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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이 Apr 03. 2022

#9. 집으로 향하는 쉽지 않은 길

여행의 끝은 언제나 아쉬운 법

 이 짐들을 어쩌지?

몇 날 며칠의 피로를 단숨에 해소해주는 마사지는 몸을 노곤 노곤하게 만들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어찌나 멀며 발걸음은 또 어찌나 천근만근이던지, 모든 걸 내려두고 자고 싶은 마음만 가득이었다. 간신히 숙소에 도착했을 무렵 분주히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단꿈에 빠져들었다.(레이트 체크아웃 만세) 그렇게 여행이라는 달디 단 꿈도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짐을 챙기고 준비를 하고 비행시간까지 한 참 남은 우리의 마지막 일정은 공항 인근에서의 '쉼'이었다. 하지만 짐이 문제였다. 장기 여행에다 물놀이 용품 그리고 카메라 장비가 가득이었던 우리의 짐은 여행을 즐기고 기록하기엔 더할 나위 없었지만 함께 하기론 버거운 존재였다. 이 버겁고 무거운 존재들을 처리하는 것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짐을 맡길 수 있는 마사지샵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잠시 짐을 맡기는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미리 수속을 해두는 것이었다. 효율성을 생각하면 전자였고 향후까지의 편리함을 생각하자면 후자였다. 정말 별것 아닌 걸로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해서부터 다 먹을 때까지 고민을 하다 우리는 전자를 택하게 되었다. 다행히 짐을 맡아주는 마사지샵은 인근에 많았고 간단히 발마사지를 받는 것으로 예약을 하고 한 번 더 마사지의 노곤함을 경험하고는 정말 마지막 여행의 마무리를 하기 위해 쇼핑센터로 향했다.

 분주했던 마지막

덥디 더운 바깥 날씨와는 180도 다른 쇼핑센터의 온도 천국이었다. 그간 야시장이며 현지 길거리 음식과 현지 느낌 물씬 나는 가게들만을 방문해왔었음에 쇼핑센터 내부는 정말 눈이 돌아갈 만큼 황홀했다. 여타 매장들을 구경하고 다양한 물건을 구매했고 우리는 여행의 마지막 장식으로 매번 마그네틱을 구매해왔었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기념비적인 코타키나발루의 말레이시아의 마그네틱을 신중에 신중을 가해 구매했다. 저렴한 물가에 눈 뒤집히게 쇼핑을 했고(옷도 샀는데, 같은 브랜드라도 나라별로 나오는 재질이 다르기에 한국에서는 구하지도 못하는 아이템들을 가득 득템 했다) 지갑은 얇아져만 갔지만 마음과 두 손만큼은 풍족했다. 그리곤 이내 후회를 했다. 쇼핑을 한 물건들로 양손에 여유공간이 없음에 그리고 맡겨둔 짐을 찾으러 가야 한다는 사실에 말이다. 짐을 최소화해보고자 했다. 우선 짐을 먼저 찾아야 했기에 마사지샵에 방문하여 락커 같은 작은 공간 안에서 쇼풍 물건들의 포장을 다 분해하고 케리어의 짐들을 다시 정리해 쇼핑 물건들을 테트리스 하듯 케리어 속으로 욱여넣었다. 내 케리어의 경우 확장이 되는 케리어라 그나마 조금 여유로웠고 그의 케리어는 확장형이 아닐뿐더러 이번 여행지에서 몇 번 떨어뜨리는 바람에 가뜩이나 수명을 다해갔던 케리어 구석구석이 파손되어있었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쉽지 않은 여정

드디어 공항으로 가기 위에 우버를 예약했다. 예약한 우버를 탑승해 공항으로 향하며 차 안에서 바라본 여행지의 마지막 풍경은 추억을 그릴 수 없었다. 지독한 교통체증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비행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음에 초조해져 왔고 여유 있게 여행의 순간들을 회상할 수 없었다. 우리의 초조함을 눈치챈 우버 기사님이 비행시간을 물으셨고 그때부터 한국의 총알택시와는 물론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꽤 빠른 운행을 해주셨다. 우버 기사님의 순발력으로 우린 아슬아슬하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고 두둑한 팁도 잊지 않았다. 짐의 수속을 마치고 무언가에 쫓기듯 일들을 처리한 우리는 순간 에너지를 폭발시켜버린 듯 지쳐 벤치에 몸을 기대었다.


 공항에서 첫 경험(노숙이라니 내가 노숙이라니!)

비행시간은 오후 11시 45분 비행기였고 탑승까지 30여분 가량의 여유 시간이 있었던 우리는 세안과 양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렇게 개운하게 비행기를 탑승할 준비를 마치고는 탑승을 위해 이동을 하고 있던 안내 음성이 들려왔고, 그 음성은 내게 첫 경험을 선사해준 안내 음성이 되었다. '비행기 출발 지연' 대략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작은 공항에 많은 비행기가 붐비게 되어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며 순서대로 출발을 하겠다고 따라서 우리가 탑승할 비행기는 앞으로 4시간가량을 더 있어야 탑승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공항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구석구석 앉을자리는 눈에 띄게 있었다. 하지만 안내방송이 진행됨과 동시에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서 있었고 숨어있었는지 벤치는 순식간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몇 남지 않게 되었다. 4시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건 우선 두 번째 문제고 시급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찾는 게 우선이 되었다. 겨우겨우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았지만 조금 망설여졌다. 화장실 냄새가 조금 풍겨오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없다면 우리는 그 몇 시간 가량을 서서 버터야 했기에 비장의 무기인 마스크를 쓰고 최대한 화장실과 등을 지고 앉아 시간을 보냈다. 아니 잤다.. 잠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푹 꿈까지 재미나게 꾸고 있었는데 누군가 흔들어 깨우지 않았다면 아침까지 잘 기세였다. 그렇게 나의 첫 노숙 아닌 노숙 같은 노숙의 경험을 했고 결과는 암울했다. 우선 쓰고 있던 모자가 없어졌고 덮고 있던 얇은 점퍼가 없어졌다. 그 정도로 푹 잠이 들었나 싶었으며, 어떻게 이렇게 인기척 하나 안 느껴지게 훔쳐갔지 싶었다. 지갑이며 귀중품은 그대로라 다행이었지만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다시는 잠깐 앉아 잠을 자는 일을 쉽게 생각지 말자는 것이다. 잠깐 졸면 졸았지 잠은.. 아니라는 것, 잠깐 졸더라도 모든 물건은 가방 안에 넣을 것!


 다시 한국과 박살난 케리어의 마지막 그리고 집

처음이었던 새벽비행은 무척 새로운 경험의 었고 졸린 것 만 뺀다면 무척 재미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서 착석 후 승무원들의 비상시 안내사항을 들을 수도 없이 나는 잠에 빠져들었고 그렇게 순식간에 한국에 도착했다. 드디어 집에 왔네 싶은 안정감도 잠시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짐들에 우리의 짐은 안 아니 정확히는 그의 짐이 보이질 않았다. 짐을 나르는 컨벨트의 작동이 멈추는 게 아닌가 싶을 무렵 안내방송에서 우리가 탑승했던 비행편명과 함께 탑승자 명으로 그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괜스레 긴장이 되었다. 위험한 물건을 구매하지도 않았고 적정한 금액 내의 소비만을 했는데 그의 이름은 왜 호명되었을까 싶은 긴장된 마음으로 안내방송에서 언급된 특정 장소로 향했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저 멀리 뚜렷한 존재감을 뿜고 있는 그의 케리어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고 그는 머리를 짚었다. 그렇다 불안불안하던 그의 케리어는 결국 터졌고 임시방편으로 청 테이프로 칭칭 정말 칭칭 감겨 있던 것이었다. 그 모습이 처참하기도 했고 케리어가 조금은 불쌍해졌으며 이걸 수습해주시고자 청테이프를 열심히 감았을 승무원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없어진 물건이나 파손된 물건은 없는지 하나하나 세세히 점검을 받기(?) 시작했고, 나는 그를 위한 임시 케리어를 구매하러 자리를 비웠다. 분명 우리는 한국에 도착했지만 집으로 가기까지 여행의 여정은 아직 남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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