜레스테롤은 배변으로만 배출된다>는 문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잡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애를쓰던 넷째언니 가족 (언니, 형부, 조카 모두 위험수위였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넷째언니네 집으로, 형부의 한달치 단백질+화이버지를 주문했다. 유사나 제품의 좋은점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어차피 네트워크 마케팅 제품이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는 언니를 설득하는 과정이 번거로울것 같고, 한달치 가격이 40~50만원대라 쉽게 결정할 것 같지 않아서 내마음대로 주문해버렸다. 결과는 뭐, 수치로 보시다시피!

이후 언니도 단백질과 화이버지를 먹게됐다. 심지어 그의 아들까지도.


나는, 딱히 그들에 비해 글로 남길만한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일단 아침 저녁으로 심했던 비염이 해결됐고 체중이 3kg 줄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니까. 올가을에 혹은 올 겨울에라도 목표했던 몸무게에 도달하게 되면, <나의 유사나 단백질 체험기> 한번 써보리라! ㅎㅎ




무튼, 6시 반에 일어난 언니는 세수도 하지 않은 나에게 자기 원피스를 억지로 입혀서는 7시에 만나기로 한 고객을 만나, 자기 가게로 데려와 앉혔다.

언니는 심각한 병이 하나 있다. 혼자선 움직이지 않으려는 참 희안한 병.


꼭두새벽부터 영문도 모르고 끌려왔지만 뭐하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 될 것 같아 2주일치 내가 먹을 단백질+비타민을 담았다. (하나씩 먹기좋게 패키징해두면 외부에서도 끼니해결이 간편하다) 그러는 사이, 9시가 훌쩍 지났고, 아침을 먹으러 큰형부가 언니 가게로 찾아왔다. 큰형부의 아침도 단백질 쉐이크 한컵~


언니가 바빠서 가게에 있는 화분들이 제각각 고초를 겪고 있었다. 게중 쌩쌩한 애들 몇몇만 가게에 두고 집중케어가 필요한 애들을 추려서 집에 데려왔다.





단백질 쉐이크로 주말 아침을 해결하기엔 너무도 아쉬운 법. 형부는 집에 가는 나를 따라와 라면 하나를 끓여달라고 했다. 라면에, 떡갈비까지 구워서 상추쌈에 밥한상을 뚝딱 차려드렸다. 엄마에게는 엄마가 좋아하는 투움파 파스타를 끓여드렸다. 근데 트러플 향이 가미된거라, 나는 좀 별로였다. 트러플 향이 진하게 들어간 피자, 파스타, 리조또, 치킨 모두 내 취향이 아니다. 엄마도 별로였는지 조금 드시다 “심바갖다줘라”라고 말씀하셔서 레오랑 심바, 탄이에게 나눠주었다. 엄마는 파스타를 드셨다는 사실을 지우고 떡갈비에 밥을 맛있게 드셨다 ㅋㅋ



점심에는 작고 귀여운 엄마의 심심풀이 텃밭에 물을 주었다.


엄마와 아빠가 뼛골 으스러지게 농사를 해서 우리 딸 다섯을 대학에 보내줬다.

여름이면 고추심고, 가을이면 타작하고, 어린나이에도 힘에 부칠정도로 엄마와 아빠 일을 도왔다. <나의 해방일지> 염미정과 염창희 남매의 주말이 성장기 나의 주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다른것이 있다면 우리 엄마는 되도록이면 딸들 아깝다고 밭에는 오지도 못하게 했다는 것.


가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인들이

<나중에 회사 그만두면 시골가서 농사나 짓지뭐>하고 말할때가 있는데 그냥 답답한 현실에 농담삼아 하는 말인데도 나는 그때마다 굳이 굳이 면박을 준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이들이 하는 말이라고. 농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라고.


어쨌거나 몇년전부터 엄마가 소일거리 삼아 뒷밭에 심어놓는 부추, 파, 고추, 상추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예전 규모에 비하면 소꿉놀이 수준이다. 그런데도 78세 엄마는 아침나절 잠깐잠깐 텃밭을 가꾸는 것도 쉽지는 않다고 했다. 다리도 저리고, 팔도 아프다고.


한여름엔 밭고랑마다 풀이 무섭게 자랄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뽑아도 뽑아도 금세 쑥쑥크는 풀들.




수양 밪꽃, 자색 안개나무 그리고 올리브.



맨 왼쪽 사진의 나무가 수양벚꽃이다.

수양 벚꽃이 저렇게나 무성해질줄이야!

작년에 큰언니랑 비를 맞고 심었을 땐 앙상한 나뭇가지에 불과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튼튼하게 잎이 돋아서 마당 한켠에서 자태를 뽐낸다.

뭐든지 해보지 않으면 알수없는 게 사람의 일이라더니. 겨우 나무 두그루를 심으면서, 나무 심는 분들의 일이 얼마나 고된지 그때 처음 알았다.

뒷마당에 나란히 붙어있는 옆집 할머니집과 우리집 마당에 테두리를 만들고자 작년에 거금을 들여 측백나무 샀는데 그때 나무 심어주는 아저씨에게 150만원을 드렸었다. 그땐 그 돈이 엄청나게 비싸다고 아저씨는 나무 심고 노났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저 나무 두그루를 심고 기진맥진 쓰러진 언니와 나는 그 돈이 결코 큰 돈이 아님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가운데 사진이 자색 안개나무다.

겨울엔 앙상하더니 올여름부터 너무도 사랑스럽게 마당 구석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색드로 안개처럼 몽글몽글하게.


세번째, 맨 오른쪽 사진이 주말레 새로 심은 올리브나무다. 이탈리아 토분 <베르그>에 심었다. 베르그, 는 다양한 토분 중 요즘 나의 최애 팟인데 팟의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고 이름도 다르다. 헬레나, 엘레자베스, 데이지, 코펜하겐, 시모나. 사진속 팟은 헬레나다.


헬레나 팟에 심었던 이전 식물이 죽어서, 올리브를 옮겨심었는데 아 아이는 오늘 아침 넷째언니 집으로 분양되었다. 그곳에서도 잘 적응하길!




플라밍고와 수양느릅나무 2





오후에는 마당 전등을 교체했다. 넷째형부가.


넷째 형부는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다.

시합에 나가서 금도 따오고 은도 따오고 하는데, 주중에도 주말에도 자주 테니스를 치며 시간을 보내느라 언니에게 잔소리를 들을때가 많다. 일하랴 테니스치랴 언니눈치보랴 바쁜 형부에게 여름은 특히 더더더더 신경쓸게 많은 계절이다. 형부도 이제 더이상 어린 나이가 아닌데, (올해 49세)  


잔디 깎아달라
화장실 뚫어달라
개목줄이 끊어졌다
개가 아프다
고춧대 세워라
예초기로 집주변 풀좀 깎아라
나무 잘라달라
 마당에 등 주광색에서 전등색으로 바꿔달라
보일러가 터졌다
불피워서 고기구워달라
불멍할 나무가 없으니 나무좀 잘라놔라
수도관이 얼었다
전기가 잘 연결됐는지 봐달라.
베란다 물이 샌다  


갖가지 이유로 집에 불려온다. 그러고보니 지난주에도 개집에 타프를 쳐준다고 또 한두시간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해주고 갔는데....이렇게 글로 하나둘 정리하다보니 단백질+화이버지 50만원치 사드린게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전생에 우리집 머슴이었는지 진짜 분야를 가리지않고 전천후다. 밭일, 전기공사, 마당일, 개를 돌보는  까지  조금씩 손볼줄 안다.


형부는 나만 보면 막내 동서 언제들어오냐고 묻는다. 아마도 형부가 지금 하고 있는 우리집 일들  수백가지  몇가지는 내짝이  사람에게 넘기려는 심산이겠지만 나도 나의 그가 나타나 형부의 일을 좀덜어주기를 바라지만 그게 참…


가족중에서 유일하게 넷째형부가 두번 정도 소개팅을 주선해줬다. 막내동서에게 일을 넘기려는 수작에서는 아니겠지만....뭐, 결국 이런저런 사정으로 두번  흐지부지 잘 안됐지만 

형부를 위해서라도 올겨울엔 반드시!!


마당의 등이 따뜻한 빛으로 바뀌어서 좋다. 주광색 등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에필로그

일요일 이야기

예배 가기 전에 큰언니랑 넷째언니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큰언니가 내게 사준 옷이, 내게 어울린다는 의견과 아니니 당장 옷을 바꾸라는 의견 사이에서. 엄마와 큰언니는 어울리니 그냥 입으라고 했고, 넷째언니는 분명히 안입을 옷을 비싸게 왜 주고 샀냐며 당장 바꾸라고 했다. 큰언니랑 나랑은 옷가게 사장님과의 관계때문에 바꿔달라는 말을 잘 못하는 편인데, 넷째언니 입장에선 그게 좀 답답했던 것 같다. 무튼, 소란끝에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옷은 아직 우리집에 얌전히 있…)


서울에 올라와서 집앞 박승철 헤어숍에 갔다.

어제 큰언니 따라 급하게 자르고 온 머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애쉬+카키 컬러 섞어서 염색을 하고 (내 생애 첫 새치염색을 시작했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 그러나 커트는 너무 짧았고 컬러는 너무 어두웠다. 그래도 다행인건 머리는 3주면 길고, 컬러도 삼개월 후에 바꾸면 되니까 20대때처럼 머리 망했다고 울고불고 하지는 않겠다!!)


이번주도 별일없이 지나갔다.

조금 피곤한 것 외에.

빨래가 끝나면 석촌호수를 달리던지, 걷던지해야겠다. 주말에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몸이 무겁고 찌뿌듯하다. 그날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걸어야지, 했는데 그상태 그대로 자고말았다. 눈떠보니 이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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