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마추픽추

by jenny


이 글은 마추픽추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사서 고생을 한 사람의 투덜거림이다. 아니,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의 경험담이다. 아니, 그 사이에 어딘가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를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콜렉티보(합승 밴)를 타고 간 다음에 기차를 타고 가서 마지막에 버스를 타고 끝까지 올라가는 것과, 콜렉티보를 타고 가서 걷는 것. 전자는 150불 비싼 대신 편하고, 후자는 싼 대신 개고생을 해야 한다. 평소였으면 당연히 전자를 선택했겠지만 배낭여행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후자를 선택했다. 그냥, 여행이 좀 지겨워서 세계일주 일정을 줄이면서 파타고니아를 날린 덕에 트래킹 일정은 마추픽추와 비니쿤카가 끝이니 한 번 걸어 보기로. (여행이 지겨워지다니. 이런 일이 가능하다. 세계일주자에겐. 물론 배부른 소리라는 걸 그때도 알고, 지금도 알고 있지만.)

기차와 걷는 것을 끝까지 고민하다가 걷는 걸 선택한 나에게 H는 언니? 진짜 걸을 거예요?라고 계속 물었지만..^^ 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트래킹을 좀 하기로 했다. 물론 후회하는 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비까지 내리는 돌+진흙 기찻길은 날 지치게 했다. 엄지발가락은 돌에 한 1000번 정도 박은 것 같고, 50번 정도 넘어질 뻔했고 내리는 게 비인지 내 눈물인지 헷갈렸다. 그렇게 비를 맞으면서 3시간을 걸었다. 몇 번은 주저앉았고. 11km 정도를 걸었나? 모르겠다... 그 와중에 고작 1박 2일 길을 떠나면서 또 짐은 왜 이렇게 많이 들고 온 거니. 발 보다 어깨가 더 아팠다.


몸이 부서질 것 같을 때 아구아스 깔리엔떼에 도착했다. 마추픽추에 올라가기 전에 사람들이 하루 정도 묵는 동네. 구경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동네. 근데 마추픽추에 올라가기 전 거의 무조건 들려야 하는 동네라 물가는 더럽게 비싼 동네.

대충 씻고, 밥을 먹고, 자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날씨를 체크했는데 비가 왔다. 그래서 마추픽추까지는 버스를 타고 올라가기로. 걸어서 올라가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리지만 버스는 삼십 분이 채 안 걸렸던 듯. 역시 돈은 위대하다. 돈 버는 걸 포기하고 온 주제에 여행 내내 돈이 위대한 것만 계속 느끼고 있는 나도 나다.


그렇게 편하게 버스를 타고 올라가서 마주한 구름에 가린 잉카의 공중도시는 맑지 않아서 더 신비로웠다. 와이나 픽추는 잘 안보였지만 그래도. 걸어 올라 오기도 힘든 이 곳에 어떻게 돌을 옮기고, 도시를 만들었는지 마냥 신기했다. 왜 이런 산속에 도시를 건설했는지도 추측만 있을 뿐 정확히 밝혀진 건 없어서 더 흥미로웠다. 근데 날씨도 춥고 나도 너무 지쳐있어서 와- 하는 감동은 없었다. 애초에 마추픽추 자체에 큰 기대를 안 하고 와서 인지, 생각보다는 좋았지만. 내가 돈을 안 아끼고 편하게 왔으면, 보충한 체력으로 마추픽추를 좀 더 잘 즐길 수 있었을까. 아니면 고생해서 얻은 뷰가 역시 더 좋았을까. 모를 일이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모르는 게 더 많아서 아직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고, 걷기도 하다가 이번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내려왔고, 가파른 경사길을 내려오는데 무릎이 아팠다... 다리도 후들거리고. 이제 도가니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니까. 평생 쓰려면 소중하게 다뤄야지. 내 도가니. 이미 너무 늦은 것 같긴 하지만.


한 시간 정도 걸으니 아구아스 깔리엔떼 기차역이 나타났다. 결정해야 했다. 히드로 일렉트리카 까지 다시 세 시간을 걸을지, 기차를 탈 지. (tmi: 사람들한테 길 물어볼 때 자꾸 히드로 일렉트로니카라고 함.... 일렉보다 힙합이 더 좋으면섴ㅋㅋㅋㅋ) 아무튼 나는 걷기로 했고 여전히 돌 길이었고 계속 비는 오다 안 오다 했고 다리는 돌 같았고 어깨는 무거웠다.


그리고 또 후회했다. 나는 후회할 걸 알면서도, 선택하는 특이한 사람이다. 내가 원래 변태 같은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진짜.


울지 않고 마추픽추부터 히드로까지 네 시간을 걷고, 콜렉티보를 탔고, 집에 도착했다. 이틀을 꽉 채운 일정이 끝났다. 걸을 땐 힘들었지만 왠지 모를 성취감이 들었다. 젊어서 사서 한 고생의 리스트가 추가된 느낌이지만,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누가 보면 에베레스트에 등반한 줄 알겠네.


마추픽추 자체도 좋았지만, 기찻길을 걸어 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비가 내릴 때의 흙냄새도 맡고, 좋은 공기도 마시고, 나무랑 구름도 많이 보고, 또 이 모든 걸 해낸 스스로가 맘에 든 시간이었다. 이 시간이 나에게 어떻게 남을지 궁금해지는 밤.

안녕, 나의 마추픽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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