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의 단상
이사했다. 원룸에서 투룸으로.
이사오면서 전에없던 외로움이 딸려왔다. 이 깨끗하고 밝은 공간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거실 넓은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는게 좋아서 이 집을 결정했다. 그때, 그 햇살에 마음이 이끌려 옆 건물을 미처 신경쓰지 못했는데, 더운 여름날 거의 나체로 지내는 내게 옆 건물에 사는 3층, 4층 사람들은 난제중 난제다. 설마, 하루종일 여길 보고 있진 않겠지라는 ‘내 위주의 나이브한’ 생각으로 그냥 벗고 다니지만 매순간 깨름칙하다. 찝찝하고, 걱정될 뿐, 창문을 가린다거나(소중한 햇살이 가려지니까!, 옷을 잘 갖춰입거나(내집에서 내가 왜?) 하는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너무도 더운 이 여름의 주말 일상에 대해 오늘은 몇자 적어보고자 한다.
보통의 경우 느즈막이 일어난다. 아침이라 밥맛이 별로 없구나, 싶다가도 잠에서 깬 후 30분안에 ‘아침은 먹어야지’라는 의무감으로 토스터에 빵을 넣는다. 두개. 하나 넣으면 늘 후회하니까 그냥 처음부터 두개를 넣는다!
식사 후 대충씻고 예배간다. 예배드리는 동안, 예배 끝나면 오늘은 알라딘 서점에 갈까, 잠실 교보나 무지, 이니스프리를 갈까, 아니면 멀긴해도 연트럴파크쪽으로 바람 좀 쐬러 나가볼까, 모처럼 만에 양재천을 걸을까, 근처 사는 미저리네 들러 끼니를 해결할까 등등 수십가지의 선택지를 두고 고민한다. 그러나 결국 열에 아홉은 예배 후 바로, 집으로 와서 눕는다;;;
일주일간 하지 않은 집청소와, 이불빨래 등을 한다.
일을 위한 투자. 월스트리트 잉글리쉬 수업을 듣는다. 리스닝 테스트에, 작문에 문법까지, 지루하다면 지루할수도있는 이 두시간 가량의 멀티미디어 코스를 끝내고 나면 일요일 하루가 세상 뿌듯하다.
수업이 끝나면 보통 배가 고파진다. 그때, 점심 겸 저녁을 먹는다. 메뉴는 다양성이 극도로 제한된다. 토스트거나, 콘프레이크, 아니면 김치국 정도가 반복된다. 냉장고엔 딱히 먹을게 없다. 한달에 두번 정도 들르는 미리 줄리는 내 냉장고를 보면서 대체 뭘 먹고 살이 찌는 거냐며 의아해한다. 냉장고엔 된장, 양파, 타바스코, 물 뿐이다. (심지어) 물이 없을 때도 있다.
식사를 하고 난 후에는 두가지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막걸리를 마시고 낮잠을 잘까. 와인 곁들여 영화를 볼까. 그때 그때 땡기는 걸로 결정하는데 영화를 보통 술과 함께 보니까, 자막 읽는게 귀찮아서, 한국 영화를 두루두루 섭렵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특이한 프랑스 영화나 이런걸 왜보고있어? 라고 물을법한 지루한 영화를 좋아한다. 블록버스터급, 폭력과 잔인함이 난무하거나, 스케일이 크거나, 마블류 영화는 거의 안본다. 핫한 영화도 일부러 안본다. 반골 기질이 있다.
이제, 인터넷 서핑을 할 시간이다. 마음껏 이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예배를 다녀와야 하고, 영어 멀티미디어 수업을 끝낸 후라야 한다. 두가지를 끝낸 후라면 죄책감없이 마음껏 인터넷을 서핑할 수 있다. yes24에서 신간을 주문하거나, 알라딘 서점에서 쓸만한 중고서적이 들어왔나 살펴본다. 때로는 강아지 심장사상충 약을 고르는데 반나절을 허비하기도 하고, 믹서기나 다리미를 선택하는데 세시간 이상을 할애하기도 한다. 즈음에는 홈 비치용 나무로 된 안락의자와 해먹을 고르고 있다. 바다에 누워 책보는 듯한 기분을 집에서도 느끼고 싶어서 알아보는 중인데 아직도 결정을 못했다. 언제나 선택은 어려운 일이다.
이제 살 것도 사고, 인터넷도 돌아다녔으니 책 읽을 시간이다. 책 읽고, 생각나는 것들을 블로그에 끄적이는 걸 좋아하는데 책은 의무감에 읽을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좋아서 읽는다. 한동안 왕가위와 고레에다 영화를 보면서 그들과 그들의 영화와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콜바넴에 빠져서, 그 비슷한 부류의 영화+책을 찾아보고 있다.
요즘 자주, 애인이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이런 반복되는 일상을 헤치거나, 헝클어놓지 않는 범위내에서 혹은 함께 공유할 수 있을만한 누군가 나타난다면 좋겠다. 성별도, 국적도, 그 외 다른것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매력적이어야하고,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을 지속할 수 있게 '잘생기고 멋있고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인스타그램에 쓰는 짧은 몇줄의 문장이 아니라, 블로그를 통해서라도 틈틈이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자주 한다. 나의 글이 퇴보하고 있으므로.
>>> 에필로그
1. 드디어 안나 까레리나를 다 읽었다. 책이 두껍고, 총 3권으로 되어있어서 나름 큰 도전이었었다. 어두운 밤이 유난히 길었던 러시아에서는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 시대의 기쁨이었겠으나 24시간이 모자란 21세기 한국의 직장인에겐…버거운 분량이었다. 그래도 일단 시작했고, 재미없는 건 아니니까, 마무리했다. 결혼을 했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이들의 생각도 궁금했고. 우야둥둥 범접할 수 없는 분량이기는 하나, 한번 더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회되면 다시 한번 읽어보리라, 다짐하지만 왠지 이번 생에에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것 같다.
2018.07
2. 샤이니 보컬 종현이의 명복을 빈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현이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몰랐는데 좋은 곡을 많이 쓴 뮤지션이었다. 그가 남긴 곡을 들으며 오늘밤 그를 추모한다. 부디 그곳에서 편히 쉬기를. 자신을 탓하지 말면서 행복하기를.
201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