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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18. 2023

결혼진술서

지금 사랑하고 있는 이들도 한번씩 읽어봄직한




휴가내고 부산에 있던 날, 회사 A 상무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제니퍼 자리에 없네? 책한권 두고가요. 지인이 쓴 책인데 읽어봐요"


A 상무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신뢰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오랜동료요, 입이 무거워서 카운셀링에 적합한 선배이자, 애정하는 독서토론 '한뼘'의 멤버인 분이다. 그런 분의 추천도서니까 선물받자마자 읽어야함이 마땅한데 기말고사다, 조승우다, 마음이 분주한 일이 많았고 주말엔 원인모를 고열에 시달려서 차일피일 미뤄둘 수 밖에 없었다. 고열의 원인은 부족한 잠, 그에 따른 면역력 악화라고 생각하는데, 의사가 아닌지라 의학적 소견은 모르겠고 그냥 내 짐작엔 2주만에 집으로 돌아와 긴장이 풀린게 아닌가 싶다. 내내 괜찮다가 집에와서 마당에 풀들을 밟고, 심바/탄이/레오와 인사하고, 엄마랑 언니를 만나 즐겁게 저녁을 다 먹고나서 밤새 아프기 시작했다. 

원체 타고난 건강체질이라서인지 어쨌거나 금요일밤부터 아프기시작해서 토요일 하루종일 잤더니 일요일엔 꽤 괜찮아져서 교회대 성가대도 서는데 무리가 없었다. 워낙 중요한 보직 (소프라노)은 아닌지라 웬만하면 성가대 부담은 없었다.


그렇게 모든 일들이 지나고 나서 조금 가벼운 맘으로 이 책을 읽었다. 아무래도 이혼을 주제로 한 책이다보니 내용이 무거울 것 같아 최대한 걱정거리 없는 편안한 주말에 읽어야지, 싶었다. 


<결혼진술서>는 이혼소송에 필요한 서류 중 하나다.

이혼은 커녕 결혼도 안해봤으니 나는 당연히 알리가 없지만 결혼한 상당수도 이혼소송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알 수 없지 않을까. 어쨌거나 나로서는 생전처음들어본 진술서였다. 

이혼할때는 대략 6가지 서류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가족관계 및 혼인관계 증명서와 기본 증명서, 주민등초본과 결혼생활진술서와 증거자료가 그것이다. 증거자료로 활용되는 결혼진술서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비교적 담담히 진술서 쓰듯 써내려가는게 기본 틀이라고 하는데 작가에 의하면 참고할만한 자료가 1920년대 일제강점기 나혜석의 <이혼고백서>가 전부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어쩌면 작가 개인의 치유록을 넘어서, 비슷한 상황을 준비하는 이들에겐 중요 참고진술서가 될 의미있는 작업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을 믿기 때문에 나는 감히 이책이 그녀가 이혼을 겪는 과정에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극복하는 힘이 되어주었을거라 확신한다. 또한, 나혜석 이후 이렇다할 <결혼진술서>가 없었다는 점에서도 작가는 이 작업에 의미를 부여했으리라 여겨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본인의 경험이고 아픔이었을지라도 타인에게 요긴하게 사용될거라는 마음이 결과물을 만드는데 큰 영향을 줬으리라. 


인상깊었던 부분은 접속사로 본 이혼 과정의 변천사였다.

그리고, 우리는 원망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갖은 애를 써야했다.

그러나, 반전은 없었다.

그래서, 당신은 이혼을 결심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다시 합치라는 소리에 흔들려?

그러니, 너무 기구한 척 말자.

그래도, 자녀는 제대로 잘 키우자!

또, 살다보면 좋은 날 온다.


한편 <연인들은 모를 결혼의 이면>이라는 챕터를 통해 결혼 전에 사랑하는 연인을 향해 점검할 부분들을 짚어주기도 한다. 

연인의 입맛이 나와 다르고 그것이 절대 고정불변의 것이라면 이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 섹스말고도 둘만 보내는 시간이 즐거운지, 헤어진 지 6개월후에도 그리울지, 문제가 발생하면 털어놓고 상의하는 단짝인지에 대해 충분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작가의 경험담과 이혼과정을 겪으며 곱씹으면서 정립된 가치관이다.


이혼을 앞두고 있는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연애에 대한 고민이 있는 분들, 결혼을 생각하는 분들 그 누구든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어쨌거나 이책은 단지 이혼에 직면한 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라는 점에 대한 나의 소회를 남겨두고 싶다. 



번외: 제니퍼가 아직 싱글인 이유에 대해서 

아직 마흔세살에 싱글인 것이 결코 내세울만한 일이 아니란 건 알지만 (뭐 그렇다고 딱히 주눅들 이유도 없잖은가. 두번째, 세번째 결혼하는 지인들을 보면 나는 대체 뭘하고 있는건가 자괴감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지만...) 나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있다. 
나는 결코 상대에게 사랑을 구걸하거나, 그사람이 주는 사랑을 착각해서 결혼하는 타입은 아니라는 것. 뭐 일어나지 않은일에 대해 자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체 생겨먹기를 사랑에 대한 의구심이 많고 워낙 피곤하고 곤란한 타입이기 때문에 (남자사람친구 피셜이다) 그 모든 장애물을 뚫고 내게 구애할 상대는 지극히 드물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여전히, 나는 싱글이고 그렇다고해서 앞으로도 내가 단지 <결혼>을 위해 나의 가치관을 바꿀 생각은 없다. 독야청청하는 날이 오더라도....
어쩌면 이렇게나 단호한 결정은 지극히 감정적인 성향이지만 끊임없이 책을 읽고 자아성찰을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를 한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나는, 어쩌면, 나도 모르게 너무 많은 연애진술서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하하! 

그렇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래서......... 아직 나는 싱글이다. so what?



제니퍼가 편애하는 밑줄

연애중인 분들에게도 당부하고 싶다. 

연애진술서 형태의 글을 한번이라도 작성해보기 바란다. 최선을 다해 진술서를 써보자. 그것이 내 사랑과 결혼에 대한 예의다. 설혹 사랑이라 믿었던 착각일지라도, 본인이 어느 지점에서 자기 자신을 속이고 합리화했는지 밝혀내야 한다. 분간이 안된다고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시 기준점을 잡으면 된다. (41p)


운동해야 산다. 하루 만보걷기라도 꼭 실천해야 한다. 컨디션이 곧 그날의 나다.

움직여라! 감정을 조절하고자 한다면 계단을 뛰어오르거나 잠깐 맨손체조라도 해보자. 이런 간단한 운동만으로도 자신의 감정을 재빠르게 원상태로 돌려놓을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일본 사회학자 야마다 마사히로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5년마다 결혼갱신제를 주장한다. 살고 싶은 사람과 사는 경우에만 갱신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현행 법률혼은 종신제이기에 극단적인 경우에는 (살일을 통해서라도) 가족 인원 정리에 들어간다는 끔찍한 살인사건을 접하고 쓴 책이다. 

(중략) 재산분할 후 계층 추락이 우려돼 이혼을 망설이는 것은 중산층의 문제다. 이로 인해 '가정 내 이혼'이라는 각방살이 혹은 '유령부부'같은 형상도 늘었다고 했다.


때로는 잘못된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영화 <런치박스> 중에서. 



에필로그, 

이 책에는 책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가 많이 인용되어서 인지 책을 읽고 난후 보고싶은 책과 영화가 많았다. 


<불안의 심리> 프리츠 리만

<불안이라는 중독> 저드슨 브루어

<불안이라는 자극> 크리스 크드먼, 해롤드 시니츠키 

영화 <런치박스>

<남자들이 결혼하는 여자는 따로 있다>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 오늘날 일본 가족의 재구조화> 야마다 마사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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