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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Aug 19. 2023

장가는 갔냐?  (나는 쏠로다)



지난주 수요일 하늘






지난주 수요일엔가(여기서 말하는 지난주 수요일은 2023년 5월의 어느 수요일이었다) 동료들과 야근하면서 저녁을 먹고 있을때쯤 오랜만에-그러니까 대략 3년정도 흐른것 같다-눈먼곰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십수년전 영국에서 아주 잠시 영어공부한다고 머물던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동갑내기 녀석인데, 그때 만나다 헤어진 남자친구랑도 친한녀석이라 의도적으로 자주연락을 하고 지내지는 않았다.





헤어진 남친에게 미련이 있을땐 미련이 있어서 눈먼곰과 연락을 피했고 지금은 두 녀석 모두 유부남이 되었으니까, 딱히 연락을 하고 지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이미 거나하게 취해서 녀석은 여보세요, 를 하자마자 다짜고짜 내게,



장가는 갔냐?


라고 물었다.

어쩜 이 녀석은 변하지도 않나. 27살때 처음만났을때나 43살이 되서나 패턴이 참 비슷한거 같다. 자주 술에 취해있고 자주 나의 속을 뒤집어 놓고 또 자주 나를 웃게도 만든 녀석. 원래 TMI스탈인 나지만 그날은 왠지 상세히 미주알고주알 내 소식을 전하고싶지 않아 <그래 장가갔다>라고 답을 해버렸다. 장가갔다고 한들, 안갔다고 한들 녀석에게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고 내게도 그렇고, 내가 장가갔다는 소식이 내첫사랑에게 잘못 전해진다한들 모든것이 크게 상관없을 시기였으니까.


왜 연락안했냐?


"나도 니 결혼식 안갔는데 연락은 무슨...딸들 잘 키우고 잘 살아라"


..

.

.


아마도 녀석은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거다. 서로 시간만 나면 그런 장난을 여러번 주고 받았을 뿐더러 만약 정말 결혼을 했다면, 내 성격상 조용히 지나칠리도 없었을거라고 확신하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같아선 언젠가 정말로 그런날이 온다면 정말 친한 지인 몇몇에게만 알리고 조용하면서도 소박하게 치르고 싶지만, 아직 애인도 없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열린결말로 두고 있다.


암튼 그 전화 한통으로 바쁜 내 일상에 잠시 파문이 일었다.

영국 유학시절 만난 그리그리 멤버들도 나만 빼고 다 짝을 이루었는데 나만 좀......뭔가 모자란애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나름 혼자 행복한데 결핍된 상태로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무언가 내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듯한, 못하고 있는듯한 찜찜한 기분이 드는거다.


토요일에 중3 조카녀석이 다녀갔다. 또래 애들과 조금 다른 특별한 나의 조카.

함께 브런치를 즐길 수 있고, 책을 읽으면서 주말을 보낼 수 있으며, 매순간 엄청 젠틀하게 상대방을 굽어 살펴주는 아이.

아주 어릴때부터 잘보채지도 않고 서윗했다.

그런 조카 녀석이 잭슨피자와 서브웨이 샌드위치가 먹고싶다고 금요일에 회사앞으로 나를 찾아왔다. (조카가 사는 지역엔 잭슨피자도 서브웨이도 없다) 하룻밤 잘 자고, 잘쉬다 간다는 녀석을 붙잡아 양평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더니 굳이굳이 혼자 음악들으며 기차타고 가는게 좋다며 홀로 길을 떠났다. 집을 나서면서, 녀석은 말했다.




이모, 내 꿈은 혼자 사는거야, 이모처럼.




혼자사는게 꿈이라니, 녀석도 참.

난 그런 꿈을 꾸진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혼자 살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도 지금 내 생활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꽤 편안하다.

15명의 대가족에 끼어서 가족의 대소사를 살펴야 하는 일, 인원이 많지는 않지만 일뿐만 아니라 그네들의 가정까지 살펴주느라 늘 마음을 쓰고있는 네명의 팀원들과 동료들, 교회, 대학원.....대부분의 시간 사람들과 어울려 바쁘게 지낸다. 언니나 조카, 친구들과 사나흘씩 함께있다보면 내집, 내공간으로 절실히 돌아가고 싶어지고, 여행을 가더라도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다거나, 낮의 일들을 돌아보며 간단히 글을 끄적이다 잠드는 걸 좋아한다. 먹고싶을땐 먹고, 안 먹고 싶을땐 그냥 단백질 쉐이크를 마시면서.


(미완성된 이글을 다시 이어서 쓰는 시점은 2023년 8월의 어느 토요일이다)


어쨌거나 아직 나는 쏠로다.

쏠로라서 외로운 순간보다, 쏠로라서 행복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더 많지만 그럼에도 쏠로라는 라는 단어자체가 주는 왠지모를 짠함이 배어있는 것 같아 종국에는 이 단어에서 벗어나야만 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여전히) 든다.


내 의지대로 되는게 아니겠지만서도.

일단 오늘은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으니, 주어진 하루를 잘 시작해봐야겠다. 쏠로에게든 아닌사람들에게든 모두에게 똑같은 토요일이 주어졌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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