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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Jul 11. 2021

사랑 지상주의자의 첫사랑


사랑한다는 말이 무서워서 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다. 그러니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너만 사랑한다는 말도 당연히 못 했지. 나는 오늘은 맥주를 좋아하더라도 내일은 꼴도 보기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인데. 완벽한 타인을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입 밖으로 내뱉어. 스스로도 평생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데. 내가 평생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엄마뿐일 거라고 믿으면서 살았다.


나는 말하는 걸 지키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편이고, 그래서 같이 밥을 먹기 싫은 사람에게는 지나가는 인사로도 밥 먹자고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사랑이 뭔데?라고 되묻기나 했다. 사랑이 무거웠다. 나는 너를 좋아하긴 해도 사랑하진 않아. 나는 아직 첫사랑이 없어. 이런 얘기를 20대 중반까지 잘도 나불거리며 살았다. 그때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는 사람들을 혐오했다. 그냥 좀 같잖았다. 네가 날 어떻게 평생 사랑할 건데. 우린 아직 이렇게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러다 걔를 만났다. 그때 왜 사람들이 영원히 너만 사랑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사는지 알게 됐다. 넘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맨날 맨날 사랑한다고 말해도 그 말에 내 마음을 1%도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첫눈에 반했고, 생김새와 내면까지 완벽했던 내 이상형. 그와 함께라면 어떤 역경과 시련이 오더라도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함께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줄 알았던 우리도 여느 연인들이 그렇듯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헤어졌다. 운명인 줄 알았던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냐고. 네가 정말 나를 배신한 거냐고 맨날 천날 울다가 알게 됐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사랑이었다.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다 그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너와 내가 가지고 있던 비슷한 점들은 운명도 뭣도 아니었다. 그냥 사랑에 빠진 남녀가 흔히 하는 운명인걸 입증할 공통점 찾기 놀이였지. 아마 안 맞는 게 더 많았을 거다. 근데 그렇게 흔한 사랑이어도 아름다웠다. 너와 함께 있으면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보였으니까.


딱히 걔가 나쁜 새끼였던 것도 아니다. 우리가 했던 수많은 약속을 걔도 지키고 싶었겠지. 그 말을 내뱉을 때에는 진심이었을 테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게 첫사랑이었다. 사랑은 사랑하는 시간보다 앓는 시간이 더 길어도 좋은 거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랑을 하면서 사는구나 생각했다. 그때부터 마음을 아끼면서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사랑 지상주의자가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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