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s to Juliet (연뮤덕)
칭구야, 혹시 기억하려나?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한 블로그 글만 보고 내가 반했던 분의 아이디가 바로 ‘루나틱’이었는데 언젠가 한 번 그 사람을 만나 술잔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고. 두번이었지, 아마.
벤처에서 일했을 때 한 번, 지금 이 일을 역삼동에서 처음 시작했을 때 또 한 번.
그분 직업을 그때 알았는데, ** 홈쇼핑에서 MD 파트 팀장이라고 했었어. 르쿠르제 샘플 그릇을 선물로 주셨는데, 기억해? 그때 그분 아이디가 바로 이, 뮤지컬 제목과 같아.
루나틱이란 영어단어를 알았다면, 서로 매칭이 좀 되었을까? 하하.
루나틱은 정신이상자, 를 뜻하는 단어였고 뮤지컬은 미칠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기였어.
늘 그렇듯 많이 울었어.
미저리는 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공연을 보면서 펑펑 우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해.
당시 공연을 보면서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그러더라.
"이게 울 상황이냐?" 라고. 물론 그도 그럴 것이 단관온 고등학생애들은 엄청 재미있게 웃고 있었거든.
무거운 주제이니만큼 즐겁게 풀어내긴 했지만 난 왜 그렇게 슬펐는지 몰라.
너도 들어봐, 안 슬플 수가 있나.
먼저 <고독해> 아주머니 이야기
내내 자신을 구박하던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는데, 남편이 죽은 후에도 10년동안 이 고독해 아주머니를 괴롭게 하는거야.
그래도 정성껏 모셨는데 서방님인지 도련님인진 하는 작자가 시어머니가 가지고 있다는 잠실 땅문서를 찾아내지 않으면 병원비를 더 내지 않겠다고.
결국 치매걸린 자기 어머니가 그 땅문서를 기억해내지 못하자 그간 내주던 병원비도 끊고 형도 없이 혼자가된 형수에게 어머니를 남기고 도망가버린거지. 그렇게 시어머니를 집으로 옮겨와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우연히 그 잠실 땅문서를 발견하는데.... 그래서 고독해 아주머니는 고민하지. '힘들게 뒤치닫거리를 하는 내가 이 땅문서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면서. 누구나 그런 기대를 할 수 있잖아. 그런데 그 땅의 소유권이 이전된 것을 알고 고독해 아주머니는 크게 실망을 하게 돼. 그렇게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치매걸린 시어머니를 모셔야하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시어머님께 이런저런 화풀이를 하던 중, 집밖으로 나간 시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하는 사건이 생겨.
여기서 반전은, 그 장례식장에 온 변호사야. 죽은 시어머니가 그나마 있는 재산도 막돼먹은 자식들에게 뺏길세라 잠실 땅을 팔아서 그 현금 자산을 며느리 앞으로 남겨놓고 가신거야. 그동안 미안했다는 편지와 함께. 그 죄책감으로 결국 고독해 아주머니는 괴로움에 못이겨 정신병원까지 오게 돼.
두번째는, 여자를 후리던 나제비가 일생 일대 보호해주고 싶은 여자를 만난 이야기
어느날, 제비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게 돼. 근데 이 여자가 가난에 허덕이다 결국 텐프로로 끌려가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마주하는데, 이 제비가 멋지게 등장해서 사채빛을 갚아주고 결혼을 하자고해. 여차저차 해서 두사람이 이제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되는데 결혼식 당일에 그 여자가 나타나지 않는 거지. 그여자 역시 꽃뱀이었던거야. 날고 기던 제비가 꽃뱀에게 당한 흔한 사건일 수 있지만, 마음을 모두 줬던 이 나제비씨는 정신병원으로 오게 돼.
마지막은, '정상인'씨 이야기
돈 때문에 조카를 유괴하는 척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일이 꼬여서 조카가 자살하는 바람에 정신병원에 오게 된 이야기야. 정상인이라고 우기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과 미쳤다고 정신병원에 와 있지만, 심정적으로 그럴수밖에 없었음이 이해가는 사람들이 모인 정신병원에 관한 이야긴데 진정제나 주사위주치료보다 이야기 들어주고, 노래와 춤으로 환자들을 대하는 참으로 인간적인 병원에 대한 이야기야.
울지 않을 수 없었다구. 아마 너도, 눈물콧물 범벅이 됐을꺼야. 나중에 기회되면 다시 한번 같이 보자.
2017년 루나틱을 보고나서,
양평에서 2박 3일간의 길다면 길었던 주말 일정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 방청소를 하고...맥주 한잔 따라놓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내 감정을 진짜로 많이 풍부하게 해 준, 작품들. 언제 들어도 참 좋은 <베르테르> 넘버를 들으면 2003년 스물셋넷 그 언저리로 돌아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돈주앙>을 들을 때면 취재기자로 일했던 스물예닐곱 사회초년생 시절이 떠오른다. 하루는 참 길고, 또 어떨 땐 버티기 버거운 날이 많은데 일년은 왜 이리도 빠르게 흐르는 걸까?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들은 까마득해서인지 막연히 그리운데, 다가올 순간들은 왜 그렇게 또 겁이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