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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이 Mar 28. 2022

#7. 반딧불 트리

한 여름 반딧불 크리스마스트리

 작고 소중한 생명들을 만나기 위한 여정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반딧불이 굉장히 많이 출몰하고 반딧불을 잘 볼 수 있는 성지 투어를 갔었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다. 그만큼 시간과 온도 그리고 습기에 민감한 반딧불이였기에 시간과 날씨의 요정이 도와주지 않는 한 보기 힘들다 했다. 다른 여행에서의 반딧불 관광에 실패를 했어서 인지 이번 여행에서의 반딧불 투어는 꼭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었다. 유유자적한 리조트를 뒤로하고 사전에 예약해 둔 세미 투어를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고 거기서 우린 정의의 투어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정의란 표현이 적합했던 건 비포장 도로를 3시간 이상 이동해야 했던 점에서 비롯되었다. 3시간, 정갈한 포장도로를 달려도 긴 시간인데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하는 미니밴을 보곤 함께 투어에 나선 이들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트렁크와 구분이 없는 미니밴에 사람과 각자의 짐들이 함께 어깨동무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침울한 표정을 채 삼키기도 전에 시간이 더 지체되면 반딧불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함께 투어를 나선 이들은 물 한 방울 입에 데 지 않으며 자신의 짐가방과 사투를 벌이며 악착같이 3시간가량의 장거리 이동에 몸을 맡겼고, 생각지도 못한 교통체증이 있었지만 정말 기가 막히게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여정의 첫 번째, 선셋

반딧불을 만나기 위한 세미 투어의 일정은 소소한 재미를 가져왔다. 반딧불을 보기 위해 예약한 세미 투어는 반딧불의 성지이기도 했으나 선셋의 맛집이었다. 반딧불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시간은 오후 6시~8시 사이였고. 투어를 위한 현장에 오후 4시쯤 도착한 우리들은 첫 번째 일정으로 선셋을 보기 위해 해변가로 이동을 하며 기대감이 부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미 투어의 후기에 게재된 선셋 사진들은 색감이 너무 황홀했었기 때문이다. 한 발 한 발 투어 차량에서 내려 선셋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해변가로 한 걸음씩 내딛으며 점점 오색찬란한 하늘이 내 눈앞에 펼쳐졌을 땐 온몸에 소름이 돋는 벅찬 감동은 사진으로 다 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작은 감탄과 함께 카메라 셔터를 쉴세 없이 누르며 인증샷을 남기기 바빴고 우리의 친절한 가이드는 투어객들 한 팀 한 팀에게 정성 들여 선셋의 모습을 근접하게 담을 수 있는 위치와 구도 등을 신경 써주며 인증숏을 직접 찍어주는 등 감사한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주었다.


 여정의 두 번째, 비눗방울

사진을 쉼 없이 찍다 보니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갔다. 그런데 너무나 갑자기 억수 같은 폭우가 내린 탓에 우린 꼼짝없이 대기를 해야만 했다 20분가량이 흘렀을 때쯤 우리들을 안내한 가이드가 미안하다는 표정과 함께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해 주겠다며 정말 뜬금없이 비눗방울을 준비해왔다. 정말 어마어마한 폭우라 그 누구도 그 비눗방울이 달갑지 않은 표정들이었다. 지금 이 날씨에 비눗방울이 날아가기나 할까 하는 부정적 생각에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그 비눗방울을 남일 보듯 쳐다보았다. 그렇게 긴 정적 끝에 가이드가 손수 비눗방울을 만들며 해사하게 웃는 모습은 조금 미안한 마음까지 들게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앉아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란 생각으로 정말 별 기대 없이 비눗방울 놀이를 하려고 몸을 움직였다. 어릴 때나 즐기던 아련한 옛 기억 속에만 있는 비눗방울 놀이는 모두의 예상을 깼고 세상 그렇게 설레고 즐거울 수 없었다. 펑펑 쏟아지는 빗속에 살아남아 날아오르는 그 비눗방울을 보며 분위기는 순식간에 좋아졌다.  


 기다림의 미학

비눗방울 놀이가 끝이 나고 드디어 우리는 우리의 최종 목표이자 목적지인 반딧불 서식지로 향하는 준비를 했다. 혹시 쏟아질지 모를 폭우를 대비해 비닐우비를, 조명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개인 소지품의 분실 우려가 없게 각자의 가방 점검을 하며 그렇게 하나씩 준비를 완료했다. 우리의 투어는 원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앞 순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갑작스럽게 순서가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 가이드에게서 일방적으로 말이다. 이유는 그러했다. 소수로 구성된 우리 세미 투어는 대단체 관광객의 성화를 이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니 이게 무슨 괴상망측한 이유인가 싶었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제시하지 못했다. 중국인 단체관광객 그들은 강력했으니까. 어두운 환경에서만 빛을 발하는 반딧불의 본 성질을 무시라도 하는 듯 야광팔찌에 야광봉을 음악과 함께 신나게 흔들며 그들은 우리 앞 순서로 출발했고 만반의 준비를 했던 우리 투어팀은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 기다림의 시간에 우리 측 가이드가 미안했는지 먹거리를 잔뜩 사서 나누어 주었다. 안 그래도 때마침 저녁시간이기도 했고 배도 고팠기에 우리 투어팀은 옹기종이 모여 앉아 어색했던 서로의 가벼운 신상을 물어보며 짧고도 강력하게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있던 찬라 억수 같은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면 서로의 대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강한 빗줄기였다. 그렇게 우리들은 말없이 눈빛으로 서로서로를 바라보며 조금은 아주 조금은 욕심부리면 안 된다는 교훈을(?) 쌤통이다(?)라는 마음을 주고받았다.    

오래토록 기억의 한폭에 남을 것 같은 하루

 운치 있는 뱃 놀음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빗속을 뚫고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제발 반딧불 스폿에 도착하면 이 비가 그치길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몇 안 되는 10명의 인원을 실은 우리 배는 천천히 운항을 하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워낙 강해 잔잔한 빛을 켜서 이동을 하고 있는데 정말 마법같이 그 억수 같이 쏟아지던 폭우가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서로 신기하다는 말과 안도의 말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줄어드는 만큼 우리가 탄 배의 속도가 차츰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선선한 바람을 맞을 수 있을 만큼의 속도로 설레는 신비로운 그곳으로 지체 없이 향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반딧불 스폿 지점에 거의 도달했을 때 가이드의 짧은 안내가 시작되었다. 좀 전 폭우가 쏟아져 반딧불이 생각보다 없을 수 있다는 점,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불빛이 나는 제품은 가방 속으로, 카메라와 핸드폰을 물에 빠뜨릴 수 있으니 잘 간수해야 하며, 반딧불은 큰 소리에 불빛을 숨기기에 큰 소리가 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가이드의 안내를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되뇌며 속도와 빛을 줄여가는 배 안에서 반딧불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하고 또 기다렸다. '두두두둣' 배의 모터 소리가 완전히 꺼지더니 반딧불 스폿에 도착했다는 가이드의 음성에 우리들은 두 눈을 어둠에 적응시키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차츰 어둠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건 컴컴한 어둠과 나무의 그림자뿐이었다. 반딧불을 기다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체감상 한참을 바라보고 기다린 것 같았고, 반딧불은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우리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가이드도 우리들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다음팀을 위해 배를 출발하려던 그때 "어! 저기 저기 반딧불 보여요!!" 한 여성분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향했고 우리들은 감탄사를 참을 수 없었다. 그 장면은 아직까지 기억에 선명하게 프린트되어있다. 

한 그루의 나무에 반딧불들이 마치 크리스마스 때 트리에 꼬마전구를 감아 놓은 것과 같이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서둘러 핸드폰을 사진기를 들고 셔터를 눌렀지만 사진엔 잘 담기지 않았다. 그렇게 넋을 놓고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반딧불들의 모습을 보고 감명에 젖어있을 때 반대편 나무숲에도 반딧불이 있다고 생각지 못하고 있던 그때, 그 반대편 나무숲 반딧불들이 사뿐사뿐 날아 우리 배를 지나쳐 이동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작고 희미한 빛들의 물결이었지만 마치 강물에 호롱불빛들이 본연의 빛을 발하며 이동하는 듯했다. 눈앞에서 옆에서 반딧불의 이동하는 모습이 딱 그렇게 표현되었다. 정말 입에 풀피리 하나 물고 유유자적 앉아있었다면 영락없는 신선놀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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