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과 의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일 저녁. 양평에서 예배를 마치고, 청년부 모임을 간단히 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후보자 S의 메일에 답변을 보냈다. 현재 받고 있는 연봉대비 어느정도 선에서 새로 이직할 회사에 '희망연봉'을 말해야 적절하겠는지에 대한 컨설팅을 의뢰하셔서 도움이 되는 답변을 위해 주신 자료들을 정리해서 한눈에 보기 쉽게 엑셀로 정리해봤더니 대략의 합리적인 '희망연봉'수준이 정리됐다. (결과는? 모두가 만족하는 수준에서 협상완료!!)
그리고 요즘 빠져있는 '최화정 땅콩잼'에 몰리짱 공구 통해 구입한 '감홍사과'를 곁들여서 '가짜허기'를 잠시 눌러두고 어제 읽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정리하는 중이다. 원제는 Man;s search for meaning.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더 직관적이지만 목표와 의미를 찾고 있던 중에 만난 책이기에 나는 영어 원제가 더 맘에 들었다.
요즘 나에게 찾아온 5가지 고민이 있다.
1. 책을 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최근 몇달 주변으로부터 압박아닌 압박을 받았다. 누구는 벌써 책을 냈더라, 이제 제니퍼도 책 낼때 되지 않았냐, 이 정도 독립출판물은 낼 수 있는거 아니냐 등등. 좀처럼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 드디어 책을 내야하는 시점이 왔나에 대한 부분
2.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3. 영어공부의 목적을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까?
4. 운동을 해야하는 이유는 명확한데 어떻게 하면 꾸준히 운동하는 환경을 구축할 수 있을까?
5. 왜 나는 원치않는 서울살이를 지속하면서 회사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커리어상의 내가 가지고 있는 목표는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고 니체가 말했다.
요즘 자주 왜? 라는 의문이 든다. 내가 왜 이 복잡한 서울에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는거지? 내가 나의 커리어를 통해 이루려는 건 뭐지? 왜 실적을 채워야 하는거지?
왜 없는 시간 쪼개서 영어를 공부해야하는거지?
그런 생각을 하던 차 <퓨처플랜>을 읽게 되었고 그 책에서 언급된, 이미 너무도 유명한 책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까지 읽게됐다. 이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만 읽으면 되는건가.
나치에 의해 하루아침에 수용소 포로의 신분이 되어 개돼지 보다 덜하지 않은 대우를 받으며 자존감을 전혀 돌볼수 없는 상황에 놓여진 빅터 프랭클. 참담하고 암담한 상황속에서도 그가 버텨낼 수 있었던 건 그에겐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살아남아 수용소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하고, 집단정신증을 치료하겠다는 목표.
이름도 없이, 기록도 없이 죽어 간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시련,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이책을 통해
나는 나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고싶었다. 내 삶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일까. 즈음의 나의 우울감은 그것의 부재에 있는 것 같다. 내 삶의 목적과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그 해답은 니체를 통해 힌트를 좀 얻어야겠다.
두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여기저기 수용소로 끌려다니다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잔혹한 폭력을 일삼고 도둑질하는건 물론, 심지어 친구까지 팔아넘겼다. 운이 좋아서였든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익명으로 이 책을 내려고 했으나 그럴 경우 이 책이 지닌 가치의 반을 잃게 된다는걸 깨달았다. 내 신념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려면 용기를 내야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함에도 나는 문장 하나도 빠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제 2차 세계대전 덕분에 '집단 정신 병리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훨씬 넓힐 수 있었다. 전쟁은 우리에게 신경과민 상태와 강제 수용소를 경험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프를 퍼주면서 그릇을 내민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 유일한 요리사였다. 자기 친구나 고향사람에게는 몇알안되는 감자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위에서 살짝 걷어낸 희멀건 국물만 주는 그런짓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수프를 나누어주었다.
(언제 죽을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 친구에게 호의를 베풀었다는 이유로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때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정말로 정직하게 그런 일을 하지 않을 확신이 서지 않는 한 그런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한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해보면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것.
자살 기도가 미수에 그친 사람들이 수없이 하는 이야기가 자살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을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예기불안은 역설 의도로 좌절시켜야하고 과잉의도와 과잉투사는 역투사의 방식으로 좌절시켜야 한다. 하지만 역투사는 환자가 불안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잠을 자지 않겠다는 역설 의도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그러며 그 즉시 잠이 오게 되어 있다. 쾌락은 어떤 행위의 부산물이자 파생물로 얻어지는 것이고 또 그렇게 얻어져야만 한다.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면 그것은 파괴되고 망가지낟. 과잉의도 외에 지나친 주의 집중, 꼭 하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그 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신경질환 환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웃을줄 알게 되면 그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려움이 있던 자리에 대신 그 반대되는 소망이 들어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불안이라는 돛대에서 바람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로고테라피의 기본 신조는 인간의 주된 관심이 쾌락을 얻거나 고통을 피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찾는데 있다는 것이다.
로고테라피는 인간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카포: 수감자 중에서 뽑혔는데 기대했던 대로 일을 잘 해내지 못하면 즉시 쫓겨남.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을 기준으로 선발한 사람으로 가장 성질이 난폭한 사람이 맡았다. 일단 카포가 되면 금세 나치대원이나 감시병을 닮아감. 나치대원이나 감시하는 병사보다 더 가혹하고 악질적인 경우가 많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