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97, cusco, peru
나는 내 모난 성격이 좋다. 모난 부분이 깎여서 둥글해진 애매한 성격도 좋다.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게 특히 마음에 든다. 거기다 요즘은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싫다고 말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나와 네가 다르면 내가 맞다고 우길 수 있는 자신감이 좋다. 어렸을 때는 갈등 속에 몸을 던지는 타입이어서 나는 맞고 너는 틀렸어 라고 얘기했고, 더 나이가 들어서는 싸우기 싫어서 너도 맞고 나도 맞아 라고 얘기를 했다면 이제는 내 세계에서는 내가 맞아.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된 내 모습이 좋다.
귀는 얇지만 한 번 정한 건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고, 결정은 잘 못하지만 어렵게 내린 결정에는 책임을 지는 내가 좋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 앞에서 비굴하게 웃지 않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친한 척하지 않으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뻣뻣하게 굴지 않는 내가 좋다. 빈 말은 하지 않고, 한 번 보자고 했으면 꼭 봐야 하고, 의미 없는 칭찬을 늘어놓지 않는 나의 솔직함도 마음에 든다.
생각해보니 좋은 점 투성이네.
앞으로는, 잘못한 부분에 대해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는 상대방에 마음에 찰 때까지 할 것, 웃자고 무의식 중에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지 말 것, 좀 더 곁을 잘 내어줄 것,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배경이나 첫인상만으로 편견을 갖지 말 것, 나보다 어리거나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걸 잊지 말 것,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단지 내 의견이 싫을 뿐이지 내가 싫은 건 아니라는 걸 꼭 기억할 것. 좀 더 유연해질 것.
아마 마흔은 되어야 가능하겠지.
헤헤. 여기는 쿠스코 길거리, 한국 떠난 지 197일째, 내가 좀 더 좋아진 날 :)
(이 글은 여행 중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다. 갑자기 이런 글을 왜 올렸냐면. 내 글을 좋아해 주는 블로그 이웃이 있었다. 그 사람은 아마도 의사였고, 평소에 힘든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올렸고, 그래서 가끔 위로하는 댓글을 남기던 사이였다. 근데 갑자기 그가 여대에 나온 사람들은 상대하기 싫다는 편견 가득한 글을 올렸다. 그가 가진 편견을 깨 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그가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이상 더 이상 교류가 어려울 것 같아서 댓글을 남기고 이웃을 끊었다. 그리고 그 행동을 한 내가 싫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마음에 드는 이유들을 떠올리기 시작했고, 뭐, 그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