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준비하면서 배운것들
집을 산 것도 아닌데 왜이렇게 가슴이 설레고 기대되는지 모르겠다.
가계약을 하고 난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건 뭐랄까, 남친이 생긴....그런 낯설고 설렌 기분이 들어서 조금 당황했달까. 남들이 보면 매매라도 한줄 알겠지만 내게는 그 못지않은 무게감과 동시에 뿌듯함을 주는 결정이었다.
인생 통틀어 세번째 전세계약을 썼다.
서울살이 23년. 언니로부터 독립한지 11년. 원룸에서 5년, 투룸에서 6년 지냈던 나는 43세의 끝자락, 12월에 이사를 간다. 계획했던 쓰리룸으로. 방의 갯수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내겐 안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현재 살던 곳에서 이사를 결심한 건 집주인 덕분(..)이었다. 전세보증보험을 해주지 않고, 내 전세 보증금 중 일부를 돌려줄테니 월 53만원을 내는 반전세 구조로 변경하자는 제안을 주셨는데,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빌라가 가진 직렬주차의 불편함때문에 번거로움이 시작되는 즈음이기도 해서 <6년간 이집에서 감사히 잘 살았고, 이제 만기 계약이 끝나면 집을 나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집을 알아봤다.
나의 조건은 명확했다.
1. 내 현재 전세금+대출은 1.5억 이하의 버젯에서.
2. 현재집보다 평수가 넓을 것. 침실방과 옷방 외 재택가능한 방이 필요함!
3. 남향일 것 (남서향, 남동향은 상관없지만 반드시 남향으로 채광이 확보될것)
4. 통풍이 잘되는 곳으로 뷰가 트인 곳 (공원뷰 등)으로 통창이거나 베란다, 테라스, 옥상이 있는 구조일것
5. 몰리짱언니 집이 도보로 가능하고, 회사까지 20분 컷안에 드는 9호선 라인일 것
6. 뷰까지 좋으면 best지만, nice to have이지 must have는 아님!
7. 투기과열지구인 송파구에서 빌라를 찾으면서 병렬주차까지 바라면 안되지면 병렬주차면 best!
결과적으로 이사갈 집은 나의 7가지 조건 중 6가지에 부합했다. 때문에 보자마자 가계약을 하고, 이틀뒤 바로 본계약까지 번갯불에 콩볶듯이 신속하게 마무리했다. 이 일대 집만 한달째 보고 다녔기에 우유부단함이 없지 않은 내가 나름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다. 딱 하나 단점은, 기계식 주차였는데, 계약전날 까지 밤새고민이 됐다. 기계식 주차 사고 뉴스가 많았던 터라. 초보운전자에겐 사고많다는 기계식 주차가 아무래도 두려웠지만 다른 6가지 조건이 맞는집이 또 나타날까싶어 바로 결정했다! 마치 500만원짜리 가방 셀링하듯 “맘에들면 그냥 이집으로 하세요” 하는 부동산 대표 역할이 80% 이상이었다.
한달간, 믿을만한 부동산 네곳과 총 12번의 투어를 했다.
우대빵 부동산 윤미경 매니저님, 공감부동산 이창재 팀장님, 황금부동산 김선미 실장님, 장수부동산 김영희 대표님. 정작 계약은 그날 처음본 아마다 부동산 대표님 덕에 공동중개로 성사됐다.
동네 부동산 중개 매니저님들께 제니퍼는 <바라는 것 많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비춰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만남을 통해서 각자의 중개사들에게 배울게 참 많았다. 이름을 언급한 이유는 잠실부근에서 믿을만한 부동산을 찾는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이다. 모두 진심을 다해 이 일을 하는 분들이니 연락해보시기를! 황금부동산 실장님과는 두살 터울로, 세세하게 잘 챙겨주셔서 새집에 초대해서 밥한끼 대접할 생각이다. 한까탈하는 제니퍼의 마음을 사셨다.
“언니는 저같은 사람 너무 느려서 보기에 답답하시죠?” 와우. 이 기시감은 뭐지. 지난주 대학원 동기 중에서 마음을 제일 터놓고 지내는 친구와 똑같은 말을 했다.
내가 급한거지, 그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두 사람에게 각각 전혀 답답하지 않다. 오히려 나는 나 같은 성격보단 당신들 같은 찬찬한 캐릭터들에게 위안을 얻는다, 고 답해주었다. 내 30년지기 베프도 그런 성격이라고.
그러면서 생각했다. 언젠가 만나게 될 내 짝도 그네들처럼 찬찬하고 잔잔한데 자기들 스스로는 조금 답답하다고 느끼는 그런 스타일이겠구나, 하는.
줄리도 전세기간이 만기가 되어 같이 집을 알아보다가 내게 그랬다. “우리 제니퍼 바깥풍경도 중요하지, 내외장재도 보지, 깨끗해야지….나도 너랑 별반 안 다르지. 우리…이렇게 집 까다롭게 보는거 보니까 왜 아직 혼자인가 싶더라. 우리는 집 지어야해 ㅋㅋ“
그런가, 근데 줄리야….
“우리가 까타롭긴 하지. 그래서 타협이 잘 없지. 종교도 그렇고. 근데 결국 너나 나나 우리 조건에 딱 맞는 집 찾았잖아. 고생스러웠지만.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서 기도하고 내려놓으니까 감사하게 되고 새눈으로 다시 보게 되더라. 그러니까 우리 배우자도 그렇지 않을까. 돌고 돌아 내눈에/니눈에 가장 최적의, 믿음의 동반자가 나타나지 않을까?“
집 하나 보면서 미래의 배우자까지생각했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또 다른걸 깨달았다.
잡 서치하는 후보자들에게 내가 집서치했던 것 기억하고 더 정성껏 임해야겠다는 것.
중개사들은 임차인들에게 집을 소개해주고, 헤드헌터들은 후보자들에게 포지션을 소개해준다.
중개의 대상이 물건이나 사람이냐의 차이지 업의 생리가 꽤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최종계약을 할때 공동중개를 해준 부동산 담당자가 인상도 쎄고, 상냥하지도 않은데, 계약서 프린트에 계속 실수를 해서 난감하고, 나의 사소한 질문들에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태도로 대응해서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봤다. 그간 나도 나의 후보자들에게 그렇게 비춰졌을 것 같다.
인상도 쎄고....
내 분야에서는 똑소리나게 일한다는 평을 듣지만, 부동산학과를 졸업했지만 그것에 무지했던 나는 모든것이 어렵고 의심스럽고 계약서를 쓰자고 둘러싼 모두에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있고 거기 나만 홀로 이질적인 느낌 같은게 들었달까.
앞으로는 후보자에게 포지션 제안할때나, 오퍼협상할때 조금 더 충분히 후보자의 걱정에 대해 듣고, 질문에 답해주고, 프로페셔널함보다는 다정하게 최선을 다해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깨달았다....믿는다고 기도하면서도 진짜로 믿지 않고 불안해했던 것. 더 좋은 곳 예비해주실거라고 믿는다면서도 믿지 않았던 것. 이들을 통해 나의 일을 돌아보게 깨달음 주신것들....모두. 하나님 인도하에 마무리 되었다)
처음 진짜로 독립을 했을땐 원룸이란 개념 자체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혼자 사는게 좋았다. 딸 다섯의 막내딸에겐 내방, 내 전화기, 내 책상, 심지어 내옷 같은 개념도 별로 없었는데 내집, 내 토스트기, 내 컴퓨터, 내밥통이 생겼으니까 별게 다 소중하고 감사했다. 그러다 둘째언니에게 가족대출(;;)을 받아 돈을 빌려서, 지금의 집으로 오게됐는데 여름마다 모기에뜯겨서 밤에 보통 서너번은 깨지만 그것빼고는 만족도가 최상이었다.
32살부터 37살의 제니퍼를 품어준 원룸. 그땐 책장과 책이 젤 소중한 무렵이었다.
밥은 거의 해먹지도 않았고, 집앞 솜리치킨에 자주 드나들었었다.
37살 겨울부터 43살 겨울까지 제니퍼를 안락하고 행복하게 해준 투룸.
이곳에서 대출금을 다 갚고, 시골집 근처에 작은 땅하나를 투자하고, 차 한대를 사고,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는 돈을 모았다.
채광 통풍이 좋고 아침에 새소리로 깰 수 있고, 초등학교 앞이라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 학교 종소리도 들을 수 있는 낭만적인 집이었다.
바로 옆집 원룸에 혼자사는 남자분이 2024년 5월에 결혼한다고, 내 집을 보고 싶어하길래 집주인 없이 내가 소개를 해주었다. 삼전동 근처 한달간 돌아봤지만 우리집만한 컨디션없다고 무조건 계약하라고. 두분처럼 선남선녀 부부에게 내 기꺼이 이집을 내어드리겠다고.
설득엔 탁월한 영업사원인지라, 그 남자분은 그 자리에서 바로 우리집으로 들어오겠다고 결정했다!!!
예쁜 두 부부가 여기서 나처럼 행복하게 지내시면 좋겠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나의 세번째 집이 될텐데, 직접 찍은 사진은 없고 인터넷에 나온 사진이다.
통창이 아닌게 아쉽고, 기계식 주차라는 것, 방문객 주차가 안된다는 것 들이 아쉽지만 서울에서 한정된 버젯으로 그 모든걸 충족할 수 없다는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에 이것으로 만족한다.
처음부터 이집을 볼생각은 없었다. 내가 세운 버젯보다 1억 5천이나 비싼 집이었으니까.
그런데 앗쌀하고 화끈한 공동중개 부동산 대표님 덕에, 계획에도 없던 집을 보게 되고 그집 보자마자 20분만에 가계약금을 넣게 됐다. 결과적으로 지금살고 있는 임차인에 비해 3억 정도 낮은 가격으로 계약했다. 나의 버젯에 대해 듣고, 부동산 대표님이 임대인과 어려운 협의를 해준 것.
여기서도 우리일과 그녀의 일의 접점이 있었다.
때때로 후보자들이 기업이 제안한 오퍼 금액에 대해 인상을 원할때가 있다. 예를들어 기업에서 후보자에게 채용의사를 주면서 연봉 8천만원을 제안했는데 후보자는 이 숫자가 마음에 안든다고 하는 경우다. 그때 나는 후보자의 의사를 묻는다. 희망연봉이 어느정도냐? 후보자는 적어도 8천 300만원 이면 좋겠다고 한다. 그때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8300만원으로 다시 오퍼가 나오면 조인하시는거냐, 그때도 고민해본다면 나는 이 협상을 하기가 어렵고, 희망연봉 제시받는다면 바로 조인의사가 확실하다는 것을 말해주면 조율해보겠다, 고.
부동산 대표님도 내게 그렇게 말했다. 계약도 안할꺼면서 집값을 낮출순없고, 집주인들은 그런 혼란을 주는걸 제일 싫어하니 지금 딱 결정하라고. 시세보다 낮게, 이 집을 나의 버젯안으로 낮춰준다면 계약하겠냐고. 얼떨결에 YES를 외쳤다.
사실 저 집을 처음보자마자 생각한 것은 내겐 너무 과분하다는 것, 이었는데 얼떨결에 가격네고가 들어갔고 그러다 자리를 옮겨 내친김에 가계약까지 하게 됐다. 가계약을 하러가는길에 몰리짱언니에게 전화를해서 나의 걱정을 전했더니 언니가 엄청나게 용기를 줬다.
이제 너도 마흔세살이고, 그간 열심히 전세금 모았고, 전혀 과분하지않고, 열심히 일해서 대출은 갚으면된다고.
그럼에도 화살기도를 했다.
하나님, 내게 과분한 집이면 임대인이 내 버젯으로 집값을 낮춰주지 말고, 그냥 원래대로 하게 해달라고. 그럼 나는 이 집을 포기하겠다고.
그런데, 부동산 대표님은 협상에 성공했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이제 계약하러 가자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뭔가에 휩쓸리듯 가계약금 200만원을 내고 계약을 한뒤, 이틀뒤 본계약까지 마무리했다.
어제 처음 본 임대인 부부는 '
내가 진짜 복이 많다면서, 이 금액이면 진짜 잘 계약하는거, 라고, 인연이되었다면서 엄청 복이 많은 아가씨라는 말씀을 여러번 하셨다.
모든 일에는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이사까지 아직도 3개월이나 남았다니...털썩!
하루라도 빨리가고싶다~~~~~
4인방, 그인더, 드림팀, 미점, 한뼘, 갑빠, 한그루, 제니카, 소중이, 요비. 부동산 동생. 대략 11개 그룹들과 집들이를 하기로 했다. 나는 집순이고 소수의 사람들과 깊이있게 관계를 맺는걸 선호하는 내향형인간인데 내향형인간치고 참으로 공사가 다망하긴 한것 같다. 일도 잘 벌리는 타입이고. 결혼이라도 안해서 다행인건지.
어쨌거나 더 열심히 일해야하는 동기부여도 생겼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그간의 내삶에 리프레쉬도 되어주고, 바라던 깨끗한 공간이고, 이 가을. 안달복달 제니퍼씨 마음이 한결 가볍다. 마음이 가벼우니 비로소 주변의 것들이 들어온다. 양재천 나무 내음, 새소리, 대학원 과제, 후보자 서치…실적미팅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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