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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May 13. 2023

조승우가 읽어주는
알퐁스도데의 <별>

책 읽어주는 제니퍼씨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프로방스 지방 어느 목동의 이야기를 처음 읽었던 열몇살 사춘기 시절엔,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있었는데 고백은 커녕 손도 한번 못잡아본 순수한 목동이 바보같이 느껴졌고 안쓰러웠다.

여느때처럼 길이 막히기 전에 서둘러 양평을 내려가는 토요일 아침, 오디오북으로 알퐁스도데의 그때 그 <별>을 다시 듣는데,

20여분 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목동은, 돈 많은 주인에 의해 고용된 하인이었고 하인이 감히 주인집 아가씨와의 로맨스를 기대할수는 없었을 거다.

로맨스를 품을 수는 있었겠지만.

스무살, 한창나이에, 양떼를 지키는 하인으로 고용된 목동의 일터는 뤼브롱산이었다.

몇주일씩 사람이라고는 만날 수 없는 일터에서 홀로지내던 목동이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약초를 찾으러 다니는 수도자나, 시커먼 얼굴에 고독의 그림자를 달고 다니는 숯장사들 뿐이었다. 그들은 목동이 궁금해하는 산 아랫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도 없었고 다정스레 말을 건네주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사냥개 라브리의 존재. 목동에게는 수도자나 숯장사보다 라브리가 더 큰 위로가 되었을거다.

(사냥개에도 이름이 있는데 알퐁스도데는 너무하는거 아닌가. 단편집 어디에도 목동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다)


우리 목동의 일터인 뤼브롱산에 보름마다 2주일치 식량을 제공해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어린 하인 미아로와 나이든 노라드 아주머니였다.

멀리서 아주머니의 짙은다갈색 머릿수건이 보이면  목동은 신이났다.

아주머니는 지난주에 누가 세례를 받았다든지, 누가 누구와 결혼을 했다든지 하는 산아래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시시콜콜 들려주기 때문이다.

목동이 무엇보다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주인집딸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일부러 관심없는 척하면서 노라드 아주머니에게

스테파네트가  저녁에 파티에 자주 가는지, 최근에는 그녀에게 환심을 사려고 찾아오는 낯선 젊은이들이 없는지 이것저것 묻곤했다.

(아마도 노라드 아주머니는 스테파네트를 향한 목동의 마음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산속에 사는 보잘겂없는 양치기주제에 그런 일들이 무슨상관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에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때 내 나이는 스물이었고 스테파네트 아가씨는 내가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구요.


첫번째 눈물이 터진 구간이다.

스무살 피끓는 청춘이, 살면서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이에게 마음을 표현도 못해본다는 상황이…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 드디어 일이 벌어진다. 뤼브롱산에서 양을 지키는 동안 목동이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순간은 보름치 식량을 가져다주는 사람들. 우리에겐 택배기사님같은 존재.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식량이 도착하지 않는거다.

사려깊은 목동은 이렇게 생각했다. 대미사 때문에 아침에는 배달을 올 수 없었을거고, 정오에는 소나가기 퍼부어서 노새를 몰고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이제 날이 갰으니 오후 서너시쯤은 도착할거라고.

그렇게 희망을 품고 기다리던 목동의 일터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식량을 싣고 오는 노새의 방울소리가 들렸다.


하늘이  맑게 개고 온 산이 물기와 햇빛으로 반짝거리게 되었을때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와 불어난 시냇물의 좔좔좔 소리와 함게 노새의 방울소리가 들렸습니다. 노새의 방울소리는 부활절의 종소리만큼이나 맑고 명랑했습니다. 그런데 노새를 몰고 온 사람은 농장꼬마 미아로도 노라드 아주머니도 아니었습니다.
과연 누구였을까요? 바로 우리 스테파네트 아가씨.
버들가지로 만든 광주리 사이에  똑바로 앉은 아가씨의 빰은 소나기가 내린다음 한층 더 싱그러워진 공기에 장미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미아로는 앓아누웠고 노라드 아주머니는 휴가를 얻어서 아이들 보러 집에 가셨다는 소식을 전해주며 꿈에 그리던 스테파네트가 목동에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스테파네트는 이런것도 자세히 알려줄만큼 인성도 좋았던 모양이다.

다 가진 여인……

길을 잃어 늦게 도착했다는 스테파네트 아가씨~~


아무리 바라봐도 싫증이 나지 않을 외모를 가진 스테파네트를 이렇게 가까이 본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겨울이 되어 양떼를 몰고 벌판으로 내려가게 되면 저녁을 먹기 위해 주인집에 들를때가 있는데  목동은 그때 식당앞을 걸어가는 스테파네트를 가끔씩 보았을뿐

이렇게 온전히 목동을 위해 광주리에 양식을 가득안고 와준것은 처음 있는 일.


신기한듯 주위를 둘러보고 목동이 잠자는 곳을 둘러본 스테파네트가 목동에게 질문을 던졌다.

“딱해라. 여기서 뭘하고 지내니? 무슨생각을 하며 지내는거야?”

무슨 생각을 하냐면…목동은 대부분의 시간 스테파네트를 생각했지만 가슴이 너무 두근거렸던 목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마음을 눈치챈듯 짖궂은 장난을 치는 스테파네트.

“가끔 네 여자친구가 너를 보러오겠지? 네 여자친구는 황금빛 염소이거나 산꼭대기에서만 뛰어다니는 에스테렐 요정일꺼야“


목동은 속으로 대답했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웃는 모습이나 갑자기 나타났다가 서둘러 떠나는 아가씨야말로 에스테렐 요정처럼 보인다, 고.


목동아 잘있어!

아가씨가 비탈진 산길로 사라졌을때 노새에 발굽에 채어 구르는 자갈돌 하나하나가 내 심장위로 떨어져내리는것 같았습니다. 그 소리는 오래도록 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나는 꿈이 깨져버릴까봐 해가질때까지 몽롱한 상태 그대로 꼼짝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계곡이 푸르스름한 어둠에 잠기고 양들이 매매 울면서 서로 몸을 바싹 붙여 우리안으로 들어가고 있을때 누군가 언덕아래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나타났습니다. 가여운 아가씨는 추위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산기슭아래에서 폭우로 불어난 소르그 강을 무리해서 건너려다 그만 물쌀에 휩쓸릴뻔한 모양이었습니다.
이미 어두워진 시간에 농장으로 돌아갈수가 없었습니다. 지름길이 있지만 아가씨 혼자서는 도저히 찾아갈수없었고 그렇다고 내가 양떼를 두고 데려다줄수도 없었습니다. 산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아가씨는 몹시 불안해했습니다. 더구나 다족들이 걱정할 생각에 안절부절 하는 아가씨를 보며 나는 내가 할수있는 한최선을 다해 아가씨를 안심시켰습니다.

“7월의 밤은 아주 짧아요 아가씨 조금만 참으면 된답니다”

나는 흠뻑젖은 아가씨의 옷과 발을 말리기 위해 서둘러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아가씨에게 우유와 크림치즈를 가져다주었지만 가여운 아가씨는 불을 쬐려고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것을 보니 나도 그만 울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는동안 어느덧 밤이 되었습니다. 산등성이에 석양빛이 흐릿하게 남아있을뿐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졌습니다.
나는 아가씨가 목장안에 들어가 쉬기를 바랐습니다. 볏짚을 새로깔고 그위에 새로운 양모피를 펴놓은 다음 아가씨에게 잘자라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문앞에 앉았습니다.

사랑의 불길이 내 가슴속에 피를 끓어오르게 했지만 나는 하나님께 맹세할수있습니다.
조금도 옳지 못한생각을 품지 않았다고. 세상에 어떤 양보다 귀하고 깨끗한 아가씨가 내 보호아래 쉬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때갑자기 울타리 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양들이 잠결에 매매 울어대서 잠이 들 수 없었던 스테파네트는, 장작불을 켜놓고 잠자는 양과 스테파네트를 지켜주던 목동 옆으로 와 앉았다.

스윗한 목동은 자신의 양모피를 스테파네트 어깨에 걸쳐주고는 불을 더 세게 피웠다.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목동은 행복했다.


만일 당신이 한번이라도 아름다운 별빛아래서 밤을 새운적이 있다면 당신은 모두가 잠든 시간에 어떤 또하나의 세계가 고독과 정적속에 신비롭게 깨어나는지 아실 것입니다. 샘물은 더 맑은 소리로 노래하고 연못은 조그마한 불꽃들을 켜놓습니다. 산의 모든 요정들은 자유롭게 오갑니다. 공기속에서는 나뭇가지가 자라는 소리며 샘물이 솟아나는 소리처럼 가볍게 스치는 소리, 감지하기 힘든 어렴풋한 소리가 납니다. 낮은 생물의 세상이지만 밤은 사물의 세상이랍니다. 이런 것들에 익숙하지 않은사람들은 밤을 무서워하지요. 그래서 우리 아가씨도 어디서 아주 조그만 소리만내도 몸을 바들바들떨며 내게 바싹 다가 앉았습니다. 한번은 저 아래 반짝이는 연못에서 길고 음울한 소리가 물결치면서 우리가 앉아 있는 곳까지 메아리쳐 왔습니다 바로 그순간 별똥별하나가 우리 머리위를 스쳐 연못쪽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졌습니다. 마치 우리가 방금들은 소리가 한줄기 빛을 나른 것 같았죠.

저게 뭐지?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지요. 나는 성호를 그으며 대답했습니다 아가씨도나를 따라 성호를 그었습니다.


나뭇가지가 자라는 소리, 샘물이 솟아나는 소리, 연못의 소리에 대해 알고

밤이 인도하는 고독과 정적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경험해본 목동의 삶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윽고, 내가 추구하자 하는 것은 어쩌면 목동의 삶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 밤의 정적을 깨고 목동을 향한 스테파네트의 질문이 이어진다.


”별이 참 많기도 하다. 어쩜 저렇게 아름다울까?

난 이렇게 많은 별들을 본적이 없어 저 별들의 이름을 알고 있니?“


물론이지요. 자 보세요. 우리 머리위 별이 은하수랍니다.
저 별은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곧장 뻗어있지요,용감한 샤를마뉴 대제가 사라센 사람들과 싸울때 갈리시아의 성 자크가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려놓았다고합니다. 저멀리 있는 별은 반짝이는 네개 축이 달린 큰곰자리이고, 그 앞에 있는 세개의 별은 세마리의 야수, 그 셋째별 맞은편에 있는 아주 작은 별은 마부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주위에 비처럼 떨어지는듯한 별이 보이죠? 그 별들은 하나님께서 천국에 두고 싶어하지 않는 영혼들이라고 합니다.
그보다 조금 더 아래 있는 별은 쇠스랑, 오리온이라고 합니다. 우리 양치기들에게는 시계노릇을 해주는 별이지요.
저 별들만 보고도 저는 지금 자정이 넘었다는것을 알 수 있답니다. 그보다 좀더 아래로 내려와서 남쪽에서 반짝이는 별은 하늘의 횃불인 시리우스입니다. 저 별에 관해서는 양치기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밤 시리우스가 오리온 묘성과 함께 친구별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답니다. 성급한 묘성은 제일먼저 길을 떠나 윗길로 갔죠. 저기 하늘위쪽에 있는 별을 보세요. 오리온은 아랫길로 가로질러 묘성을 따로잡았어요. 하지만 게으름뱅이 시리우스는 늦잠을 자다 맨뒤로 쳐지게 되었지요 화가난 시리우스는 두 친구들을 멈춰서게 하려고 지팡이를 던졌답니다. 그래서 오리온을 시리우스의 지팡이, 라고도 하지요. 하지만 모든 별들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을 바로 우리의 별인 양치기의 별이에요. 새벽에 양떼를 몰고 나갈때나 저녁이 되어 양떼를 몰고 들어올때 저 별은 언제나 우리 앞에서 길을 밝혀주고 있어요. 우린 저 별을 마굴론이라고도 부릅니다. 아름다운 마굴론 별은 프로방스의 피에르, 측 토성뒤를 쫓아다니다가 7년에 한번씩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별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해박한 목동의 모습에, 스테파네트가 조금은 목동을 달리 보지 않았을까?

나라면 무수히 많은 별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목동에게 사랑에 빠졌을 거다.


아가씨에게 별들의 결혼이 어떤것인지 설명하려는 순간 무엇인가 향긋하고 보드라운 것이 내 어깨위에 가볍게 내려앉는것을 느꼈습니다.
리본과 레이스. 그리고 물결치는 머리카락의 살랑거림과 함께 내 어깨에 기대어 온것은 바로 잠이들어 무거워진 아가씨의 머리였습니다.
아가씨는 아침이 밝아오면서 하늘의 별이 빛을 잃고 꺼질때까지 꼼짝도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오로지 아름다운 생각만하게 해준 이 맑은 밤의 경건한 보호를 받으면서 잠자는 아가씨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 주위에 수많은 별들이 순한 양떼처럼 고요한 걸음을 옮겨놓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별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하나가 길을 잃고 내어깨에 내려와 잠들어있는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분에 거의 오열….했다.

별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하나가 길을 잃고 내어깨에 내려와 잠들어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밤새 사랑하는 여인을 지켰던 목동의 마음이 너무도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날씨가 좋은날은 평소보다 길이 더 막히는 양평가는길.

알퐁스도데의 별, 을 듣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오열하면서 갑자기 내 20대를 채웠던 그분이 생각났다.

롯데를 사랑했던 베르테르씨.


스테파네트와 목동에겐 신분의차이가 있었다면

롯데와 베르테르 사이에도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롯데를 짝사랑했던 베르테르. 차마 고백못하고 여행을 떠난 후 돌아와보니 이미 롯데는 알베르토의 아내가 되어있었던 것.


안되는 줄 알면서도 롯데를 향한 마음을 멈출 수 없었던 베르테르의 마음이 잘 담긴 넘버 <어쩌나 이마음>이 생각났다.


알퐁스도데의 별을 다시 읽은 이들이나 혹은 조승우의 오디오북으로 이 작품을 듣고있는 이들에게도,

이 곡과 함께 <별>을 만나보기를 추천하고싶다.




https://youtu.be/8WeCB-dwGnE


그대는 어쩌면 그렇게 해맑을 수 있는지 당신의 그 고운 미소는 나에게 다가와 손짓하는데

아니 그렇지는 않은듯 낯설고 어색하게 내맘을 어지럽게 만들어 뭐라고 잘라말할 수 없는

이 마음 형언할 수 없는 이느낌 내 입술이 얼음처럼 붙어버린듯 멍안히 선채로 바라만보는 곤란한 이 감정, 어쩌나…이 마음

_뮤지컬 베르테르 넘버 , 어쩌나 이마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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