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어려운 길
잘 다니던 공기관을 퇴사했다.
다들 도전이 대단하다고들 했다.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나도 두려웠고 당연히 앞날이 막막해 모든 게 무섭게 다가왔다. 비교적 짧은 사전 준비기간을 거쳐 어느덧 퇴사를 하고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 무모하게 도전했는지 가끔 스스로에게 어이가 없다.
나에겐 아직 디자이너가 따로 없다.
물론 직원도 아직은 2명 일 뿐인 작은 회사로 이런 현실에 디자이너가 없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싶겠지만, 사업을 하다 보니 디자이너는 1-2위를 다투는 필수 인력이었다.
그럼 디자이너가 없는 지금 누가 디자인을 하는가?
- 내가 한다.
나는 우선 경제/경영학 전공자이다. 즉 디자인 쪽과 1도 관련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의 오삼오 디자인을 하고 있느냐 물어온다. 그럼 난 생각보다 간단하게 대답을 했다. "해야 되니까" 처음엔 정말 심플하게 대답했었다. 포토샵도 일러스트도 수월하게 다루지 못했던 내게 디자인 작업은 정말 넘지 못하는 높은 장벽 같았는데 그 당시에는 어떻게든 해야 했었다.
그래서 해야 되니까로 질문에 대답을 끝내곤 했다.
무슨 패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색감에 예민하지. 또 나는 세련된 것들, 감각적인 것들, 깔끔한 것들을 좋아하잖아! 그럼 디자인을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단순했다. 단순하면서도 간단명료했다.
그렇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자마자 주저 없이 시도부터 해보았다. 처음 시도한 상세페이지 만들기는 전문적 프로그램(포토샵, 일러스트)을 전혀 사용할 줄 몰랐던 시절이었기에 PPT로 작업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왕년에 제안서를 많이 봐왔고 제안서를 만들어보는 작업을 했던 경험으로 PPT만 있으면 세상 무서울 게 없다는 마음으로 상세페이지를 만들어냈다.
초안이 만들어졌고 며칠을 걸쳐 자잘한 부분들을 손보기 시작했고, 이만하면 되었지 싶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처음의 초안을 지금 다시 보면 막 구깃구깃 누구도 볼 수 없게끔 구기고 구겨서 안 보이는 한 구석에 던져놔버리고 싶을 만큼 형편없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이 상세페이지를 만들었다는 뿌듯함과 대견함이 나를 사로잡았고 다른 사이트의 디자인물들과 비교를 해보거나 하는 과정 없이 아주 당당히 스마트스토어에 게재를 하며 수익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당시 스마트스토어에대한 지식도 부족했다.
디자인도 그렇게 뛰어난 게 아니었으며, 타 사이트를 참고해보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막무가내였었다.
그래서 고객님들께 제공해야 하는 세세한 정보를 어떻게 상세페이지에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1도 없이 그냥 내 제품은 어떤 계기로 만들었으며 어떤 편리함을 제공하겠다는 점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상세페이지를 제작했었다.
내게 뭐가 부족한지 모르고 마냥 좋아하며 주문을 받고 수익활동을 이어가던 중 한 고객분의 리뷰에 문득 나는 너무 스스로의 대견함에만 빠져있었구나 싶어 잠시 얼빠진 상태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고객님의 리뷰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제품의 특출함과 장점들은 알겠는데,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 물건이 왜 필요하고 구매하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는 것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즉, 구매를 해 사용하면 어떤 점에 있어 편리하고 도움이 되는지와, 소비자의 소구점을 발견하지 못하겠다는 의미와 함께 제품의 장점만 설명해 놓았다는 것이었다. 정말 뒤통수를 한 대 맞은듯한 얼얼한 기분이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인가 끊임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나는 내가 만들어낸 상세페이지를 제 3자의 입장(소비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것에만 집중을 해 타제품과 타사이트를 비교할 생각조차 않했고, 또 딱 알맞은 비교대상도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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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타 사이트들의 상세페이지들과 비교를 하게 되면서 나는 내가 만들어 낸 창작물이 얼마나 구린지 느낄 수 있었다. 구린 상세페이지가 게재된 내내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쳐 갈 때쯤, 분명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해 다른 방안들을 미친 듯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바로 컴퓨터를 켜 포토샵강의나 일러스트 강의를 알아봤지만 강의를 듣기론 시간이 많이 지체됨에 쉽게 도전 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물론 강의를 들으며 차근차근 지식을 쌓는 게 가장 베스트겠지만 내겐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사용 툴과 방법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배웠고, 책을 통해 전문용어를 익혔다.
그리고 나는 분명 사진 찍는걸 광적으로 좋아했고 색감에도 예민했기에 당연히 일반적이고 평균적 디자인 감각보단 좀 더 나은 디자인적인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수많은 디자인 결과물(포트폴리오)들을 찾아보고 수집하며, 나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를 깨달았다. 그럼과 동시에 편하게 디자인 툴을 제공하는 사이트나 프로그램도 있지 않을까 싶어 광적으로 서칭을 했다.
다양한 포트폴리오와 디자인을 서칭 하기론 누구나 알고 있는 '핀터 레스'가 당연 최고였고, 무료 디자인 툴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망고보드, 툴디, 미리캔버스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내겐 '미리캔버스'가 잘 맞았다.
물론 위 3개의 플랫폼이 각각 강점을 가지고 있는 디자인 툴이 있어 가끔은 번갈아 사용하고는 있다.
일을 하다 보니 MD*의 중요성이라던지 디자인 감각의 차별성이 필요한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초기 자본이 넉넉하지 않다면 디자이너를 고용하거나 외주를 맡기기란 쉽지 않은 일 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수밖에 없고, 내가 해야함이 가장 최선일 때가 찾아오는데, 그럴때면 미리부터 좌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했으니까.
디자인 1도 모르던 그냥 감각만 있다고 까불던 나도 했으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도전을 하면 무엇이든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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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엉망진창 좌충우돌 사업을 시작하며 느끼고 필요하고 필요했던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보고자 한다.
부디 나와 비슷한 분들이 있을 것이고 그럴 때면 내 기록들이 작게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MD : merchandiser의 약자로 상품기획자라 하며, 상품의 기획, 구입, 가공, 상품진열, 판매에 대해 책임을 지고 결정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