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중 처음이자 마지막 경제활동을 했다.
다합에는 일요마켓이 있다. 여행자들이 자기 나라 요리를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수공예 제품들도 팔고. 뭐 이것저것 파는, 일요일 오전에 열리는 마켓. 다합에는 맛있는 디저트 집이 이때만 해도 없었는데, 일요마켓에서 사 먹거나 할 수 있었다. 나는 일요일 낮에는 자야 하기 때문에 내가 있던 라이트하우스에서 15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아쌀라 근처까지 가기 귀찮아서 가본 적은 없고 들어만 봤던 일요마켓.
다합에선 잠자고 다이빙하고 맥주 먹고 밥 먹고 수다 떠는 거밖에 안 했어서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을 무용하게 쓰다, 그게 또 지루해졌다. 그때 블로그를 검색했는데 일요마켓에서 김밥을 판 사람이 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같이 사는 j를 꼬셔서 김밥을 팔기로 했다. 유희였다. 재밌을 것 같았거든.
다합 유일의 아시안마트에서 장을 보고 무려 단무지를 직접 담갔다. 치자가 없어서 노란색은 못 내도 무를 썰고.. 끓이고.. 식초.. 설탕.. 뭐 단무지 만드는 거 생각보다 안 어렵더라. 전날까지 김밥 재료들을 준비하러 아쌀라와 아시안 마켓을 바쁘게 쏘다녔다. 대망의 일요일.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말다 j랑 싸웠다. 이유가 뭐였더라. 내가 쿠킹호일을 바닥에 내려놨더니 호일을 더럽게 왜 바닥에 내려놓냐고 뭐라고 했고 나는 좋은 말로 하면 되지 왜 뭐라고 하냐고 뭐라고 했던가.. 이 얘기를 글로 쓰니까 둘 다 성격 진짜 이상해 보이는데 우리가 싸운 이유는 우리 집이 열악해서다. 좀 더 비싸고 좋은 집을 구했으면 쿠킹호일 놓을 식탁이 더 컸을 텐데. 역시 곳간에서 인심이 나온다. 아무튼 어색하게 김밥을 말다가 화해를 하고 김밥을 들고 일요마켓에 갔다. 우리 집 군식구인 자다 깬 k도 함께.
우리가 준비한 김밥은 참치 마요 와사비 김밥과 소고기 고추장 김밥. 소시지도 나름 맛있어 보이는 걸로 심혈을 기울여 골랐다. 고추장은 쟁여 놓은걸 썼다.. 여기서 구할 수도 없는데.... 이 모든 설명은 진짜 최선을 다해서 김밥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팔릴까 안 팔릴까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자리를 정하고 김밥을 깔고 손님을 기다렸다. 다합 물가 대비 비싼 가격에도 생각보다 인기는 더 많았고, 20분 만에 완판 했다!! 한국인들이 사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외국인들도 많이 사줬음.
돈을 벌면 맛있는 것도 먹고 다이빙도 해야지 했는데 남는 돈을 계산해보니 만 오천 원. 시급 천 원 정도.
재료비가 많이 들었으니 십 파운드만 더 받자고 했는데 j는 이 가격도 비싸서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심지어 더 싸게 팔자고 했다... 이게 마케터와 공대생의 차인가. 나는 재밌어서 하는 일도 일이니까 수익이 없으면 안 된다고 보는 입장인데... 그렇게 우리가 타협한 가격에 팔아서 남은 돈이 딱 만 오천 원이었다.
애초에 김밥을 팔아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다이빙 한 깡 할 정도의 돈은 남았어야 되지 않나 생각하다가. 가열차게 돈을 벌다가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고 때려치고 놀러 온 내가 몇만 원에 집착하는 게 또 웃겨서 멕시칸 음식점에서 탕진하고 재밌었다 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경제활동을 하며 느낀 건데, 역시 나는 경제활동이 좋다. 5개월 만에 한 경제활동은 내 기분을 짜릿하게 했고 그래서 한 번 더 하자고 했다가 j에게 까여서 시무룩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재밌는 하루였다.
(마지막 말로 이 말을 꼭 쓰고 싶었다. 재미없는 날을 더 많이 살아내고 있는 요즘, 항상 재밌어서, 오늘도 똑같은 재밌는 날이었다는 말. 물론 재미가 없는 건 내 마음의 문제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