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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Nov 23. 2022

나도 이제서야 알았다라는 거예요

철학 인플루언서가 쓴 에세이라길래 궁금해져서


내 이름을 건 <에세이>를 내는 게 꿈이라서 인지는 몰라도 에세이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사서 읽어봐야 직성이 풀리는데 게중에 두고두고 봐야지싶어서 소장하는 책은 얼마없고 대부분은 알라딘 중고서적 팔기 서비스를 통해 되판다. 예전엔 언젠가 하게될 <마을도서관> 때문에 책을 모았었는데 몇년전부터는 가급적 책을 정리한다. 이사다닐때마다 힘들기도 했고 좁은 집에 늘 방 하나엔 책과 책먼지가 쌓여서 내린 결단이다.


정말 재밌을 것 같아서 산 책이 세상 지루하고 재미없을때만큼 속상할때가 없는데, 그럼에도 보석같은 책을 발견할때 느끼는 희열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기에 <내맘에 꽂히는 보물 에세이>를 찾아나서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6년전엔가 제주도 <소심한 책방>에서 발견한 LGBT 성장소설 '여섯'은 그렇게 발견한 보석같은 에세이다.


몇주전 퇴근길에 영풍문고엘 들렸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질풍노도를 지나는 이들에게 전하는 제갈건의 철학 에세이' 라는 부제가 달린 에세이였는데 표지를 보고 일단 깜짝놀랐다. 누가봐도 저자 ‘제갈건’스러운 남자얼굴이 표지전체를 장악하고 있는게 아닌가! 일단 샀다. 그리고 읽었는데.....


 와우! 누군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지 않았겠냐마는 저자의 성장기는 진짜 상상을 초월한다. 어머니의 맘고생이 이루다 말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싸움짱으로 이름을 날리며 온갖 싸움이란 싸움은 다 하고 돌아다니면서 응급실까지 드나들고 경찰서를 왔다갔다하면서, 자퇴를 하고 유학을 떠나지만 싱가폴에서도 퇴학을 당하고, 알콜중독이 되어 돌아온 제갈건의 사연을 읽는내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그 모든 게 이미 지나온 과거의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졸이며 읽었다. 혹시나 이보다 더 엇나가게 되거나, 더 끔찍한 일이 생기거나 혹여 불의의 사고로 누군가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불안했다. 결국 천만다행으로 누군가 죽음에 이르는 사건 같은건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유튜브 제갈건 채널을 찾아봤는데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했던 제갈건의 모습과는 조금 많이 달랐다.

이성에게는 인기가 없어서 육욕을 내려놓은지 오래고, 카톨릭 사제를 꿈꾸기도 했었다는 제갈건! 오랜세월 동네 짱으로 군림했다는 과거사때문인지 철학을 전공했다는 배경때문인지는 몰라도 막연히 강신주 스타일의 상남자를 상상했는데 실상 그렇지는 않았다. 궁금한 분들은 직접 검색해보시기를!


어쨌거나 이러쿵 저러쿵 이리저리 좌충우돌해온 제갈건의 운명을 바꿔놓은 상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장자>였다. 여기서 두가지 결론을 얻었다. 장자는 역시 위대하다는 것, 그리고 책을 읽어야 달이질 수 있다는 진리!


제갈건의 책을 덮자마자 급 장자가 읽고싶어졌다. 다음책은 장자로 모험을 떠나봐야겠다.


제니퍼의 편애하는 밑줄


공자는 논어 계씨 편에서 네가지 인간 유형을 제시한다.

첫째는 생지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 이런 부류는 극소수다.

둘째는 학지, 즉 배워서 아는 사람이다. 활자로부터 얻은 지식 등 간접 경험을 통한 유추로 깨닫는 사람이다. 흔히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고 인정받는 위인들이 바로 학지에 해당한다고 볼수 있겠다.

셋째는 곤이학지다. 곤경을 통해 배운다는 뜻이다. 직접적 경험으로 알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직접적 경험이란 대개 위험하거나 난처한 상황에서 비롯된다. 공자는 곤이학지에게도 학지나 생지의 단계로 나아갈 희망이 있다고 했다.

넷째는 곤이불학이다. 끊임없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무엇하나 배우고자 하지 않는, 냄새를 맡고 심지어는 찍어서 먹어 보고도 당최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는 자들이다. 공자는 이런 사람들을 평생 밑바닥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논어 위정편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아는 것이다, 라는 말이 나온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는 것은 안다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타인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일이다.


누군가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다음은 자신의 선택이다. 누군가를 밀어내려 할지, 닮아가려 할지 택해야 한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가 남을 사랑할 수는 없다. 남을 미워하는 이는 결국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동양철학에서는 인간의 성품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본성이라고  표현하는 본연지성, 기질이라고 말하는 기질지성이 그것이다. 기질지성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지만, 본연지성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을 알지 못한채 겉으로 발현된 기질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사람이 변할 수 있느니 없느니 운운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장자의 소요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거세이예지이불가권 거서ㅔ이비지이불가저. 온세상이 칭찬해도 더 신나지 않고, 온 세상이 비난한다해도 더 기죽지 않음을 의미한다.

장자는 소요유라는 말을 했다. 그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아서 아무런 구속이 없는 진정한 실존적 자유를 뜻한다. 이러한 자유의 경지에서 노니는 사람은 온 세상이 자기를 칭찬해도 썩 기뻐하지 않으며 온 세상이 자기를 비난해도 의기소침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존재의 이유를 타인의 판단이나 평가에서 찾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한다. 그들에게 남이 무어라 하는가의 문제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중국시대 조나라의 재상이었던 평원군은 자신의 빈객이었던 모수와의 대화에서 낭중지추의 비유를 든다. 현명하고 재능있는 자는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굳이 드러내 보이고자 하지 않아도 그끝이 자연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평원군과 동시대를 살았던 묵자 역시 '미녀수불출 인다구지'라 했다. 미녀는 굳이 밖에 나오지 않아도 그녀를 보기 위해 절로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뜻이다. 실력을 갖추면 명성은 자연히 따라오기 마련이다.

중요한것은 남이 바라는 내 모습이 아닌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다.


대학원 수료를 앞두고 있던 마지막 학기에 나는 우연히 내 삶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흔드는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다름아닌 장자였다. 그보다 먼저 노자를 만나기는했지만 노자의 철학은 당시의 나에게 장자만큼 신선한 충격을 주지 않았다.  


누구도 이길 필요가 없고 누구보다 높아지지 안아도 되는 세상은 예전에 알던 그것보다 한결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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