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리패밀리
어릴때부터 여름날 어스름한 저녁을 좋아했다.
한낮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앞마당에 노을이 잠시 머물러 있는 그 순간
뻐꾸끼가 울면
저너머 논에 물대고 휘파람 불며 자전거 타고
백마골을 넘어오는 아빠가 보인다.
어스름 저녁이 지나 밤이 어둑해지면
장에 나갔던 엄마가 돌아온다.
야채를 팔아 번 돈으로
딸다섯 도시락반찬거리랑 저녁밥상에 오를 생선을 사들고 온 엄마는
늘 그렇듯 저녁밥상을 준비하는 할머니에게 대거리를 한다.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면
할머니는 엄마를 피해 말을 간다.
어제는 용철네 오늘은 원산할머니네로.
엄마가 없던 우리 엄마
이제와 생각해보자면
어쩌면 엄마는 무사태평하고 사람 좋은 시어머니한테
고단한 하루에 대해 투정을 부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투정이 과한 날이 많아 쌈닭 같았지만, 돌이켜보면 딱히 못된 며느리라고는 할 수 없다.
끝까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억척스럽게 일해서 우리 모두를 먹여 살렸다.
세월이 흘러 흘러 이제는 할머니도 없고 아빠도 없지만
아직도 우리 시골집 앞마당엔 어스름 저녁이 찾아오고
하늘 가득 빠알갛고 노오란 노을이 머물다 가고,
거기, 아직 우리 엄마가 있다.
더 나이들기 전에 돌아가야지.
봄에는 지천에 나물이 널려있고
여름엔 평상에 누워 밤하늘 별을 보고
가을엔 아람 분 밤 주우러 이 산 저 산 모험을 떠나고
겨울엔 말린 곶감 빼먹으며 ‘내일은 뭐먹을까’ 가 고민하던,
내 나와바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