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아래 누워 있고 석양과 별과 달 따위를 하염없이 봐도 시간이 남는 것
나에게 여행은 그랬다. 뭘 해야 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꼭 해야만 하는 것도 없이 시간을 무용하게 쓰는 것. 그렇게 시간이 무한정인 것처럼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미루다가, 결국 다음에 와서 하면 되지 뭐 하며 그 도시에 마음과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남겨둔 채 떠나는 것.
햇볕 아래 등이 익든 구워지든 까지든 상관없이 누워있고, 책을 보다가 잠이 들고, 또 너무 뜨거우면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가 멍 때리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러다 더우면 바다에 들어가고. 수영을 하고 나와서 맥주를 마시고. 석양이 지는걸 하염없이 바라보며 앉아있고, 하늘 좀 봐, 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 오늘은 달이 보름달이네, 반달이네, 그믐달이네 같은 일상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는 것들을 수 없이 얘기하고, 저 별자리가 뭔지에 대해서 기억나지도 않는 이름들을 끊임없이 진지하게 논하는 일. 오늘은 별이 많이 보이네. 은하수가 있어. 너도 별똥별 봤어? 나는 소원 못 빌었는데.라고 평소엔 하지 않을 말들을 하는 것.
서울이면 바쁘게 지나쳤을 버스킹을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오래도록 듣는 것. 가끔 가사도 모르는 노래에 눈물을 흘리면서 머리로는 팁을 얼마를 줘야 할지 계산하는 것. 내가 받은 감동에 가장 저렴한 값을 매기려는 스스로에게 신물이 나다가도, 그런 내가 싫지 않아서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것.
하루에 할 걱정이라고는 점심에는 뭘 먹을지, 저녁에는 뭘 먹을지, 갖고 싶은 저 물건을 사도 내 가방 무게에 지장이 없는지, 2시간 걸리는 비행기를 탈 지 12시간 걸리는 버스를 탈 지가 전부인 것. 그러다 결국 버스를 타고 10시간을 내리 잠을 자고 내려서 낯선 동네의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또 자는 것. 낮잠을 자다가 느지막이 일어나서 동네를 한 바퀴 걷고 맥주를 마시는 것. 트립어드바이저를 뒤지다가 귀찮아져서 그냥 아무 데나 가서 아무 맛이나 나는 밥을 먹는 것. 맛이 없으면 씩씩거리다가도, 식사 한 번쯤 실패해도 인생에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 것.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도시를 평생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이유로 갔다가 그 도시가 좋아져서 눌러앉으려다가 시답지 않은 이유로 떠나는 것.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 시간이 한 때 임에 안도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