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가의 연애상담을 해줄 처지는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참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 8년간 내 머리를 담당해주시는 친애하는 미용실 원장님의 아주 오랜만의 연애이기 때문이다.
딸 아이를 홀로 키우는 동안 주변의 그어떤 대시에도 철벽을 치던 미모의 S원장님.
원장님의 딸아이가 작년에 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원장님도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연애를 시작해볼까 싶었는데 마침 지난 6년간 곁에서 원장님의 딸이 대학에 가기만을 기다려온 연하남이 대시를 했고 드디어 두사람이 사귀기 시작했다.
올해 6월 볼륨매직을 하러 들렀을때, 두분이 사귄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볼륨매직을 하는 두세시간 내내 애인자랑을 하는 원장님을 보고 있노라니 역시나 여자들의 연애란
20~30대 연애나 50~60대 연애나 크게 다를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날, 퇴근길에 미용실에 들른 원장님의 애인을 보게됐다.
나보다 겨우 서너살 많다는 그 남자분의 첫인상은 수더분하니 꽤 괜찮았다.
그리고 어제. 근 두달만에 염색을 하러 다시 들렀는데, 두달전만해도 행복에 겨워했던 원장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이유인 즉슨, 현재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애인이 자신의 꿈을 위해 어떤 시험에 도전하는데, 일이다 시험이다 바빠서 벌써 17일째 못보고 있다는 것.
"두분 만난지 얼마나 됐죠?"
100일도 안됐죠....
어랏. 세달도 안된 시점에서 게다가 남자가 6년간 오매불망 따라다닌 상황인데....왜 그러시지?
물론 남자분의 상황이 현재 엄청 바쁘고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 상황이 원장님과 사귀고 나서 벌어진게 아니라 사귀기 전에도 이미 같은상황이었을텐데?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연애를 원해서 시작한건데 사귄지 100일도 안된 커플이 17일째 얼굴도 못볼 이유가 있나? 40대가 지나면 매일 만나는건 어차피 서로 피곤하니 주1회정도 데이트를 즐기는게 노멀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17일동안 못볼 이유가 있나 싶어 나는 무언가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원장님은 헤어지는 쪽으로 생각을 굳힌것 같았다. 물론 아직 좋아하지만서도.
원장님의 주요 불만은, 이 남자의 대화법이었다.
첫째. 원장님의 일과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고 넘겨짚어서 이야기하는 것.
예를 들면 금요일마다 원장님은 타로를 배우러 다니는데
원장님이 원하는건 금요일이니까 타로강의듣겠네요? 점심먹었어요? 이런 팩트기반의 관심인데
그는 원장님의 일정과 일과를 모르면서, 비오는데 미용실에 사람많겠다. 그럼 밥 못먹었겠네요...라는 등매사 넘겨짚는다는 거다. 언제나 자기이야기만하면서 자기일기를 써내려가는식으로. 비오는데 사람 많아요? 바빠요? 하고 물어보는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그 대화법이 너무 싫으시단다.
둘째.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것.
엄마에게 지난주 프라다 가방을 사줬다, 당신에게도 반지하나 사주겠다. 뭐 받고 싶냐?
"그럼 피부과 가도 되냐?" 고 물으니 피부과 가라, 피부과 끊어주겠다, 라고
기대하게 하면서 아직 아무것도 해준게 없다는 것.
처음에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고, 오렌지 브라운 컬러가 나올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는 연애를 시작한지 3달도 안됐는데 17일째 여자친구를 보러 오지 않는 남자의 심리가 궁금했고,
여자친구의 하루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으면서 상상속대화를 이어가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염색약을 헹구어내고 원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 남자가 17일간 바빠서 연락안한게 아니라 지금 뭔가에 삐졌거나 실망한것같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리고.....나역시 원장님에게 실망감이 들었다.
말만 앞선 이 남자가 얄미워서 일부러 카드를 달라고해서 얼마까지 써도 되냐, 몇개월할부로 쓰냐를 물어봤고 애인은 200만원 한도, 일시불로 써도 된다고 답변했다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애인의 카드로 피부과비용을 냈다는데에 적잖이 놀랐다.
내가 예쁘게 생기지를 않아서인지,
워낙에 자기주도적이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성향이라서인지, 는 모르겠지만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다 낸다거나, 사귄다고해서 남자가 여자에게 카드를 줘야한다거나, 꼭 고가의 가방을 여자친구에게 선물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데 우리의 원장님이 애인의 카드를, 본인이 자발적으로 준것도 아니고 그에게 여러번 달라고 한끝에 받아 내어 피부과에서 150만원을 긁었다니?
아아아아 여기서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까. 일단 질문을 던졌다.
"원장님 그분 돈 많아요?"
아니요.
"그럼 솔직하게 제 생각을 이야기해도 될까요?"
제가 그 남자라면 저는 원장님같은 여자는 못만나겠다, 고 생각했을것 같아요.
원장님... 사람마음 다 똑같아요. 원장님 카드를 가져다가 애인이 정말로 다급하게 필요한데 쓰는것도 아니고 피부과에서 150만원을 긁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생각이 들까요? 전 그런 애인이랑은 만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그것도 제가 자발적으로 카드를 준것도 아니고, 애인이 제게 카드를 달라고 달라고 해서 준건데.....
원장님, 내일 그분 만나서 담판 짓는다고했죠?
솔직히 대화를 해서 기회를 주거나 헤어지기로요?
일단 헤어지든 계속만나든 상관없이 오늘밤에 150만원 그분 통장으로 넣으세요.
그리고 그분에게 "말만 앞서는거 꼴보기 싫어서 시험해봤다"고 하지마시고
당신이 나에게 반지를 사준다, 피부과를 보내준다 무수히 많은 말을 했는데 나는 그것보다 소소한 데이트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저녁먹고 내 일과에 대해 궁금해해주는게 좋다. 말만 앞서는거 말고 행동으로 보여줬음해서 카드로 피부과 긁은건데, 당신 돈으로 피부과 갈 생각은 전혀없었다. 그래서 돌려주는거다.
앞으로는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면좋겠다,
이렇게 이야기하해보시면 어때요?
나의 어줍잖은 조언에도 원장님은 귀기울여 들어주셨고,
염색을 마치고 가는 나를 배웅하면서 저녁에 바로 150만원을 그친구 통장에 넣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다음달에 볼륨매직을 하러 원장님께 가기로 했다.
두분의 연애가 이어질지, 끝났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나의 친애하는 원장님과의 관계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나는 원장님께 솔직한 내 심정을 이야기했고 원장님은 어린친구에게 배웠다며 기꺼이 내 조언대로 해주기로 하셨기에 어쨌거나 우리둘은 헤피엔딩이었으니까.
자발적으로 고가의 가방을 사준다, 피부과 비용을 대준다 해주면야 베리베리 땡큐지만
그게 아니라면
피부과는 내돈으로!!!!!!
내가방도 내돈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