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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Oct 29. 2022

우리는 왜 시를 읽어야 하는가?

어느날 정현종 시인의 시집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를 읽다가


시를 왜 읽어야 하는가?


시도 다른 예술처럼 우리로 하여금 삶을 견디게 한다.

괴테는 '진정한 시는 현세의 복음으로서 내적인 명랑성과 외적인 즐거움을 통하여 우리를 짓누르는 지상의 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인이 하는 일은 우리 삶을 고양시키는 것. 

그렇다면 시가 우리를 짓누르는 지상의 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준다든지, 견디기 힘든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시인이 그런 좋은 시를 써야한다. 

정현종 시인에 의하면 시인이 그런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한 예술가의 체질, 개성, 재능의 형성에는 그의 어린시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어린시절의 자연체험! 시 작품이 갖고있는 생명력은 오직 자연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란다. 시인의 생명력 혹은 시의 생명력은 그가 (시인) 자연과 얼마나 접촉했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정현종 시인이 만져보고 손에 쥐어보고 잡아먹은 생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메뚜기, 가재, 방게, 방아깨비, 붕어, 가물치, 메기, 쏘가리, 미꾸라지, 모래무지 둥의 물고기, 민물 게와 민물조개류, 딸기, 까마중, 오디, 버찌, 칡, 메 등의 열매와 식물들. 

나에게도 별반 낯설지 않은 생물들이다. 어찌나 다행인지! 지금 당장 내가 위대한 시인이 되겠다는 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예술적 활동도 전혀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만 먹는다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있는 어린시절의 자연체험을 갖고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편애하는 밑줄

시적 이미지는 우리를 가벼웁게 하고 들어 올리고 우리를 상승시킨다. 

우리가 겪어봐서 알듯이 몸도 마음도 무거우면 도약은 커녕 한발짝 나가는 것도 버겁다. 우리의 마음이 가벼워야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을 감당/극복 할 수 있다. 그렇게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을 바슐라르는 공기의 훈련 혹은 공기의 혁명이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일들은 바로  시적 이미지가 하는 일이다.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정현종 시집 100P)






예술이나 시가 우리를 짓누르는 지상의 짐에서 해방한다든지 삶을 견디게 해준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더 쉽게 말하면 예술을 통해 우리가 기분이 좋아지고 따라서 마음이 가벼워진며 힘을 얻는 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상태나 움직임을 '공기의 혁명', '수직적 축'이라고 하고 니체는 그러한 무거움을 정복하는 자를 '위버맨슈'라고 헸다. (위버맨슈는 위버맨슈일뿐! 초인이라는 번역은 완전치 못하다고 정현종 시인은 생각했다)


어린시절의 기억과 경험이라는 건 어떤 촉매나 자극으로 항상 점화될 수 있는 것이고, 시적발화도 그런 촉매중 하나이다.


아직 동도 트기 전 어두운 숲을 걸어 들어갔는데. 얼마 되지않아 동이 트기 시작했고 그러자 숲의 초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순간 '아 이 세계는 매일 창조되고 있구나' 하는 느낌에 싸였다. 이 세상이 먼 옛날에 한번 창조되고 끝난게 아니라 뜨는 태양과 함께, 여명과 함께 매일 새로 창조되고 있구나하는 느낌에 싸였다. 마악 동이 트는 순간. 마악 초록이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순간 거기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천지창조다.  까마득한 옛날에 있었다는 천지창조를 여기 숲에서 경험하게 된다. 모든 경이가 그렇겠지만 타이밍이 중요하다. (타이밍을 운명이라고 번역하기 도한다) 해가 떠오른 뒤에 날이 다 밝은 뒤에 숲속에 있어봤자 세계가 새로 태어나는 느낌, 천지가 마악 창조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 어렵다.


_정현종 시인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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