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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2. 2020

멀리가지마세요.

라디오천국

어느날 라디오 천국에 사연이 내 소개됐다. 


강한발목님. 정말, 드럽게 반가워요, 엄청나게 반갑네요. 최상급의 표현입니다, 제게 있어선.
 "드럽게 사랑해" 이런 표현 최고지 않아요? 11년이 지났네요, 우리사이에.
알란파슨스프로젝트 올드&와이즈 신청해주셨어요. 
이 곡 남겨드리면서 다시 돌아올께요.
멀리가지마세요.


유년시절 (1990)

내게 각인된 라디오 스타가 이문세. 신승훈. 푸른하늘. 윤종신. 신해철이었다면, 사춘기를 지날 무렵 나의 감수성의 깊이를 더해준 라디오스타는 유희열, 김장훈, 이적 세사람이었다. 처음 유희열의 음악도시를 접하게 된 건 8살때 처음만나 초3때부터 줄곧(그러니까 사소한 오해로 다툰후 말을 하고 지내지 않은 중학생 시절을 제외하고)내 베프 때문이었다. 그녀를 통해 처음 유희열을 알았고 그와 함께 <익숙한 그집앞>이라는 책을 볼 때는 손의 지문이 남지 않기 위해 하얀 면장갑 혹은 위생장갑을 끼고 봐야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그나저나 혈님은 그녀가 보낸 천마리의 학을 기억할까? 그당시엔 왜그렇게도 학을 접어 보냈었는지..;;)


그리고 1999년 세기말 (1999)

라디오 전파를 통해 일억만 음도시민에게 내 사연을 내가 직접 읽게 된 역사적 사건이 발발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오랜 설득끝에 음도 작가가 내 사연을 뽑아주었다. 당시 내 사연의 제목은 ‘딸보다 더 속썩이는 사고뭉치 우리 엄마’였고 흔히들 딸들이 엄마 속을 썩이는데 이 케이스는 특이하다며 두어번의 퇴자 끝에 2부 끝나고 3부 오프닝에 내 사연을 읽게 해주었다(브런치 작가도 2번이나 떨어졌었는데, 단번에 뭔가를 이루는 타입이 아닌 모양이다. 앞으로도 뭐가됐든 뭘하든 삼세번은 도전해보는걸로!)

당시 음악도시에서 선물로 보내준 시계를 꽤 오래 가보처럼 잘 모셔놓았었는데 몇번의 이사 끝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흐른 11년이라는 시간, 아니 ‘세월’. 졸업을 하고 대학을 가게 되면서 나는 잃어버린 시계처럼 자연스럽게 라디오도, 음도도 그리고 유희열마저 잊고 바쁘게 지냈다. 

그렇게 아주 잠시 한눈을 팔았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돌이켜보니 11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밤 12시 심야 라디오시간에 혈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그를 통해 또다시 잃어버린 감수성과 웃음을 되찾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데는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폰’이 혁혁한 공을 했다. 아이폰 팟캐스트를 통해 지난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된 것. 몇년치 라천을 몰아 듣기 시작하면서 나의 하루는 무언가 모를 만족감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음도와 라천사이 (2010)

2008년 12월 크리스마스 이브 시즌부터 듣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2009년 1월 중순 방송분을 접어들었다. 그리고 아이폰이 아닌 라디오를 통해 2010년 10월 현재의 라천을 듣는다. 신기한 것은 2008년 말 그리고 2009년 초 2010년 10월을 넘나들며 듣는 그의 3년 사이에는 아주 조금의 변화도 없을 정도로 그대로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그대로일까 싶을 정도로의, 그대로. 불과 3년이라는 시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내가 라디오를 듣지 않는 동안 그러니까 <음도에서 라천사이>에는 10년이라는 공백이 있었지만 2010년 10월 라천을 들으며 나는 1999년 음도의 혈님을 느낀다. 놀랍게도 그는 서른살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마흔이 되어 있었다. 변태적 감수성과 예의 그 꺽꺽거리며 숨넘어갈듯 웃는 웃음소리도 변하지 않았고, 좋아하는 지인들 놀려대며 즐거워하는 모습도 그대로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게 아내와 아이가 생겨 그만의 새로운 가족을 이뤘다는 것뿐. 

어쨌거나 요즘 나는 길을 가거나 혼자 있을때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 싶을 정도로 큰 웃음이 터질 때가 많다. 

잊고있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다시 찾은 느낌이다. 다시…………그의 라디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사연을 남기고 그의 분신같은 라천 홈페이지를 기웃거리는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굳이 11년전 인연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그가 <강한발목>혹은 <히로>라는 당시 아이드로 나를 기억해준다면 좋겠는데, 수많은 청취자중 한 사람인 나를, 그가 기억해줄까? 역시 일억만 라천민들을 거느리는 그에게 무리한 요구겠지? (당시 사연을 읽어주던 혈님이 말했다. 기억한다니까요~라고) 그래도 그때, 그런 사연을 보내준 음도시민이 11년 후 다시 라천민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이라도 알아준다면, 그래서 여전히 그의 통치하에 있다는 거 알아준다면… 좋겠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2010년에도 그는 여전히 나의 라디오스타다.

_2010년 10월 30일 토요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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