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아바나에서 멕시코 칸쿤까지
오랜만에 혼자 여행하는 배낭여행자 다운 하루를 보냈다. 아바나 오비스포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현지인들이 많은 가게에서 천오백 원짜리 햄버거와 이백 원짜리 주스를 사서 먹다가 아바나 인싸답게 지나가는 아는 사람 세 명을 마주쳐서 반갑게 인사했다. 종종 가던 맛있는 백오십 원짜리 아이스크림 가게가 문을 닫아서 오십 원짜리 맛없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쇼핑을 하려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사고 까사로 돌아왔다.
정들었던 호아끼나 까사의 주인장 부부에게 인사하고 나와서, 아바나 공항으로 가는 이만 원짜리 택시와 오십 원짜리 버스를 머리 터지게 고민하다가 오십 원짜리 버스에 배낭과 함께 구겨져서 한 시간을 달렸다.
내려야 하는 정류장에서 배낭이 끼어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자 버스에 타 있던 쿠바 사람들이 전부 다 소리를 쳐줬다. 멈추라고. 내 가방까지 들고 나를 밀어서 내리게 해 준 친절한 사람들. 연신 그라시아스를 외치며 웃으면서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쿠바 한정) 나의 생명 나의 빛 맵스 미를 켰는데 터미널 3과의 거리는 3km...
뭐 걸으려면 충분히 걸을 수도 있는 거리지만, 뜨거운 날씨 때문에 막막해지던 찰나, 함께 내린 쿠바 부부의 제안으로 같이 자전거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왔다. 그들은 선뜻 한 좌석에 둘이 같이 탔고, 나를 위해 한 자리를 내어 주었다. 천 원 지출. 사실 아낀 돈 보다, 망할 여행자 물가에 시달리다 쿠바 사람들이랑 똑같은 돈을 냈다는 게 위안이 됐다. 아니 덜 냈다.. 동전이 부족해서^^
공항에서 물도 사 먹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엽서도 사면서 시간을 보내다 연착된 비행기를 타고 칸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사천 원짜리 ado버스를 타고 왔고, 택시비 이천오백 원이 아까워서 배낭 이십이 킬로를 짊어지고 1.5km를 걸었다.
쿠바를 벗어나니 걸으면서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행복에 취해서 실실 웃으면서 진아랑 카톡을 하면서. 그리고 숙소에서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고 회사 사람들과 한 시간 동안 그룹콜을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사실 이렇게 까지 궁상을 떨지 않아도 되는 여행경비를 들고 있으면서도 매일 궁상을 떨다가, 사치를 부리기도 하고 멍청비용으로 더 큰돈을 쓸 때도 많지만 지금이 좋다. 덜 썼다면 불행했을 테고, 더 썼다면 소소한 재미를 몰랐을 테니까.
샤넬 가방이 아니라, 오천 원짜리 가방을 들고도 흥정해서 반 값에 샀다고 자랑할 수 있고, 특급 호텔이 아니라 만원 짜리 방에 몸을 뉘이면서도 재밌었던 오늘을 생각하며 실실 웃을 수 있고, 제일 싼 맥주를 왕창 쟁여놓고 라면을 먹으면서도 맛있다고 울면서 먹을 수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 좋다.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이 가지고도, 너무 많이 불평했다.
돌아갈 곳이 있고,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있는 한정된 자유라서 더 행복하고, 더 소중하고, 더 값지고, 덜 불안하게 즐기고 있다.
여행 164일 차, 나는 여전히 행복하다. 전에 했던 여행과 다른 점이라고는, 그때는 시간이 아까워서 돈을 썼다면 지금은 돈이 아까워서 시간을 쓰는 정도다. 다시 하고 싶지도 않고, 다시 할 수도 없는 이 긴 배낭여행을, 다친 데 없이 잘 마무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